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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 대체 : 10일 오후 3시 15분]

 

"선진국에서는 법관들의 동의를 전제로 사건배당을 한다. 우리 대법원은 이것을 사법행정권이라고 생각해 법원장이 임의적으로 할 수 있다는 대법원 예규가 있는데, 이건 위헌적인 예규다."

 

문흥수 변호사(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10일 오전 '수렁에 빠진 사법부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주제의 토론회에 참석해 신영철 대법관과 이용훈 대법원장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두 사람의 사퇴를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의 공동 주최로 열렸다.

 

'1999년 대전 법조 비리사건' 당시 현직 법관으로서는 처음으로 '사법 개혁'을 촉구하는 글을 발표하는 등 사법개혁 목소리를 높였던 문 변호사는 "사법부는 국민들로부터의 신뢰와 존중이 생명인데 지금 대법관이 거짓말을 했느니 진상조사단을 만드느니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자체가 우리 법원의 후진적인 모습"이라며 "법조인의 한 사람으로서 참담한 마음"이라고 밝혔다.

 

문 변호사는 "이용훈 대법원장이 '(이메일을) 압력으로 느낀 사람은 판사의 자질이 없는 것 아니냐'고 했는데 재판권 독립 문제가 뭔지 조차 모르는 것 같다"면서 "본질은 재판권이 간섭받을 위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변호사는 토론회 중 수차례 "이용훈 대법원장은 자격이 없으며 신 대법관과 함께 사퇴해야 한다"고 거침없이 주장했다.

 

"정말 제대로 된 판사면 신 대법관의 이메일을 받는 순간 언론에 공개했어야 했다. 이렇게 헌법과 법률을 무시하는 대법원장 당장 탄핵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야 했다. 왜 이제야 알려졌는지 이해할 수 없다. 법관들이 기회주의적으로 움직인다는 반증일 것이다."

 

"법관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판단할 의무가 있다. 대법원장이 뭐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내일 당장 그만둘 수 있다는 생각까지 해야 한다. 지금 진상조사는 코미디다. 이메일 내용을 보고 재판권을 침해하고 간섭할 우려와 위험이 있느냐를 검토하면 될 일을, 법관을 불러서 '침해 받았냐 안 받았냐'고 묻는다? 내가 당사자라면 '내 심리의 문제여서 잘 모르겠다'고 하겠다. 이게 정답일 거다."

 

"대법원장… 정말 말이 안 된다. 대법원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에게도 반말 찍찍해서 되겠는가. 그렇게 의식이 없어서야 되겠는가. 조선시대 포도대장 같다. 그러면서 국민 섬기는 법원? 웃기는 얘기다. 그런 인식으로 대법원을 이끄니 이런 사태가 일어나는 것이다. 사퇴해야 한다."

 

문흥수 전 판사 "법관은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결정하는 사람"

 

그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 양심에 따라 결정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헌제청을 할 것이냐 말 것이냐 또는 다른 법관이 위헌 제청을 했을 경우에 헌법재판소의 위헌 여부 결정을 기다려서 재판을 할 것인가 이것은 전적으로 법관 본인이 법률과 양심에 따라 결정할 문제임에도 법원장이 이를 무시하고 현행법대로 재판하라 이렇게 주문한다는 것은 명백한 재판 간섭이다."

 

문 변호사는 법원의 '시스템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우리 법원은 피라미드식 승진구조 아래 법원장이 주관적 자의적으로 근무평정을 하고 그 평정결과에 따라 승진 여부가 결정되는 후진적인 시스템"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법원장이 법관에게 어떠한 지시를 한다는 것은 영향력이 있을 수밖에 없는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근본적으로 우리 법원이 일제시대 군사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한 번도 제대로 된 사법부 개혁을 이루지 못해 이런 결과가 나왔다"며 "참여정부 때 사법개혁위원회를 설치해 사법개혁에 나섰지만 제대로 된 개혁을 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참여정부 때 임명한 이용훈 대법원장 시기에 사태가 터졌다. 반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임지봉 교수 "사건의 유무죄 판결 가이드 라인 제시... 명백한 재판간섭"

 

사회를 맡은 송호창 변호사는 토론회를 시작하며 "사법부가 이번에 수렁에 빠졌는지, 아니면 원래 수렁에 빠져 있었는지 토론해 보자"고 말했다. 그러나 토론회 참석자들은 후자의 입장임을 분명히 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과 교수는 "신 대법관의 이메일은 유죄판결을 종용하고 사건의 유무죄 판결 가이드 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명백한 재판간섭"이라고 주장했다.

 

임 교수는 "이용훈 대법원장께서 '압력을 받는 판사가 자격이 없다'고 말한 건 부적절했으며 많은 판사들 가슴에 큰 상처를 줬다"면서 "법원장이 6∼7회 지속적으로 반복해 의견을 전하는데 어떤 판사가 압력을 안 느끼겠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미 물증이 있는 이메일 내용 등으로만 보더라도 재판에 대한 압력 행사를 통해 최고법인 헌법이 규정한 법관독립규정을 위반했기 때문에 마땅히 대법관직을 사퇴해야 한다"면서 "직무상의 행위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한 경우이므로 탄핵사유도 충족시킬 수 있어 자진 사퇴가 이뤄지지 않으면 탄핵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임 교수 역시 법관 인사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와 대대적인 개혁을 요구했다. "발탁인사로 인해 50∼60대의 숙련된 법관들을 법원 밖으로 내모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제도를 시급히 없애는 동시에 법관 간의 관계가 상하관계가 아닌 수평적 관계로 갈 수 있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갑배 변호사 "진상조사, 법원이 내부적으로 조사할 일 아니다"

 

김갑배 변호사(전 대한변헙 법제이사)는 '진상조사 기구의 재구성'을 요구했다.

 

김 변호사는 "법원장이 재판에 압력을 행사했을 경우 어떤 외부 압력을 받았는지 여부도 밝혀야 하기 때문에 진상조사 기구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구성하고 조사절차를 투명하게 진행해야 한다"면서 "이는 법원이 내부적으로 조사할 일이 아니며 법원 내부 인사로만 구성해 대법관을 조사하는 것은 이해충돌이 일어나 그 결과를 신뢰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법원조직법에 따르면 각급 법원에 자문회의 성격의 판사회의를 두도록 하고 판사회의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칙에서 세부사항을 규정하고 있으나 법원장이 판사회의 의장이 되는 등 실질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법관회의 조직과 운영에 있어 자율성과 독립성이 보장되어 회의구조를 통해 일선 법관들 스스로 독립을 실현할 수 있도록 제도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호창 변호사는 "최선의 결말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사법부 독립을 의한 새로운 시스템이 정착되는 것일 테고, 최악의 결말은 문제 제기한 일선 판사들이 문책이나 징계를 당하고 또 다른 사법 파동이 일어나, 결국 양심적 판사들이 법원을 떠나게 되는 일일 것이다. 결말을 지켜보자"면서 토론회를 끝냈다.


태그:#문흥수, #민변, #신영철, #이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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