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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렴 디카'에 멋지게 들어 온 복수초 두 송이가 정말 저렴해 보이는가?
▲ 봄의 소리1 '저렴 디카'에 멋지게 들어 온 복수초 두 송이가 정말 저렴해 보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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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입을 벌리려고 하는 복수초의 버둥거림이 그대로 살아 있다.
▲ 봄의 소리2 막 입을 벌리려고 하는 복수초의 버둥거림이 그대로 살아 있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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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40여 년 전의 이야기다. 바로 옆집에 사는 한 반 친구였던 영환이가 한 말. "학현아, 넌 어떻게 그렇게 그림을 잘 그리냐? 난 암만 잘하려고 해도 안 되는데." 으쓱해진 맘에 난 어깨 한번 추스르고 나선 이렇게 대꾸했었다. "그러게? 내가 그림은 좀 그리지."

도구가 좋아야 좋은 작품을 만드는 걸까?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좋은 작품이 나오는 걸까? 실은 우리 집은 가난하고 그 애 집은 우리 집보다 형편이 나아 영환이의 크레용이 내 것보다는 늘 좋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림솜씨는 젬병인 영환이가 늘 내 그림을 부러워하곤 했다.

하지만 중학교 때 생각을 하면 도구도 무시할 수 없다. 재형이는 참 그림을 잘 그렸는데, 난 그의 그림솜씨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때마다 난 도구 탓을 했다. "재형이는 좋은 물감에 좋은 붓, 좋은 도화지를 쓰기 때문에 그림이 잘 나오는 거야." 그렇게 친구들에게 강변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모두 나 편한 대로만 해석한 듯하다.

'저렴 디카'로는 사진이 안 될 거라고?

내가 가지고 다니는 디카는 슬림형 보통 것이다. 사진을 잘 찍는(내가 볼 줄 몰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사진을 열심히 잘 찍기는 하지만 그리 작품다운 사진을 내놓지 못하는 것 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사진 동아리에서 맹활약을 하는) 친구 말처럼 '저렴 디카'다. 자꾸 그럴싸한 카메라를 구입하라고 성화지만 난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

복수초도 여러 종류인가 보다. 앞의 두 송이와는 사뭇 다르다.
▲ 봄의 소리3 복수초도 여러 종류인가 보다. 앞의 두 송이와는 사뭇 다르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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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피려고 기지개를 켜는 어린 송이도 종류가 두 가지다.
▲ 봄의 소리4 막 피려고 기지개를 켜는 어린 송이도 종류가 두 가지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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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돈이 그렇고, 둘째는 사진 실력이 그렇다. 그냥 여행할 때 기념사진 정도 찍고, 지나다 풍경이나 식물, 동물, 사물 등을 담는 것으로 만족한다. 사진이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는 그리 관심이 없다(실은 관심이 없다는 표현보다는 신경을 안 쓴다는 표현이 더 맞다). 사진을 찍을 때 남기고 싶었던 기억만 그 사진에 들어있으면 된다.

그 '저렴 디카'를 들고 유성의 수통골로 갔다. 봄을 찍기 위해서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봄이 오는 소리'를 찍기 위해서다. 봄이 왔다고 매스컴이 떠드는 것과는 달리 난 아직 봄을 느끼지 못했고, 봄의 소리를 듣지 못했고, 봄의 향기를 맡지 못했다. 우수경칩도 지났고 꽃샘추위도 눈발을 멋지게 날리며 내 곁을 지나갔다. 하지만 난 아직 봄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번 등산에서는 꼭 봄의 소리를 담아 보리라 결심했다. 아내와 동행한 금수봉 등반은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너무 산뜻하다. 겨우내 풀지 못했던 온몸의 근육들을 자근자근 풀어 볼 좋은 기회다. 아내는 이 등산이 버겁다고 하지만, 난 그리 버거운 코스가 아니라서 딴 맘을 먹었다.

그것은 봄의 소리를 카메라에 담는 것이다. 등산보다는 사진이다. 이런 상황을 제사보다 젯밥이라 하던가. '저렴 디카'로는 작품을 찍을 수 없다고 말하던 친구의 코를 조금은 뭉개놓아야 한다. 기어코. 너무 결의가 명쾌해서인가. 행운의 신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반기고 있었으니.

복수초, 버들강아지 그리고...

이게 웬 횡재인가. 눈 속에서 결연히 새봄을 만개로 알린다는 복수초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며칠 전 내린 눈은 그 어디도 남아 있지 않지만 복수초만은 그 노오란 얼굴이 환하다. "여보, 여기 봐요. 이거 복수초 아녜요?" 아내가 먼저 보고 복수초의 향연이 찬란한 야생초 밭으로 나를 이끈다.

버들강아지 새뜻한 꽃 세 송이가 환상적으로 봄의 향기를 뿜고 있다.
▲ 봄의 소리5 버들강아지 새뜻한 꽃 세 송이가 환상적으로 봄의 향기를 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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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들강아지가 알리는 봄의 노래는 야들야들하기만 한 게 아니고 늠름하기까지 하다.
▲ 봄의 소리6 버들강아지가 알리는 봄의 노래는 야들야들하기만 한 게 아니고 늠름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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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초는 이미 김민수 님이 멋지게 찍어 '복수초는 복수초로 피어날 뿐이다'란 기사에 걸어 놓은 걸 보아서 알고 있다. 서양에서는 '슬픈 추억'이 꽃말이고, 동양에서는 '영원한 행복' 혹은 '행복을 초래함'이라고 한다. 왜 같은 꽃인데 동양과 서양이 그 꽃말이 다른지 모르겠다. 난 동양인이니 '영원한 행복'인 것이다. '슬픈 추억'보다는 100배는 나은 꽃말이다.

꽃말대로 이미 행복해지기는 했는데, 문제는 이 꽃을 어떻게 '저렴 디카'로 작품성 있게 담느냐 하는 거다. 복수초로 친구에게 복수를 해야 한다. 꼭! 무릎을 꿇고 복수초 가까이 쪼그려 앉았다. 가까이서, 좀 멀리서, 아주 멀리서, 해를 등지고, 해를 바라보고, 꽃의 바로 위에서, 바로 옆에서, 그냥 두서없이 몇 번 셔터를 눌러댔다.

햇볕이 너무 강해 조그만 카메라 LED창으로는 즉석 확인이 불가능하다. 이미 행복을 가져다 준 복수초인데, 분명히 사진도 잘 찍혔을 거라고 믿고 코스대로 등산을 했다. 내려오는 길에 아무래도 미심쩍어 다시 몇 컷 더 찍었다. 다행히 내려오다 찍은 한 장이 그럴싸하다.

이미 산에 오르내리면서 맘껏 물을 머금은 진달래 봉오리며 오리나무 수염, 갈참나무 봉오리를 카메라에 담았다. 물론 나무 이름은 대강 그렇게 부른 것이지 확인된 것은 아니다. 동식물의 이름에 대하여 그리 아는 바가 없는 터라,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들은 것이 지식의 전부다.

다 내려와 개울을 지나는데 이번에는 버들강아지가 흐드러지다. 역시 봄의 소리는 식물들에서 시작되는가 보다. 버들가지에 붙어 몇 번이고 셔터를 눌러대자 지나던 등산객이 어쭙잖은 내 행동이 거슬렸던지 뒤돌아 다시 한 번 힐끔 쳐다보고 간다. 속으로 "'그 저렴 디카'로 작품을 찍는다구?" 하는 것만 같다.

누가 뭐라면 어떤가. 모두가 제 멋에 사는 건데. 내 '저렴 디카'가 작품을 찍어줄 것인가에는 관심이 없다. 정말 '봄의 소리'를 찍어줄지만 걱정이다. 이미 난 복수초로 인하여 행복에도 초대되었고, 버들강아지나 막 물오른 봉오리들로 인하여 봄의 소리를 들었다. 근데 그 소릴 내 '저렴 디카'가 들었을지 그게 참 궁금하다.

그것은 독자들 몫이다. 이 기사에 든 '저렴 디카'가 낳은 아들딸들을 보시고 좋은 쪽으로 결정해 주심 좋겠다. 허허허. 댓글을 달아주시면 더 좋고….

진달래꽃 봉오리가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하는 것 같다.
▲ 봄의 소리7 진달래꽃 봉오리가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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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멋대로 굴참나무 봉오리라 불렀던 놈이다. 조금은 시간이 걸려야 할 것 같다.
▲ 봄의 소리8 내가 멋대로 굴참나무 봉오리라 불렀던 놈이다. 조금은 시간이 걸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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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나무? 아닌 것 같다. 오리나무과라면 몰라도. 하지만 그 새 기운은 분명하다.
▲ 봄의 소리9 오리나무? 아닌 것 같다. 오리나무과라면 몰라도. 하지만 그 새 기운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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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3월 9일 대전 유성의 수통골과 계룡산(금수봉)에서 슬림형 디카로 촬영한 것입니다. 갓피플, 당당뉴스 등에도 송고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디카, #디지틀카메라, #봄, #복수초, #버들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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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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