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진 사퇴 카드를 선택할까, 아니면 버티기로 돌입할까.

'촛불 재판' 개입으로 대법원 진상조사단의 조사를 받고 있던 신영철 대법관이 갑자기 "생각할 시간을 달라"며 조사 연기를 요청하면서 그의 거취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대법원 안팎에서 신 대법관이 자진 사퇴를 결심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신 대법관은 9일 오후 2시 30분께 대법원 진상조사단의 조사를 받던 도중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한 뒤 대법원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갔다. 진상조사단은 신 대법관의 요청을 받아들여 조사를 잠정 중단한 상태다.

이날 기자 수십 명은 신 대법관의 퇴근 시간에 맞춰 서초동 대법원 현관 입구에서 진을 치고 대기했다. 하지만 신 대법관은 저녁 6시께 기자들을 따돌리고 지하 주차장을 이용해 대법원을 빠져나갔다. 출근에 이어 퇴근 때도 기자들의 눈을 따돌린 것이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신 대법관이 거취를 결정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지금 조사 중이니까…"라고 말끝을 흐린 뒤 대법원을 떠났다.

하지만 신 대법관은 9일 오후 대법원 공보관을 통해 "내일 다시 조사를 받겠다. 오늘 사퇴 등과 관련해 입장 표명할 것은 더 없다"고 밝힌 것으로 <연합>은 전했다.

대법원 진상조사단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약 3시간 동안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을 지낸 신 대법관을 상대로 촛불 재판을 맡은 형사 단독 판사들에게 이메일을 보낸 경위 등 재판 외압 여부를 조사했다.

또 전교조 교사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을 맡은 판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외압을 가했는지 여부 등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진상조사단은 허만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을 상대로 촛불 재판을 특정 재판부에 몰아준 배경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였다.  

이에 앞서 진상조사단은 7일과 8일 이틀에 걸쳐 촛불집회 관련 사건을 맡았던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 단독 판사 20명을 조사했다. 진상조사단은 이르면 이번 주 내에 조사를 끝마치고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한편 민생민주국민회의 등 시민단체들은 9일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객관적인 진상조사기구를 만들어 관련 의혹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사법부만큼은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재판을 진행했으리라 믿었던 국민들이 충격에 빠져 있으며, 시민사회단체들도 이는 나라의 근본을 뒤흔드는 중대한 사태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며 "신영철 대법관의 즉각 사퇴와, 대법원장의 대국민 사과, 사법부의 일대 혁신"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