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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러시아 병대의 대열 중간쯤으로 다가갔다. 이토 히로부미라고 판단되는 자는 그 앞에 열지어 있던 영사단 앞에서 되돌아왔다. 절호의 기회였다.

"기회는 일순간!" 나의 가슴이 외치고 있었다. 침이 꿀꺽 넘어갔다. 아무리 담력이 강하다 하더라도 나 역시 인간이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나는 민첩하게 움직여, 스며들듯이 병대의 열 사이에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열 걸음 남짓한 거리에 이토 히로부미로 판단되는 사람의 오른쪽 가슴이 내 눈으로 빨려들고 있었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빠르게 권총을 꺼냈다.

"기회는 일순간!" 나는 호흡을 멈추고 내 눈으로 빨려드는 이토 히로부미의 가슴을 향하여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타앙 타앙!" 쓰러지는 자의 흔들림에 어머니의 얼굴이 겹쳐졌다.

이 글은 어디에서 인용한 것이 아니라, 올해 발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내가 써나가고 있는 장편소설의 일부분이다. 작가가 안중근 의사(義士) 속으로 화선지에 스며들듯이 스며들어가 창작하는 기법이다. 작가가 곧 안중근 의사가 되는 것이다. 편지에서 "네가 이번에 한 일은 모든 동포 모두의 분노의 세계만방에 보여준 것이다. 이 분노의 불길을 계속 타오르게 하려면… 구차히 상고를 하여 살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을 남기지 않기 바란다"며 아들의 의연한 죽음을 당부한 안중근의 어머니 속으로도 스며들 것이다.

20년쯤 작가 생활을 하다 보니, 이런 절정의 순간부터 써놓고 앞뒤를 차곡차곡 채워가는 것이 능률적일 때가 많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올해는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그리고 내년은 안중근 의사가 여순 감옥에서 순국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그러한 때 소설을 출간하는 것은 여러 모로 효과적이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의 <안중근 평전>이 이토 히로부미 암살 100주년인 올해에 출간되어 안중근 의사의 민족정신을 부각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작가가 뒤안길에 감춰진 역사를 복원하거나 이미 대중에게 인식되어 있는 부분을 재조명하는 소설을 써나갈 때 증언(證言)만큼이나 절실히 필요한 것은 사료(史料)를 비롯한 온갖 자료다. 요즘 이야기를 쓰는 데는 인터넷이 있어서 소재를 구하는 데 그다지 애를 먹지는 않지만, 인터넷이 없던 때의 시대상을 찾아나가는 데는 애를 먹기 마련이다. 종이신문이 나오던 때의 사료로서는 종이신문만큼 귀중한 것도 드물다.

안중근 의사 이야기를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는 동시에 아주 심리적이고 시적(詩的)인 문체가 녹아 있는 새로운 기법으로 소설을 써나가려고 준비하는 나의 눈에 아주 적절한 책이 한 권 들어왔다.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 1884부터 1945까지>(언론인 김성희 해설, 서해문집 출간).

책의 판형이 국배판보다 상하가 다소 짧은 변형국배판이다.
▲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 1884~1945> 앞표지 책의 판형이 국배판보다 상하가 다소 짧은 변형국배판이다.
ⓒ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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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 않아도 나라를 빼앗겼던 그 시절의 사건을 다룬 신문들을 찾아보아야 할 판인데, 1884년부터 1945년까지 역사의 흐름을 읽을 수 있도록 그 시절의 신문 1면을 선명하게 담아내고 읽기 좋게 신문의 내용을 정리하였으며 해설까지 곁들여 놓았던 것이다.

종이신문 1면은 누구나 알다시피 특종을 다룬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사건을 다룬 기사는 모두 세 가지가 나와 있었다. 1909년 10월 29일자 <경향신문>과 1909년 11월 9일자와 1909년 11월 20일자 <대한매일신보>와 1910년 4월 1일자 <경향신문>이었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 직후에 나온 1909년 10월 29일자 <경향신문>의 '통간부에 온 전보를 보니'의 기사 전문(全文)은 이렇다.

만주 여행 중에 있는 이등 공은 작일 오전 9시에 하루빈 정거장에서 한인에게 육혈포 세 방을 맞았다는데 그 한인은 당장에 잡혔더라. 나중에 온 전보를 보니 이등 공을 암살한 대한 사람은 평양인 윤지안(尹知安)이라, 이틀 전에 원산에서 하루빈에 왔는데 양복을 입어 일인과 다름없고 나이 20세 가량 되었는데 단총을 가지고 정거장에 있다가 여섯 방을 노렸는데 이등 공의 가슴과 배 사이에 세 방을 맞췄고 그 다음에는 청상 씨와 삼 비서관과 전중 이사관이 맞았더라. 반 시간 후에 이등 공은 장서하여 그 시체를 대련으로 가져갔고 총 놓은 한인과 이전에 기차가 서하구를 지날 때에 단총을 가진 한인 2명을 잡았다는데 아라사 관헌에서 심문한 후 일본으로 보내리라 하고 우리 황제 폐하께옵서는 이 전보를 보시고 일본에 조전(弔電)을 보냈읍셨더라.

여기서 '하루빈'은 '하얼빈', '장서'는 '죽음', '아라사'는 '러시아'라고 책에서는 친절히 알려주고 있으며, <대한매일신보> 기사는 저격자의 본명이 안중근임을 밝혀 주고 있다.    

100년 전인 1909년은 민족 최대의 적(敵) 이완용이 이재명 의사에게 피습된 해이기도 하다. 1909년 12월 23일자 <대한매일신보>가 그 사건 장면을 생생히 기록해 놓은 것을 이 책은 신문 사진과 함께 잘 정리하여 알려주고 있다.

해설 중에 '이재명은 인력거꾼 살인죄로 사형됐으나 이완용은 두 달여간 치료를 받고 퇴원한 후 부귀영화를 누렸다. 그러니 사필귀정(事必歸正), 권선징악(勸善懲惡)이 모두 지어낸 이야기랄 수밖에.'라는 문장이 현실의 비극을 느끼게 해준다.

안중근 의사가 병원 의사인 줄 알거나 일본의 담배 마일드세븐을 피우는 중고생을 목격하게 되는 요즘이다. 독도에 대한 일부 국민의 무관심을 대하듯이, 명백히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런 사람이 내 눈에 마침 띈다면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 1884~1945>를 선물해 주고 싶다. 
둑립신문의 모습과 주요기사를 알려주고 있다.
▲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 10면 둑립신문의 모습과 주요기사를 알려주고 있다.
ⓒ 서해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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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독립기념관> 관보에 송고했으며, 유포터에 송고할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1면으로 보는 한국근현대사 세트 - 전3권

김성희.고지훈.황병주 해설, 서해문집(2011)


태그:#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 #서해문집, #안중근, #이토 히로부미, #하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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