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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속에 취업의 관문을 돌파하려는 지금의 20대는 '인턴세대'다. 기업인턴, 행정인턴, 청년인턴, '알바'형 인턴부터 '취업 보장'형 인턴까지 다양하다. 그 어느 때보다 인턴세대의 고민이 깊다. 어둠의 터널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 겨울 가뭄에 목이 타 들어갔던 일부 지역 주민들처럼 숨이 턱턱 막히는 '취업란'에 직면해 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인턴세대의 명암' 기획을 연재한다. 이 기획시리즈에서는 다양한 인턴들의 고민과 전문가들의 조언, 인턴제도의 장·단점 등을 두루 살펴본다. <편집자말>

 

"매일 아침 출근할 때,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은 느낌이 든다."

 

지난 2일 오후 서울 양재동에서 만난 한 외국계 회사 인턴 김윤선(가명·25)씨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회사로부터 정규직 전환을 약속받은 그는 "취업난이 심한 상황에서 (나의 말은) 배부른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많다"고 전했다.

 

김씨는 "인턴 6개월 동안 100만원 남짓한 월급 받으면서 아침 9시부터 저녁 8시 반까지 개미처럼 일해야 한다"며 "회사는 '인턴 끝난 후 계약직으로 전환되고, 정규직 자리가 나면 채용시켜주겠다'고 했지만, 나에겐 '희망고문'일 뿐"이라고 토로했다.

 

취업이나 경력 쌓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행정인턴과는 달리, 김씨는 취업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위치에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적은 돈 받으며 임시직으로 일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그의 하소연은 단순한 푸념이 아니었다.  

 

김씨뿐 아니라 남들보다 취업에 유리한 대기업·공기업 인턴 역시 "정규직 일자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인턴 등 임시직을 전전하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명문대 출신의 '고 스펙' 구직자들도 '희망고문'을 당하는 '인턴세대'의 운명을 거스르기 어려운 것이다.

 

겉으로 '성적우수 인턴 정규직 채용'... 속으로는 '구체적 계획 없어'

 

정부가 최근 실업대책의 중요한 수단으로 인턴제도를 내세우면서, 관공서뿐만 아니라 공기업과 민간기업에까지 인턴제도가 확산되고 있다. 공기업·대기업의 인턴 경력이 취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는 청년들의 인턴 지원이 쇄도하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지난해 9월부터 지난 2월까지 한 공기업에서 인턴생활을 했던 박호진(가명·28)씨는 최근 이 회사 인턴에 다시 한 번 지원했다. 회사가 성적 우수자에 한해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50대1에 가까운 치열한 경쟁 끝에 인턴에 합격한 그는 "지난해 인턴 할 때는 친구들이 '졸업 후 6개월을 버려가면서 인턴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했다"면서 "지금은 정규직 전환이 될 수 있는 인턴에 합격해 친구들이 부러워한다"고 전했다.

 

기획부서에 있다는 박씨는 "처음엔 직원들에게 필요한 자료를 찾아주고 정리하는 보조업무를 했다"면서 "이후 점점 비중 있는 역할을 하게 되면서 책임감 있는 업무를 맡게 돼 보람을 느꼈다"고 인턴생활에 대한 만족감을 나타냈다.

 

극심한 취업난 속에서도 정규직 채용의 지름길에 올라선 박씨는 분명히 수많은 인턴세대에겐 선망의 대상이다. 하지만 그는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씨는 "성적 우수자를 정규직 채용하겠다고 했지만, 모든 게 불투명한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실제 이 회사 인사팀 관계자는 "이번 인턴은 정규직 채용과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좋은 인재들이 많이 지원했다"면서도 "성적 우수자에 대한 정규직 채용에 대해 내부적으로 확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정규직 안 뽑으니, 인턴 끝나면 다시 인턴 지원"

 

앞서 소개된 김씨와 박씨의 사례처럼 한국에서는 인턴 제도를 정규직 채용 과정으로 보는 서구형 인턴제도를 운용하는 곳이 많지 않다. 한국 기업의 많은 인턴제도는 사무보조 등을 통해 사회경험을 쌓는 데 도움이 되는 수준이다.

 

"이러한 인턴제도는 '이력서 한 줄'에 도움이 되지만, 실제 취업과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는 게 최근 청년 구직자들의 의견이다. 인턴 경력이 기본 '스펙'이 될 정도로 인턴제도가 크게 확대된 반면, 정규직 채용의 문은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24일 취업포털사이트 잡코리아가 최근 3개월 동안의 채용공고를 분석한 결과, 작년 11월에 1614건이었던 인턴채용 공고가 올해 1월에는 18.3%가 늘어난 1957건에 달했다. 올해 행정인턴과 민간기업의 인턴 자리는 모두 합쳐 10만 개에 이른다. 그에 반해 작년과 비슷한 수준의 정규직 채용 계획을 밝힌 기업은 거의 없다.

 

결국 경기가 본격적으로 회복되기 전까지는 정규직 일자리를 얻지 못한 채 인턴 등 임시직만 전전하는 인턴세대가 대량으로 양산될 수 있는 상황이다. 현재 직업을 구하지 못한 청년 구직자는 모두 30여만 명이다.

 

한 IT기업 인턴 김성진(가명·24)씨는 "정규직 문이 좁아지는 상황에서 정규직이 되기 위해서라도 우리 세대는 인턴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사회적 타협을 통해 전반적인 시스템이 개선되지 않으면, 우리는 열악한 환경에서 희망고문을 받게 된다"고 지적했다.

 

지난 2월부터 국토해양부 산하 공기업 인턴으로 활동하고 있는 안지환(가명·25)씨는 "지금 하는 일이 경력에 도움이 되는 전문적인 일이라 상당히 만족한다"면서도 "6개월 뒤 인턴이 끝나면 일자리를 알아봐야 할 텐데, 정규직보다 인턴일 확률이 더 높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임시직 전전 인턴세대의 비애... "인턴세대가 아니라 다행"

 

인턴세대에 닥친 가장 큰 문제는 경기가 회복된다 해도 기업들이 인턴제도를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대학생들은 취업을 위해 기꺼이 인턴에 지원하지만, 기업들은 이를 싼값에 사람을 부릴 기회로 여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는 기우일까? 다음의 두 사례는 인턴세대의 비애를 명확히 보여준다.

 

"제 친구가 지난 여름 한 패션 회사에서 인턴을 했다. 그 친구가 우연히 자신의 이름이 아르바이트생 장부에 있는 것을 확인했다. 친구는 황당해 했고, 화가 많이 났다." - 대학생 유수진(가명·23)씨

 

"한 공기업에 다니는 친구가 있다. 그 회사는 가산점 특혜를 내걸고 우수한 인턴들을 모았다. 인턴들도 가산점 때문에 열심히 했다. 하지만 회사 내부적으로는 가산점에 대한 계획이 전혀 없었다. 친구는 '내가 인턴세대가 아니라 정말 다행'이라고 했다." - 취업준비생 이동수(가명·28)씨


태그:#인턴, #인턴세대, #희망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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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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