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임종 직전의 장인어른 모습.
 임종 직전의 장인어른 모습.
ⓒ 조호진

관련사진보기


장인이 4일 정오께 운명하셨다. 오전 10시께 가족들을 소집한 담당 의사가 "오늘 내일이 고비"라고 했는데, 2시간 후 장손의 인사까지 받은 뒤 영면하셨다. 남은 것은 사건의 진실이었다.

장인의 사고를 알게 된 것은 병원의 연락이었다. 비보를 받고 달려갔을 때 장인은 의식불명 상태였다. 사건은 지난 2일 오후 5시 40분께 장인이 버스 정류장 앞 차도에서 갑자기 넘어지면서 뇌출혈을 일으켰으며, 이를 발견한 승객이 119에 신고했던 것으로 구급활동일지에 기록돼 있었다.

의혹이 일었다. 비록 팔순의 나이지만 6.25전쟁에 참전한 장인은 투철한 군인정신의 소유자로 자식의 부축도 거절할 만큼 자신의 의지로 직립 보행하던 분이셨다. 그런데 갑자기 쓰러졌다? 그것도 인도가 아닌 차도에서? 구급활동일지에는 '교통사고 아니라고 함'이라고 기재돼 있지만 혹시 교통사고를 위장한 것은 아닌가? 119에 신고한 여성은 왜 전화를 받질 않는 것인가?

119 구급대원을 만나 당시 상황을 청취했지만 사건 내용을 정확히 알진 못했다. 119 신고 당시의 전화통화 내용을 통해 진실에 접근하고 싶었으나 절차를 밟아야 했다. 정보공개 청구를 해놓고 신고 여성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겨우 받았다. 버스 승객이었던 이 여성은 장인이 버스를 타려고 몇 걸음 걷다가 갑자기 쓰러졌으며, 곧 이어 버스운전사가 내려가 부축했고, 자신이 신고했다고 말했다.

친절한 설명이었지만 의혹은 가시지 않았다. 신고 여성도 버스운전사도 믿을 수가 없었다. 혹시, 교통사고를 위장하려고 말을 맞춘 것은 아닌지? 경찰이 사건규명에 나섰다. 장인어른의 주검을 확인한 경찰은 가슴에 멍 자국을 보면서 사고의 개연성을 갖고 수사에 나섰다.

진실을 규명한 것은 CCTV이었다. 버스 외부에 부착된 CCTV 확인 결과, 정류장 표지판 쇠기둥을 잡고 버스를 기다리던 장인은 버스가 도착하자 탑승하기 위해 서너 걸음 걷다가 1차로 쓰러졌다. 이를 목격한 여성 승객이 119에 신고를 했고, 버스운전사가 장인을 부축하던 도중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장갑을 집으려고 부축한 손을 잠시 놓은 순간 장인이 뒤로 몇 걸음 물러나면서 2차로 차도로 쓰러지는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병원 관계자의 의견 및 가족들의 증언을 종합해 볼 때 갑자기 쓰러진 원인은 저혈당 쇼크에 의한 것으로 추정됐다. 장인은 당뇨를 앓고 있었다. 여러 의혹과 불신 등이 말끔히 해소됐다. 이제 장인을 편히 보낼 수 있게 됐다.

전여옥 의원 집단폭행사건 그리고, CCTV

고이 영면한 장인 그리고 빈소 모습
 고이 영면한 장인 그리고 빈소 모습
ⓒ 조호진

관련사진보기


어느 도시, 어느 도로에서든 교통사고 목격자를 애타게 찾는 플래카드를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경찰이 사고에 대해 조사하고 가해자 및 목격자 등에 대해서도 조사했을 것인데도 피해자 가족들은 경찰수사를 신뢰하지 못한다. 피해자가 사고 당시의 상황을 진술할 수 없는 의식불명 혹은 사망자일 경우엔 특히 그렇다. 교통사고뿐 아니라 각종 사건에서 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로 누명을 쓰는 경우가 흔치 않게 발견되기 때문이다.

경찰이 50여명의 수사관을 대거 투입해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 집단폭행 사건수사에 나섰지만 진실규명은커녕 각종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진실을 말하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정치적인 문제라면 더욱 그렇다. 사건의 파장을 예상할 수 있는 경력자라면 충분히 정치적 계산을 할 수도 있다. 정치적 사건에서 사건 왜곡과 조작은 얼마나 많았는가.

모든 사건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전력은 사건의 판단근거가 된다. 많은 국민들은 전여옥 의원의 주장과 경찰수사에 대해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한 채 의혹을 품고 있다. 정치적 사건에서 노림수는 헤드라인이다. 언론과 수사기관, 세인들의 설왕설래에 의해 사건은 난마처럼 얽혀지면서 '전여옥 의원 집단폭행 사건'이라는 헤드라인만 남을 뻔했다.

전여옥 의원 폭행 관련 CCTV가 등장했다. 이 장면에선 전 의원의 주장과 달리 집단폭행과 심각한 폭행 장면은 보이지 않는다. 많은 국민들은 CCTV로 사건을 확인하면서 사건의 진실은 도대체 뭐야? 라고 의혹의 눈길을 더욱 쏟고 있다. 용산참사에서 확인했듯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거짓을 일삼기도 하는 경찰이 수사 주체이니 진실규명은 물 건너 간 것 아닌가? 하고 불신의 벽을 쌓고 있다.

전여옥 의원의 주장과 경찰 또는 검찰의 수사를 전적으로 믿지 못하는 게 국민들의 시선이다. 국민은 불신의 덩어리가 아니다. 불신과 의혹은 그들이 자초한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CCTV뿐인 세상이 됐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는 이 사건의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정치적 재미를 봤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양치기 소년'의 예화에서 알 수 있듯이 서너 번 속으면 그 다음엔 진실을 말해도 믿지 않게 된다. 믿는 게 정상이 아니라 믿지 않는 게 정상이다. 현재로선 CCTV가 조작된 화면이 아니라면 결국 보이는 부분만 믿을 수밖에 없다.

진실규명 그리고, 아름다운 이별

조문객을 맡고 있는 가족들
 조문객을 맡고 있는 가족들
ⓒ 조호진

관련사진보기

CCTV가 진실을 규명해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교통사고가 아니라는데 왜 차도에서 쓰러졌고 왜 버스가 등장하지? 왜 가슴에 멍이 들었고 손목 부상은 또 왜 그런 거지? 혀가 상당히 상했는데 그건 또 왜? 각종 의혹과 의심 때문에 유족들은 장인을 고이 떠나보내지 못한 채 시간과 경제비용을 허비하면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야 했을 것이다.

장인을 도운 여성승객과 운전사도 피해자로 남을 뻔했다. 선량한 시민인 이들은 이웃의 위험을 모른 채 하지 않은 분들인데 CCTV가 진실을 보여주기 이전까지는 의혹의 대상자였다. 그래서 경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아야 했는데 다행히도 CCTV가 진실을 말해줌으로 해서 의혹은 말끔히 해소됐다.

물론 참고인 신분이지만 경찰에 불려가는 것은 매우 불편한 일이다. 그래서 신고하기를 주저하고, 이웃돕기를 외면한다. 나 하나 살기 바쁜 세상,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누명까지 씌우는 세상, 돈과 권력이라면 진실과 거짓을 바꿔치기 할 수 있는 세상이 결국 CCTV를 진실의 파수꾼으로 세우고 말았다.

그럼에도 신고하고 이웃돕기에 나서야 한다. 어떤 어려움이 닥쳐온다 해도 진실을 말해야 한다. 어떻게 진실의 주인공 자리를 CCTV에게 내줄 수 있는가. 짐승과 달리 인간에겐 양심이 있는데 말이다. 119에 신고해 주신 30~40대 가량의 경상도 말씨를 사용하는 여성과 광명-평촌 구간을 오가는 3번 버스 운전사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임종한 장인의 얼굴은 편했다. 아내와 자손들의 지극정성 덕분에 80평생 동안 큰 부족함 없이 삶을 누렸으니 그랬을 것이고, 비록 사고로 생의 마감을 앞당겼지만 억울함을 품을 이유가 없었으니 그렇고, 일가친척 모두 모여 하늘나라로 고이 가시라고 애도하며 숙연한 마음으로 장례를 치르니 그렇다.

아버님! 하늘 밝은 길 환히 웃으면서 가세요.
홀로 남은 어머님은 아버님 곁으로 가시는 그날까지 잘 모시겠습니다.
남은 자손들 또한 서로 화목하게 지내면서 이웃을 돕는데 마음 나누며 살겠습니다.

최종일 - 젤마노
주님 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태그:#CCTV, #장인, #전여옥, #진실규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