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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과 ‘아! 백범 김구 선생’을 관람했던 ‘국도(國都) 복합영화관’. 옛날에는 ‘남도극장’이라 했습니다. 그때는 출입구에서 표 받는 아저씨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는데요. 학창시절 누님들을 따라다녔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유관순’과 ‘아! 백범 김구 선생’을 관람했던 ‘국도(國都) 복합영화관’. 옛날에는 ‘남도극장’이라 했습니다. 그때는 출입구에서 표 받는 아저씨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는데요. 학창시절 누님들을 따라다녔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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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학교에서 단체로 영화 관람을 자주 했습니다. 칠판 위에 매달린 스피커에서 영화 관람을 예고하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면 공부를 하다가도 교실이 떠나갈 듯 함성이 터졌거든요. 어쩌다 취소되어 속상하기도 했지만···.  

나이가 몇 년 늦은 것은 예사이고, 아들이 딸로, 딸이 아들로 호적에 올라 있는 사람도 상당했던 시절이라서 한동네에 살면서도 다니는 학교가 다른 친구가 많았습니다. 해서 단체 영화 관람이 어려운 시골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시내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을 무척 부러워했지요. 전학 가고 싶다는 애들이 한둘이 아니었으니까요.

당시 단체관람료는 20원, 1962년에 화폐개혁이 되면서 2원이 되었으니 도깨비가 재주넘고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가 되겠습니다. 친일파들을 대거 등용했던 이승만 정권을 홍보하는 영화도 관람했고, 왜놈들의 잔인함과 치욕의 역사를 보여주는 영화도 관람했는데요. <유관순>, <아! 백범 김구 선생> 등이 기억에 남습니다.

도금봉이 열연했던 '유관순'

모두가 아는 1919년 3월1일의 만세시위는 우리 민족이 일제에 항거해 일어선 민중궐기였고, 33인 민족주의자들의 독립선언서보다도 전국적으로 독립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던 역사적 사건이라 하겠습니다.

인기 여배우 도금봉이 유관순 누나 역을 맡았던 영화 <유관순>은 초등학교 2학년인가 3학년 때 관람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이화학당에 다니면서 교장의 만류에도 고향의 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조직하고 감옥에서 옥사하기까지 유관순의 기질과 품성, 그가 겪고 깨우쳐 갔던 과정이 전개됩니다.

도금봉이 왜놈 순사들에게 끌려가 두 손목이 형틀에 매달리는 장면, 왜놈 순사에게 말채찍으로 맞아 옷이 찢기고 전기고문을 당하면서도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는 장면은 반일감정과 함께 애국심을 심어주었습니다.

형틀에 매달린 도금봉이 고문을 당할 때마다 왜놈 순사에게 욕하는 소리와 함께 여학생들의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며, 죽음을 맞이할 때는 장내가 온통 눈물바다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후 학생들 사이에는 이런저런 괴담이 나돌았는데요. 자세한 내용은 기억하지 못합니다.

영화관에서 우는 여학생들은 남학생들의 놀림감이 되기도 했는데요. 남자는 눈물을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유교사상이 뿌리가 깊던 때라서 남학생들은 눈물이 나오거나 울고 싶어도 참아야 했습니다. 만약 울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놀림감이 되어야 했으니까요. 

주말에 TV에서 방영하는 추억의 영화를 감상하면 배우들 대사는 물론 소품들도 빈약하기 짝이 없는데요. 모든 게 부족했던 시절이었으니 스태프진이나 출연 배우를 탓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입니다. 

이승만 시절에는 그래도 반일감정을 자극하는 내용의 영화들이 많이 제작·상영되었는데,
1961년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자 <창살 없는 감옥>, <돌아오지 않는 해병>, <빨간마후라> 등 반공영화 일색이었습니다.

특히 중·고등학생들의 단체영화 관람이 계속 이어지던 1965년에 신상옥 감독이 제작하고 최은희 씨가 '명성황후'역을 맡았던 영화 <청일전쟁과 여걸 민비>는 제목부터 민족 자존심을 훼손하고 있습니다.

'아! 백범 김구 선생'

임시정부 주석으로 조국의 독립과 민족통일을 위해 평생을 바친 김구 선생이 태어나 경교장에서 흉탄에 쓰러지기까지 파란만장했던 이야기를 담은 <아! 백범 김구 선생> 영화와 백범 역을 맡았던 배우이자 감독이었던 전창근 씨를 잊지 못합니다. 

베테랑으로 소문났던 전창근이 감독·주연했던 '아! 백범 김구선생'은 장롱에 감춰놓은 흑백사진처럼 몇 커트가 뇌리에 남아 있는데요. 관중을 압도하는 위엄과 인품, 카리스마에 반해서 그런지 그의 옛날 얼굴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이 영화는 초등학교 4학년 때 관람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피습을 당한 김구 선생이 이마에서 피를 흘리는 장면이 영화의 대미를 장식합니다. 온몸에 전율을 느끼면서 꼭 아버지가 당한 기분이 들었으니까요.

또 하나는 뒷모습만 나오는 장면인데요. 포병장교 안두희가 권총을 차고 백범 선생이 거처하는 경교장 이층 사무실로 올라가는 장면입니다. 그의 군홧발이 한 계단 한 계단 오를 때마다 들리는 소리는 제 손에서도 땀이 날 정도로 장내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으니까요.

안두희가 사무실에 들어서자 몇 발의 총성이 들리면서 김구 선생의 이마에서 선혈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그래도 김구 선생은 의연한 자세를 잃지 않고 손으로 책상을 치며 안두희를 혼내면서 쓰러지는데요. 그 순간, 극장은 울음바다가 되었고 필자도 눈물을 삼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친일파들이 득세했던 이승만 정권하에서 항일투쟁이라는 시대적, 역사적 배경을 그린 '아! 백범 김구 선생'이 제작·상영되어 영화팬들에게 인기를 끌었다는 게 5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아이러니합니다. 

영화이긴 하지만, 임시정부 주석으로 통일의 선구자인 김구로 출연해 어린 제 가슴을 설레게 했던 감독이자 배우였던 전창근 씨가 변신과 변절을 거듭하면서 일제의 만주이주 정책을 홍보하는 영화 <복지만리>를 제작하고 친일연극에 매진했었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릅니다.

김구 선생을 향한 안두희의 총탄과 함께 우리 역사는 굴절되고, 파렴치한 반공주의와 통일을 빌미로 권력을 연장하는 등 온갖 만행을 저지른 박정희를 만나게 됩니다. 김구 선생의 정신적 후계자인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가 반증하고 있지요. 

이제는 세상이 말세가 되어 가는지, 헌법에도 명시된 임시정부 주석이었던 김구 선생이 테러리스트라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이 나오고, 친일행적이 뚜렷한 <동아일보> 설립자 김성수는 박정희에게 건국공로훈장(2등급)을, 민족의 영원한 누나 유관순은 3등급에 해당하는 건국공로훈장 단장을 추서 받았습니다.

김성수-유관순의 절름발이 훈장 추서는 친일 인사들이 심사에 다수 포함된 점을 문제로 지적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50년 가까이 지나도록 바로잡자는 지식인 하나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통탄할 일이지요. 하늘이 원망스러울 따름입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고 했는데···.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http://www.shinmoongo.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유관순, #백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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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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