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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헌법재판소가 현행 공직선거법 제62조 제2항과 제93조 제1항의 장애인 차별 여부를 판결했다.

 

제62조 제2항은 각하로 판결났지만 공직선거에 출마한 장애인 후보의 활동보조인을 선거사무원과 별도로 둘 수 있다고 판결문을 통해 해석했다. 이는 환영할 일이고, 마땅한 일이다. 중증장애인 후보의 활동보조인과 선거사무원을 명확히 구별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93조 제1항은 기각으로 판결나 선거운동 방법에 있어서의 차별을 시정하지 못하게 되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선거운동 방법에 아무런 차등을 둘 수 없는 것은 대단히 유감스런 일이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장애인 참정권 확보에 있어서 절반의 승리에 불과하다.

 

사회당 중증장애인 후보들, 장애인 참정권을 외치다

 

사회당에서는 지난 2006년 5·31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서울의 박정혁 광역시의원 후보, 충북의 이미경 도의원 후보, 광주의 김동효 광역시의원 후보, 대구의 오동석 광역시의원 후보 등 4명의 중증장애인 후보가 나왔다.

 

사회당의 중증장애인 후보들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현행 공직선거법이 중증장애인에게 정당하게 필요한 조치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심각한 차별을 당하며 어렵게 선거운동을 했다.

 

당시 일부 선거관리위원회는 장애인후보의 활동보조인을 선거사무원에 포함시켜, 선거사무원 수를 제약하는 규정(공직선거법 제62조 제2항)에 따른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했다. 법 해석은 선거관리위원회 별로 제각각이었다.

 

또 언어장애 등 의사소통상의 장애가 있는 후보들은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선거운동 수단이 필요했음에도 이를 제약하는 규정(공직선거법 제93조 1항) 때문에 비장애인 후보들에 비해 현저하게 불리한 선거운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사회당은 2006년 5월 26일 공직선거법 상의 이 두 조항이 장애인 참정권을 가로막는 위헌이라며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위헌소송을 냈다.

 

활동보조인은 선거사무원이 아니다

 

중증장애인은 식사, 용변, 외출 등 일상생활에 있어 활동보조인서비스가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이에 정부에서는 2007년부터 전국의 중증장애인 약 2만여 명을 대상으로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후보로 출마한 중증장애인에게도 후보가 직접 명함을 돌리거나, 후보를 소개하는 등 선거운동을 자유롭게 할 수 없을 경우, 이를 활동보조인이 보조하는 것이 당연하다 할 것이다.

 

하지만 당시 일부 선거관리위원회는 현행 공직선거법상 활동보조인은 선거사무원으로 등록하지 않고서는 명함을 돌리는 등의 선거운동을 할 수가 없다고 해석했다. 이는 활동보조인이 필요한 중증장애인 후보의 경우 그렇지 않은 비장애인 후보에 비해 적은 선거사무원으로 선거운동을 해야 함을 의미했다.

 

헌법재판소는 '선거사무원에 활동보조인이 포함되는가의 문제'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판결했다.

 

"활동보조인은 거동이 불편한 중증장애인 후보자의 손발이 되어 비장애인 후보자라면 직접 할 수 있는 행위, 즉 중증장애인 후보자의 물리적인 활동의 보조에 그 역할이 국한된다 할 것이므로, 활동보조인과 선거사무원은 그 역할과 기능이 본질적으로 달라서 공직선거법 제62조 제2항 제4호 및 제7호 상의 선거사무원에 활동보조인이 포함될 수 없음이 명백"

 

헌법재판소의 이와 같은 판단은 매우 상식적이고 당연한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와 같은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근거로 공직선거법 개정 등을 통해 자의적 판단이 개입할 수 없도록 명확한 근거규정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똑같은 선거운동 할 수 있다고?

 

또 중증장애인 후보 중에는 언어장애가 있어 자신의 정책이나 지지를 호소하는 행위를 원활히 할 수 없는 후보도 있다. 때문에 언어장애를 대체할 만한 인쇄물 등의 선거운동이 허용되어야함에도 불구하고 현행 공직선거법에서는 이를 금지하고 있다. 이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구분 없이 천편일률적인 선거운동 방식만을 강요하는 것이어서 장애인의 평등권을 실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의사소통상 중증장애인의 선거운동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규정한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판결했다.

 

"언어장애가 있는 후보자라 할지라도 투표권자를 개별적으로 접촉하여 지지를 호소하는 방법은 자신의 선거사무원이나 선거운동 자원봉사자, 활동보조인 등을 통하여 얼마든지 가능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언어장애가 있는 후보자가 공직선거법에 규정된 방법 이외의 인쇄물, 녹음·녹화물 등을 반드시 이용하여야만 언어장애가 없는 후보자와의 동등한 위치를 확보한다고 보기는 어렵고, 설령 위와 같이 인쇄물 등의 선거운동방법을 별도로 허용한다고 하여도 장애인 후보자에게 현저하게 유익하다고 할 수도 없으므로, … 이 사건 중증장애인 후보자인 청구인들의 평등권 등을 침해하는 것이라 볼 수 없다."

 

이는 결과적으로 장애인이 차별받는 냉혹한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비현실적 판결이다. 공직선거에서 장애인후보의 선거운동방식에 다양한 수단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제반조건을 제공하는 것은 비장애인후보와 공정한 경쟁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거리에서든 인터넷 공간에서든 선거운동에 있어서 차별적 요소가 있다면 이를 없애는 것이 마땅하다.

 

헌법 불합치 의견 주목해야

 

이런 이유 때문에 김희옥, 김종대, 민형기, 송두환 헌법재판관 등 4인은 선거법 제93조 제1항이 헌법에 합치하지 아니하므로 개선입법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조대현 재판관은 위헌 의견을 냈다. 그러나 정족수가 모자라 기각결정이 내려졌다.

 

헌법 불합치 의견을 낸 헌법재판관들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는 후보자는 정확한 의사의 전달이 불가능함을 물론, … 유권자에게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거나 정견·정책을 알리는데 있어 결정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고, 유권자와 직접적인 대면을 통하여 후보자 자신을 소개하는 전통적인 방식이 아직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한 언어장애를 가진 후보자는 비장애인 후보자에 비해 매우 불리하다고 할 수 밖에 없으므로, 언어장애를 가진 후보자에게 의사전달을 도와줄 보조자로서 선거사무원을 비장애인 후보자 보다 1, 2명 가량 추가로 허용한다거나 공직선거법상 가능한 각종 인쇄물량의 법적 상한을 늘려주는 등 언어를 대체할 수 있는 선거운동 방법을 추가적으로 더 많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여 비장애인 후보자와 어느 정도 대등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여야 함에도 그렇지 아니한 채,

 

공직선거법 제93조 제1항 본문이 언어장애 후보자와 비장애인 후보자의 선거운동방법을 일률적으로 제한한 것은 능력이 서로 다른 언어장애 후보자와 비장애인 후보자를 동일하게 취급함으로써 차별을 발생시켰고, 이는 선거의 실질적 자유와 공정의 확보라는 입법 목적과 선거운동의 제한이라는 수단 간의 비례성을 벗어난 것으로서 청구인들의 평등권을 침해한 것이다. … 위 법률조항에 대하여 헌법불합치를 선언하고 개선입법을 촉구함"

 

이들 4명의 재판관은 개선입법을 통해 중증장애인 후보에게 보다 적극적인 지원수단을 제공할 것을 요구하는 등 실질적인 장애인 참정권 확보에 다가선 주장을 한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와 같은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의견을 존중해 관련 공직선거법 개정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장애인도 국민이고 주권자다

 

참정권은 시민적 권리의 출발이자 그 완성이라 할 수 있다. 장애인의 보편적 권리 또한 참정권의 보장 정도를 통해 그 수준을 가늠해볼 수 있다. 때문에 장애인의 참정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장애인의 참정권과 관련한 규정은 현행 장애인차별금지법에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선거권 보장을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고, 피선거권에 관해서는 언급만 되어 있다. 이는 지금까지 장애인 참정권이 투표소 접근 보장 등 선거권 중심으로만 이해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번 헌법재판소 판결을 계기로 장애인의 피선거권 문제도 보다 많은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 장애인의 실질적인 참정권 확보는 더 이상 미룰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모든 국민은 동등한 참정권을 지닌 주권자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최광은 기자는 사회당 대표입니다.


태그:#장애인 참정권, #헌법재판소, #사회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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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비교정치, 한국정치 등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는 연세대학교 복지국가연구센터에 적을 두고 있다. 에식스 대학(University of Essex, UK)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모두에게 기본소득을>(박종철출판사, 2011) 저자이고,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asic Income Earth Network) 평생회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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