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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의 교실>이란 책에 실린 이오덕 선생.
 <삶과 믿음의 교실>이란 책에 실린 이오덕 선생.
ⓒ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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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계의 큰 스승, 아동문학계의 큰 나무로 꼽히는 고 이오덕 선생. 그는 최근 조작 논란에 휘말린 일제고사에 대해 30년 전에 어떤 진단을 내렸을까?

1978년 초판이 나온 <삶과 믿음의 교실>(한길사)이란 책에 그 대답이 적혀 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사를 거쳐 교장에 이르기까지 평생을 글쓰기 교육과 우리말 바로 쓰기 운동에 헌신한 그이기에 이 진단은 우리 가슴에 무겁게 다가온다.

일제고사 평균 점수 올리려면

"바로 올해, 어느 큰 도시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번은 밤중에 저학년 여러 교실에 도둑이 들었는데 별 신통한 소득이 없었는지 칠판에다 낙서를 했다. … 도둑은 (아침자습 문제를 지운 뒤) 커다랗게 여자의 나체화를 교실마다 그려 놓았던 것이다."

이 선생의 이야기는 나체화 사건으로 시작된다. 이 당시 학생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그 칠판에 있는 나체화를 지워버린 반,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는 반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학생들이 다음과 같이 일제히 행동한 반도 있었다.

"어느 한 교실에서는 아이들이 모두 그 나체화를 공책에다 그렸다. 그 아이들은 칠판 그림을 베껴 그리기에 골몰했고, 칠판 한쪽에 지우다 만 글자까지 그 자리 그 모양대로 베껴 쓰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의 이런 행동에 대해 이 선생은 "교사의 명령이라면 어떤 종류의 것이든 덮어 놓고 순종하는 태도를 길들여 놓은 결과"라고 분석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반이 일제고사에서는 항상 1등이었다고 한다. 순종과 기계적인 학습이 단순 지식 위주의 문제에 치우친 일제고사의 점수 높이기 방식으로 제격인 탓이다. 이 선생은 비통한 심경을 다음처럼 썼다.

"이 학급 아이들이 일제고사 때는 언제나 평균 점수가 1등으로 올랐다 하니, 시험 점수 올리기 위해 우리 민족의 아이들을 이토록 참담한 상태로 만들어 놓은 것을 분노의 감정 없이 생각할 수 없다."

해당 교사에 대해서도 이 선생님은 회초리를 들었다.

"더욱 한심한 일은 그날 아침 출근한 그 담임 여교사가 자기 반 아이들의 그런 모습을 보자 옆 교실의 동료를 찾아가서 '우리 반 아이들은 그걸 보고 잘도 그리고 있어요'하고 자랑삼아 말했다고 한다. 오늘날의 교사를 이 꼴로 만든 책임을 철저히 추궁하지 않고서는 우리 교육이 결코 바로 잡히지 않을 것이다. … (이런 교사가) 상도 타고 영전도 한다면 그 열 사람 전체의 기풍은 짐작할 것이다."

이 선생은 일제고사의 병폐를 만든 정부 당국에 대해 매서운 비판도 빼놓지 않았다.

"막상 학력이라는 것을 향상시킨다고 하는 것이 학력검사 결과의 평균점을 높이는 것으로 모두들 알고 있는 것 같아 교육의 앞날이 갈수록 암담한 느낌이다. 그렇잖아도 교사들이 학부모의 여론과 제도에 묶여 무의미한 점수 따기만을 경쟁으로 시키고 형식 훈련을 교육으로 알고 있는 터에 당국의 실질적 장학 중점이 이렇게 된다면 교육은 한층 타락하여 교직은 이제 명실상부한 인간기계 제조업이 되고 말 것 아닌가 우려된다."

'교육 타락과 인간기계 제조' 한탄한 이오덕 선생

이 선생과 같은 교육계 인사들과 학자들의 문제제기로 우리나라 초등학교 일제고사는 점차 사라졌다. 대부분의 교육 선진국에서도 초등학생에게만큼은 일제고사의 짐을 지우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오덕 선생이 이 글을 쓴 지 정확히 30년이 흐른 2008년. 이명박 정부는 일제히 초중고 일제고사를 부활시켰다. 우리나라 초등학교의 경우 96년께 공식 사라진 일제고사가 12년 만에 부활한 것이다. 이오덕 선생이 다시 살아온다면 이 같은 MB 교육정책에 대해 어떤 말을 하게 될지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일제고사, #이오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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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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