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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돈육 수제소시지를 좋아한다

나는 돈육으로 만든 수제소시지를 좋아한다. 대형마트에 가면 수제소시지 코너가 더러 있다. 그런 데서 파는 수제소시지는 맛이 좋다. 하지만 라면처럼 며칠 걸러 한 번씩 사야 하는 식료품을 대개 동네 소형마트에서 사기 때문에 싸게 파는 전자제품을 사러 갈 때를 빼놓고는 일부러 대형마트에 갈 일이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먹고 싶은 수제소시지를 사 먹을 기회가 없는 것이다.

몇몇 생맥주집에서 파는 독일식 소시지도 먹을 만하다. 그런데 그걸 먹으러 일부러 애쓰고 가지는 않는다. 내가 머물러 있거나 움직이고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에 날이 샐 때까지 하는 치킨집이 있다. 그 집에서 모듬소시지를 안주로 팔기는 하는데 수제소시지가 아닐 뿐더러 마치 고무를 씹어 먹는 것처럼 맛이 이상하다. 수제소시지가 아니더라도 좋은 제품을 갖다 놓으라고 충고해 주어도 들은 체 만 체다.

내 눈을 끌어당긴 숯불구이 수제소시지

그러다가 와우소세지(브랜드가 와우소세지이므로 소시지와 구분하여 적습니다)의 소문을 접하게 되었다. 공중파 방송을 탄 일도 있고 하여 기회가 생기면 한번 먹어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움직여 다니는 행동반경에서는 좀체로 눈에 띄지 않았다. 어느 날 인천 구월동의 신세계백화점 맞은편 로데오거리에서 연인들이나 여성들 또는 남성들이 버스 정류장에서처럼 5m쯤 줄 지어 서 있는 것을 목격했다.

"아니! 저렇게 인기가 좋아?"
  
드디어 첫 와우소세지점을 만난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른 볼일도 있고 하여, 수제소시지 마니아로서 몹시 아쉽기는 했지만 줄 지어 서서 그것을 먹을 시간이 넉넉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와우소세지를 다시 만난 것이 홍대 맞은편에서였다. 길거리에서 포장마차를 설치해 놓고 파는 거였는데 마침 손님이 줄 지어 서 있지는 않았다. 좋은 냄새가 코로 스며들었다. 나는 40대로 보이는 남자에게 다가가 물어보았다.

"이거 얼마예요?"
"꼬치는 2,000원이고 핫도그는 2,500원이에요."

핫도그는 야채가 든 빵에 소시지를 넣어주는 것이다. 나는 핫도그보다는 꼬치를 먹고 싶었다. 수제소시지인 데다 소시지 크기로 보아 2,000원이면 비싼 값이 아니었다. 우리가 흔히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접하게 되는, 기름에 튀긴 1000원짜리 소시지는 양도 적은 데다 맛도 떨어진다. 물 한 컵 달라는 것도 배짱이 없으면 어렵다. 그런데 이건 재료가 좋아서 그런지 숯불에다 구워서 그런 건지 묘한 맛의 향기가 코를 끌어당기고 있다. 게다가 콜라는 무한으로 무료가 아닌가. 

"하나 주세요."
"좀 기다리셔야 되는데요."
"얼마나요?"
"한 20분요."
"그렇게 오래 걸려요?"
"이게 안 익혀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잘 구워야 돼요."

내가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20분이 맞을 거다. 가마솥밥 기다리는 시간만큼 기다려야 되었다. 점포를 연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미리 구워 놓은 것이 없었던 것이다. 약속시간도 얼마 남지 않아서 하는 수 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처음 맛 보았을 때의 가슴 벅찬 감격이라니

그러다가 다시 그 앞을 지나게 되었다. 이번엔 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10분쯤 기다려 달라고 했는데 이번에는 시간이 좀 넉넉했기 때문에 그 맛을 꼭 느끼고 싶었다. 잘 구워진 소시지에는 노란색 머스터드 소스(mustard-sauce:겨자를 넣은 소스, 고기나 생선 요리에 쓰입니다)가 입혀졌다. 마침내 무료 콜라를 곁들여 맛보게 된 와우소세지, 그 매콤한 맛은 절정이었다. 이제까지 이렇게 내 입맛에 맞는 수제소시지를 먹어본 적이 없었다. 나의 이에 의해 잘려진 부분을 들여다보니 소시지 안에는 청양고추를 비롯한 갖은 식재료가 들어 있었다,

나는 결국 불끈 솟아오르는 식탐(食貪)을 주체하지 못한 채 한 개를 더 먹고 말았다. 시간이 더 남아 있다면 한 개를 더 먹었을 거다.

한 번 온 손님을 기억해 주는 아르바이트 학생

그 뒤에 내가 만난 와우소세지는 동암역 남쪽 출구 건너편에서였다. 532번 마을버스 정류장 바로 앞에 그 점포가 있었다. 몇 평이나 될까 싶은 작은 공간에서 아르바이트 남학생 두 명이 수제소시지를 숯불에다 열심히 굽고 있었다.

나는 하나 달라고 하여 "음, 역시 이 맛이야" 하고 감탄사를 연발했으며, 그날 이후로 전철을 이용해 서울에 갈 때나 올 때는 꼭 그 점포에 들러 수제소시지를 먹고 가곤 했다. 그 집이 문을 열지 않은 날이면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었다.

그 점포를 두 번째 찾았을 때는 손님을 기억해 주는 아르바이트 학생의 친절이 반가웠다. 서울 갈 때 먹고 갔다가 인천으로 내려오면서 다시 들렀던 건데, 아르바이트 학생은 나를 기억하고 "아저씨, 오늘 두 개나 드시네요" 하고 웃어주었다.  

숯불로 잘 구워졌어요
▲ 석쇠 위의 수제소시지 숯불로 잘 구워졌어요
ⓒ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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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지 세 개를 포장해 달라고 해서, 입안에 쏙 들어갈 크기로 잘 잘라낸 것을 앞에 얘기한 치킨집에 가져가 여사장에게 맛을 보라고 했다. 여사장과 일을 도와주는 여동생 두 자매는 정말 맛있다며 고개를 끄떡끄떡했다. 이런 맛은 못 되더라도 비슷한 것이라도 안주로 내놓아야지 하지 않겠느냐고 했지만, 그런 걸 준비해 달라고 납품업자에게 얘기했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모듬소시지의 수준은 그 색깔이다. 그러니 어디 그 집에 가고 싶겠는가.

와우소세지 동암역점에서는 아르바이트 학생 두 명 중 한 명이 그만두고 한 명이 여사장과 함께 일하다가, 최근엔 그 학생 모습마저 보이지 않았다. 공부 때문에 못 나온다고 했다. 방학이 끝나가기 때문에 학업 준비를 하는 모양이었다. 내 농담도 잘 들어주는 착하고 친절한 학생이었는데 마치 친한 친구와 헤어진 느낌이었다.   

한 개 더 팔면 그만일 텐데도 눈앞의 욕심 챙기지 않아

잘 구워진 수제소시지 가운데 하나가 노란 옷(머스터드 소스)을 입었어요
▲ 노란 옷 입은 수제소시지 잘 구워진 수제소시지 가운데 하나가 노란 옷(머스터드 소스)을 입었어요
ⓒ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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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아직 초등학생도 아닌 듯한 어린아이가 엄마와 함께 그 점포에 들렀다. 아이가 먹고 싶다고 하니까 꼬치 하나를 달라고 했다. 그러자 젊은 여사장은 하나 더 팔면 그만일 텐데도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매운 맛인데 먹을 수 있어요?"

엄마는 아이에게 "매운데 먹을래?" 하고 물어보았고, 아이는 맵다는 말에 자신이 안 서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음식장사 하는 사람의 양심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이런 일도 있다. 석쇠 위의 수제소시지 중에 특별한 한 개가 눈에 띄었다. 그것은 바나나처럼 굽어진 것이 아니라 쭉 뻗은 막대기처럼 기다란 것이었다. 나는 그 모양이 남달라서 우스갯소리를 했다.

"이건 미운오리새끼네요."
"예, 그건 동생 주려고 빼놓은 거예요."

팔아도 그만이겠지만, 굽은 것에 비해 크기가 작았기 때문에 그런 모양이었다.

"다른 한 군데에서는 가스불로 지지직 하고 고문하듯이 익힌 다음에 숯불에 굽던데요. 빨리 굽느라고 그러겠지만, 먹기가 좀 그래요."
"그럼 숯불 향이 골고루 배지 않을 텐데요."

내 물음에 그녀는 숯불 향이 덜 배이는 것을 지적했다.   

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할 때도 그런 양심을 느낀 적이 있다.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이었는데, 석쇠 위에는 구운 지 오래 되는 것이 몇 개 남아 있었다. 

"언제 끝나요?"
"구워 논 거 다 팔면 들어가려구요."
"그런데 소시지가 작아졌네?"
"구워 논 지 오래 돼서 그래요. 이거 1000원에 드릴게요."
"그럼 남지가 않을 텐데…"
"그래도 너무 작아졌으니까 미안해서 그러거든요. 누나한테 말하지 마세요, 1000원에 팔았다고."

그날은 그래서 꼬치 한 개 값으로 두 개를 먹고 갔다. 아르바이트 학생의 음식장사 양심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게다가 콜라를 두 컵 먹고 가도 이맛살을 찌푸리거나 눈살을 찌푸리는 일을 보지 못했다.

'콜라 무료'라는 말에 수제소시지 마음이 흔들렸어요
▲ 콜라가 무료 '콜라 무료'라는 말에 수제소시지 마음이 흔들렸어요
ⓒ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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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아 건강을 생각해서 그런지, 겨울철이라 차가워서 그런지 손님들이 콜라를 많이 마시지는 않는다. 마실 물도 충분히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물을 마시는 손님들이 많다. 콜라를 즐기지 않는 분들을 위한 따뜻한 배려가 아닐 수 없다.

대타로 찾은 다른 곳에서 맛본 실망

방금 따라서 거품이 보글보글
▲ 종이컵에 방금 따른 콜라 방금 따라서 거품이 보글보글
ⓒ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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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네에 와우소세지보다 훨씬 작은(반도 되지 않는) 수제소시지를 1,000원에 파는 데가 있는데, 재료가 달라서 그런지 맛도 떨어지는 데다 기름에 튀겨내기 때문에 느끼한 맛이 있었다. 하지만 와우소세지 동암역점이 문을 열지 않았을 때는 출출함을 달래려고 그 집에서 사 먹은 적이 더러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값을 1,500원으로 올려버렸다. "1,000원에 팔지 않으면 안 사 먹기 때문에"라고 했던 나이 든 분이 한 달 새에 "남는 게 없어서"라고 말을 바꿔버린 것이다. 그런 데다 비가 오는 날이면 전철역 앞에서 우선을 갖다놓고 파느라 정신없으니, 점포를 찾았던 손님마저 주인이 없으니까 발길을 돌린다.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다 보니 단골손님이 될지도 모르는 손님을 놓쳐 버리는 것이다.   

입안에 넣고 씹기에 적당한 한도에서 가장 커다랗다고 생각되는 와우소세지가 2,000원인데, 맛이 더 뛰어나면 모르겠는데 그것의 반 토막도 되지 않는 기름에 튀긴 걸 누가 1,500원 주고 사먹겠는가. 그래서 그런지 그 집에서는 손님들이 오뎅이나 먹고 가지 수제소시지를 먹고 가는 손님을 나는 아직 목격하지 못했다.     

자주 뒤집고 미리미리 준비해 놓는, 손님을 위한 정성과 배려

와우소세지 동암역점의 매력은 무엇보다 정성이다. 수제소시지를 굽는 데 신경을 많이 쓴다. 굵은 석쇠 위에서 숯불의 향이 골고루 배이도록 자주 뒤집는 것이다. 그렇게 자주 뒤집어 주니까 한 쪽이 시커멓게 탄다든지 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잘 구운 것이 양이 떨어지지 않게끔 충분한 양을 미리미리 구워 나간다. 손님을 오래 기다리지 않게 하려는 배려다. 그렇다고 하여, 완전히 구운 것이 너무 오래 석쇠 위에 머물러 있으면 신선한 맛이 떨어지므로 너무 많은 양을 남겨놓지는 않는다. 적당히 찾아올 손님 수를 예상하고 거기에 맞춰나가는 것이다. 

숯불구이 수제소시지 때문에 서울 다녀오는 길이 즐겁다

황금 콤비인가요 찰떡 궁합인가요?
▲ 콜라와 수제소시지 황금 콤비인가요 찰떡 궁합인가요?
ⓒ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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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장소가 적당하다. 바로 여러 노선(531, 532, 533, 535, 536, 537, 538, 539)의 마을버스 정류장이 줄 지어 서 있는 곳의 앞부분인 데다, 버스 도착 예정시간 알림판이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어서 차를 기다리는 시간을 이용하여 소시지 맛을 보고 갈 수 있다.

언젠가 젊은 여사장에게 "나는 서울 갔다 올 때마다 단돈 2,000원으로 이 소시지를 먹고 갈 수 있다는 게 행복입니다" 하고 말한 적이 있다. 좋은 식재료로 만들어진 수제소시지를 정성스런 손길로 잘 구워낸 음식을 싼 값으로 먹을 수 있다는 것, 이것도 살아가는 재미 중의 하나가 아니겠는가. 정성껏, 양심껏 장사하는 젊은 여사장님, 돈 많이 벌어 부자 되세요! 

와우소세지 동암역점은 인천 동암역 남부 532번 마을버스 정류장 앞에 자리 잡고 있다
▲ 여기서는 정성과 양심으로 숯불에 구워요 와우소세지 동암역점은 인천 동암역 남부 532번 마을버스 정류장 앞에 자리 잡고 있다
ⓒ 김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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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 블로거뉴스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수제소시지, #머스터드 소스, #콜라, #숯불구이, #동암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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