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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물과 예단에 대한 편견

집을 장만한 뒤 결혼을 진행하면서 가장 껄끄러운 문제는 예물과 예단이었다. 신혼집이야 어차피 우리가 살 공간으로 이미 그 자금이 우리의 깜냥만큼 정해져 있었지만, 예물과 예단은 그 실체도 애매할 뿐더러 지역과 계급에 따라 천차만별이라 하니 이야기조차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고받는 사람 모두 무안하게 만드는 예물과 예단.

거론조차 힘든 일을 꼭 해야 하는가. 결혼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난 처음부터 여자친구와 부모님께 예물과 예단을 주고받지 말자고 선언했다. 다 생략하고 그냥 필요한 것만 사면 된다고 아주 강하게 내 의견을 피력했다. 어차피 여자친구가 10년을 자취했으니 살 것이 별로 없으리라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챙기기 시작하니 점점 커지는 예단
▲ 처음 본 예단 챙기기 시작하니 점점 커지는 예단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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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것은 어렸을 때부터 결혼 이야기만 나오면 내가 어머니께 해왔었던 이야기였다. TV나 소문을 통해서 마주친 혼수로 인한 갈등은 어린 내 눈으로 보더라도 한심하기 짝이 없는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결혼할 사람 됨됨이와 그 관계가 중요한 것이지, 왜 한낱 물건에 지나지 않은 혼수 가지고 사람을 재고 평가하는가.

혹여 혼수를 장만할 형편이 못 되면 나중에 살아가면서 갖추면 되는 것이고, 또 여유가 있다 한들 필요 없는 사치는 지양하고 돈을 모아 나중에 뭔가 보람 있는 일에 쓰면 될 것을, 결혼이 무슨 대목인양 이것저것 챙기는 우리의 관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현실 속의 예물과 예단

그러나 이런 내 주장에 여자친구는 의외로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한국 사회에서 예물, 예단 이야기가 나오면 신부 측이 더 곤란한 것이 관례인 바, 여자친구가 기꺼이 내 주장에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예물과 예단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미묘하고 복잡한 문제였다.

여자친구는 우선 그녀의 부모님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 우리의 결혼이 결정되자마자 그녀의 어머니는 친구들의 축하 전화를 받으셨는데, 거의 모든 분이 그들의 경험상 예단을 섭섭하게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셨다 했다. 아무리 시어머니 자리가 괜찮다고 고사한들 예단 문제는 결혼 생활 내내 거론될 것이며, 혹여 시집 말대로 예단을 하지 않는다면 평생 그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충고가 대부분이었다던가.

게다가 여자친구의 집안이 아주 어렵지 않은 이상, 딸자식을 시집보내며 섭섭하지 않게 무언가 잘 해 보내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인데 신랑이 그 모든 것을 원천적으로 막는 것 또한 예의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어려운 문제였다.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예단과 예물을 꼭 해야 하는 것일까? 그것은 단순히 내 의지와 현실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결혼과 관련되어 통용되고 있는 관습과, 그 모든 걸 넘어서서 자신이 배운 대로, 옳다고 생각한 대로 행동하려는 한 개인 간의 갈등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고민도 결국 내가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 속에서 남자니까 가능한 갈등이었음은 물론이다. 만약 여자라면 이런 제안까지 불가능했을 터. 딸 가진 자 죄인이라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신부에게는 예단이 가장 큰 스트레스라고 한다
▲ 그녀의 스트레스 주범 신부에게는 예단이 가장 큰 스트레스라고 한다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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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단비 주고 또 돌려받고... 뭐하는 쇼?

오랜 고민 끝에 난 결국 주장을 철회했다. 결혼이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닌 이상 상대방의 상황도 이해해 주어야 하는 바, 내 의견만 고집할 수는 없었다. 부모님은 나더러 현실감각 없이 마냥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할 바엔 그냥 뒤로 빠지라 하셨고 여자친구는 최소한으로 한다며 예단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왕 꾸리기로 한 예단이 어디 생각처럼 간소화되겠는가. 시부모님의 이불과 수저 등은 기본이라며 챙기다 보니 일은 점점 커져만 갔다. 물론 남들처럼 예단비를 받고 돌려주는 요식행위도 있었지만 어쨌든 옆에서 지켜보는 처지에서 예단 그 자체는 매우 부담스럽고 어려운 일임에 분명했다.

예단비 액수는 물론 그릇 무늬부터 포장까지 챙기는 여자친구와 예단비를 받고도 부담스러워하며 얼마나 돌려주어야 할지 고민하는 어머니. 차라리 그 모든 걸 생략하고 필요한 물품만 구입하면 될 것을 무엇 때문에 저렇게들 하는지.

옆에서 그토록 신경 쓰는 여자친구를 보고 있자니, 왜 보통 시어머니 자리들이 혼수에 신경을 쓰는지 알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자신이 시집올 때 해온 것이 있으니, 나중에 자기도 며느리에게 최소한 그렇게 받아야 된다고 욕심내지 않겠는가. 잘못된 관습은 또 잘못된 관습을 낳고, 그렇게 재생산되는 것이리라.

예단을 끝내자 다음은 예물이었다. 예단과 마찬가지로 예물 역시 챙기기 시작하니 끝이 없어 보였다. 반지로 시작해서 목걸이, 귀걸이, 시계 등 으레 예물로 들어가는 것들의 가격은 천차만별이었다. 어차피 결혼하면 장롱 구석에 보관될 가능성이 높건만 뭣 하러 그리들 예물에 목숨 거는지.

"결혼 아니면 언제 저런 가방 사겠니?"

특히 여자친구가 핸드백, 지갑, 예복 등을 사려 하자 이미 결혼한 그녀의 친구들은 네가 결혼하면 이런 기회가 있을 것 같으냐고, 결혼하고 나면 분명 남편 것과 아이들 것만 사게 된다며 그녀에게 소위 명품들을 추천했다.

물론 그들이 이야기하는 명품이라고 해봤자 이미 많은 사람이 들고 다니는 맥럭셔리(Mcluxuryㆍ맥도날드 햄버거처럼 명품이 흔해졌다는 의미의 신조어)에 불과했지만 어쨌든 그것은 평소 브랜드 이름도 잘 모르던 우리에게 비싼 상품임에 분명했다. 아마도 결혼하는 데 있어서 계급차는 이런 부분에서 드러나는 것이리라.

놀랄 만한 가격에 망설이는 여자친구. 평소 같았으면 괜히 친구들 말해 휘둘려 비싼 거 산다고 핀잔을 줬겠으나, 그녀의 친구들 말을 곱씹어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에 그냥 두고 볼 뿐이었다. 당장 내 어머니를 보더라도 당신 옷을 사러 백화점에 가면 남편 것과 자식들 것만 사고 결국 본인 옷은 시장에서 고르지 않았던가.

물론 내 여자친구가 우리 어머니와 같은 세대도 아니고 소비 패턴이 같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에서 결혼 이후 여자친구의 소비 패턴이 어머니와 비슷해질 개연성은 충분히 있어 보였다. 아직까지 남편의 사회적 직위가 여성의 계급과 수준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한국 사회 아니던가.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는 속담이 아직까지 회자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어쨌든 우리는 고민 끝에 주어진 한도 내에서 최소한의 예물들을 골랐고, 결혼식에 필요한 또 한 고비를 그렇게 넘겼다. 최근 금값 폭등으로 봄에 결혼하는 커플들이 고생하고 있다던데 부디 그 고비를 무사히 넘기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결혼식, #예물, #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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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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