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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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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과 꿈으로 큰 꿈을 펼치는 아들의 졸업식에 다녀왔습니다. ^^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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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만 챙기는 아빠, 두딸은 뿔났다

"아빠 왜 사람 차별해? 내 졸업식 때는 안 오고 진혁이만 챙기고..."

유치원 졸업식을 앞두고 아침부터 6학년 큰딸의 불만이 가득합니다.

"맞아! 아빠 내 졸업식 때도 안 왔잖아? 진혁이는 좋겠다. 장난감도 제일 많이 사주고..."

여기에 4학년 올라가는 둘째 딸도 거들더니 딸들의 잔소리는 계속됩니다.

아빠 노릇도 제대로 못하는 나는 산업단지에서 교대근무를 하면서 밤낮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만큼은 늘 부족함 없이 해주려고 일만해 온 아빠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간 아빠의 무심함에 서운했던지, 아들 졸업식만 챙긴다는 딸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릅니다.

돌이켜 보면 딸들의 졸업식이 있는 날은 '머피의 법칙' 마냥 항상 아침근무(07~15시까지) 가 걸려서 졸업식 때마다 엄마가 대신했으니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은 없지요. 그렇다고 유치원 졸업하는데 휴가를 내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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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구장이 진혁이가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엄마에게 꽃다발을 받았답니다. ^^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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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들아 오해하지마! 자식은 내리 사랑이란다

자식을 키워본 사람은 다 느껴보지만 '자식 사랑은 내리 사랑이다' 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남녀 평등을 주장하며 살아온 동갑내기 부부지만 1남 2녀를 두고 있는 우리 또한 단지 막내라는 이유(?)만으로 두 딸들보다 막내인 아들을 좀 더 특별히 대합니다.

90년대 중반부터 3년 터울로 살림밑천이라는 큰딸에 이어 떡두꺼비 같은 둘째 아들이 태어나길 희망했습니다. 하지만, 둘째 역시 또 딸이 태어나자 딸 둘로 만족하자며 자식농사를 끝마치기로 합의를 하여 하마트면 '가문의 대를 잊지 못할 불효'를 저지를 뻔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 보육문제와 사교육은 둘째치고라도 둘다 자연분만을 하지못해 출산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셋째가 아들이라는 확실한 담보도 없이 3번의 제왕절개 수술은 아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실패를 거울삼아(?) 아들을 낳자는 나의 집요한 설득과 우리 부부의 각별한 노력이 없었다면 아마 우리 가문에 영광은 없었을 것입니다. 암튼 우리 집안의 개구쟁이 장군이는 이렇게 태어났습니다.

졸업식 당일 해가 중천에 떴지만 졸업식을 몇 시간 앞둔 아들은 아직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꿈나라를 헤메고 있는데 참 어이가 없습니다. 아이들 엄마로서 아내의 하루일과는 잠자리를 사수하려는 아이들과 깨우려는 엄마의 대치상황의 연속인데 오늘 역시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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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업식 내내 장난치느라 자리만 지키고 있는 아들! ^^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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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 내내 긴장된 우리 부부 진혁아 제발 빨리 나가라!

오늘은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아들의 졸업식에 참석을 하였습니다. 아빠로서 지금까지 두딸들의 유치원 졸업식에 참석치 못한 미안함도 있지만 솔직히 오늘은 근무까지 맞아주니 그나마 천만다행입니다.

꽃다발을 준비하고 졸업식장에 가보니 이미 또래의 많은 아이들이 육각모와 졸업 예복을 입고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분주합니다. 한 살 위인 형아를 보내기 위한 7살 동생들이 준비한 풍물놀이 재롱은 시작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는데, 어이쿠 저렇게 준비하기 위해 세뇌 당했을 어린 새싹들의 수고에 관객들의 박수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일년 동안 지내온 과정을 만들어 영상 앨범을 틀어주는데 유치원에서 참 많이도 놀러 다닌것 같습니다. 육각모의 위력일까요? 육각모를 쓴 아이들의 의젓한 모습이 오늘은 보통이 넘게 보입니다. 하지만 개구쟁이 우리 아들은 육각모 턱 끈을 입에 물고 친구들과 장난치느라 졸업식에는 도통 관심조차 없어 보입니다.

드디어 원장님이 졸업생들에게 상장을 수여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한사람 한사람 이름을 부르면 연단으로 뛰어 나가 상장을 받은 후 선생님과 학부형들에게 인사를 두 번 하고 자리로 돌아가는데 아이들이 쓴 육각모가 인사를 할 때마다 저만치 내동댕이쳐져 그것을 줍느라 정신이 없고 여기저기서 껄껄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한참 후 우리 아들의 차례가 되어 사회자가 아들 이름을 부릅니다.

"심진혁!"

하지만 아들은 친구들과 장난치느라 정신이 팔렸는지 아무 대답이 없습니다. 옆에서 사진을 찍다가 아들을 향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빨리 나가라고 언질을 주었으나 그래도 상황파악이 안된 모양입니다. 다시 한번 사회자가 이름을 부릅니다.

"심진혁! 나오세요"

순간 웅성웅성 하던 분위기가 조용하더니 그제서야 아들이 벌떡 일어나 달려 나갑니다. 상을 받은 후 인사도 한 채 만 채 상을 받고 제자리로 돌아오는데 한동안 그것밖에 하지 못하는 아들이 원망스럽습니다. 집에서는 누나들을 때려잡는 깡패짓이나 못 하면 말도 안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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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유행하는 어린이들의 쇼킹한 장래희망을 공개합니다. ^^
ⓒ 심명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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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들의 장래 희망! 헉 이럴 수가?

시상식은 계속되고 주위에서 학부형이 키득키득 웃음을 참지 못하고 유치원에서 나눠준 '졸업 수료장 수여식 자료'를 한번 보라합니다. 그 속에는 1년간 활동상황 등 개인별 장래희망에 대하여 조사해 놓은 자료가 들어 있었습니다.

개인별 장래희망에 대하여 어른들의 코치없이 나름대로 아이들의 눈으로 되고 싶은 꿈을 적은 것이었습니다. 순간 배꼽을 잡지 않을 수 없는 놀라운 꿈들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대통령에서부터 과학자, 의사, 선생님, 아나운서, 헬리콥터 조종사, 검사, 가수, 요리사, 축구선수 등 우리가 한번쯤은 꿈꿨던 평범한 꿈들은 아직도 이 시대의 주류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독 학부형들의 시선을 끄는 선한 꿈들이 있었으니 그 꿈들에는 순수함이 묻어 있습니다.

닌자, 스타, 부자, 큰언니, 민주시민, 산타할머니, 문구점 주인까지 다소 황당한 꿈들...

근데 닌자가 뭐하는 직업이지? 혹시 닌자 거북이를 꿈꾸는 것이 아닌가? 요즘 경제가 어려우니 부자가 여럿이었는데 혹시 부자가 되기 위해 인생대박을 꿈꾼다면 로또를 사야겠군^^ 또, 문구점 주인은 돈을 잘 버나? 민주시민, 큰언니, 산타 할머니, 야 넘 멋있는 꿈이군... 저마다 가졌던 이런저런 장래희망을 내 나름대로 꿈처럼 해몽도 하여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1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이곳 성산유치원을 다니면서 간직했던 소중하고 아름다운 그 꿈을 토대로 더 높은 곳을 향하면서 꿈도 커지겠지만 그 꿈은 스스로 버리지 않는 한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믿습니다.

이제보니 우리 아들의 꿈은 경찰관이랍니다. 지금까지 아들에게 뭐가 되고 싶으냐고 묻지도 않았고 무엇이 되라고 요구하지도 않았지만 왜 경찰이 되려는지 다소 황당합니다. 그동안 말을 안 들을 때마다 경찰관이 잡아간다고 하면 경찰이 무섭다고 느끼던 터라 그런 경찰이 멋있어 보였을까요?

그런데 아빠는 이 시대의 진정한 주인인 당당한 노동자로 살면서 예전에 노동운동도 하였던 터라 합법적인 집회를 하려는 노동자와 그것을 저지하려는 경찰의 업무특성상 경찰에 대한 이미지는 글쎄요... 먼훗날 노동운동을 하는 아빠와 그것을 가로막는 경찰관이 된 아들과의 대치 모습이 클로즈업 되면서 아들의 꿈을 바꾸라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오늘 아들 졸업식에서 또다시 인생을 배우게 됩니다.

아들아 너의 꿈을 좀 바꿔주면 안되겠니?


태그:#유치원 졸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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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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