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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에서 꽃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동백도 피었고, 매화도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단다. 잠시 봄꽃을 떠올려본다. 전라남도 순천으로 향한다. 순천은 봄과 가장 가까이 닿아 있는 지역이다. 매화로 유명한 금둔사와 선암사, 송광사를 모두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호남고속국도 승주 나들목으로 빠져 나가 상사호반을 돌아 낙안 방면으로 달린다. 구불대는 산자락을 타고 한참 오르다가 내려서니 낙안벌이 한눈에 펼쳐진다. 그곳에서 왼편 산허리에 아담한 절이 자리하고 있다. 봄마다 매화가 붉은 옷고름 날리며 손짓하는 금둔사다.

 

순천시 낙안면 금전산(668m) 품에 안긴 금둔사는 백제 때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유서 깊은 절이다. 정유재란 때 흔적도 없이 불탄 것을 지난 1980년대 초에 다시 지었다. 언제나 활짝 열려 있어 누구나 맘대로 드나들 수 있다.

 

절의 규모가 그리 크진 않다. 하지만 대웅전과 설선당 그리고 보물로 지정돼 있는 3층석탑(제945호)과 석불비상(제946호)이 단아하게 어우러져 멋스럽다. 금둔사지 삼층석탑은 높이 4m의 통일신라시대 양식으로 조각수법이 세련됐다. 삼층석탑과 나란히 선 금둔사지 석불비상은 높이 3m로 9세기의 사실주의 양식의 특징을 보여준다.

 

선암사 앞에 있는 승선교를 빼닮은 돌다리를 건너면 대웅전에 이른다. 오른편으로 홍매화가 활짝 피었다. 절 뒤와 장독대 주변엔 동백이 자리하고 있다. 선방과 대웅전 사이 담장을 따라 난 작은 오솔길이 정겹다. 담장도 흙을 깔고 위에 돌과 기와를 얹었다. 바위에 새긴 비로자나마애불도 아기자기한 절집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농염한 붉은 빛깔의 홍매화는 절의 분위기를 압도한다. 홍매화가 눈앞으로 쏟아진다. 오랜만에 보는 분홍색에 눈이 호사를 누린다. 황량하던 마음에도 봄빛이 스민다. 홍매화가 고즈넉한 산사와 어우러져 봄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넉넉하고 포근하다. 널리 알려진 절이 아니기에 발길로 북적이지도 않는다.

 

금둔사의 매화는 봄이면 꽃비로 젖는 남도에서도 가장 먼저 봄소식을 몰고 오는 특별한 꽃이다. 토종 매화로 이른바 '납월매'다. 엄동설한 12월 납월에 꽃망울을 틔운다 해서 이름 붙었다. 불가에서는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은 음력 12월8일을 기려 12월을 '납월'이라고 한다.

 

하얀 꽃이 숨 막힐 듯 흐드러지는 3월의 매화와는 다르다. 꺾이고 비틀린 가지에 겨우 손톱만한 꽃 몇 송이가 달라붙는다. 꽃도 열매도 섬진강변 매화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향기만큼은 더 짙다. 이 꽃은 피고지기를 반복하며 3월 말까지 붉은 자태를 뽐낸다.

 

이곳 매화는 25년 전, 금둔사 중건 당시 선암사 주지였던 지허 스님이 낙안마을에서 매화 씨를 곱게 가슴에 품고 와 직접 심은 것이다. 지허 스님은 "아마도 여기 6그루가 전국에서 유일한 납월매일 것"이라고 말한다. 당시 스님이 씨를 가져왔던 낙안마을의 한 그루 납월매는 노목이 되어 이미 사라지고 없다고.

 

그렇게 금둔사와 스님이 감싸주던 어린 매화나무가 이젠 금둔사를 봄향기로 감싸 안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외롭게 봄의 길목을 지키던 이곳의 홍매화가 질 무렵 인근 광양의 매화가 꽃을 피워 봄기운을 널리 퍼뜨린다. 금둔사 매화는 남도를 매화물결로 채색하는 출발지인 셈이다.

 

금둔사에서 가까운 곳에 가볼만한 곳도 부지기수다. 금둔사에서 10여㎞ 떨어진 조계산 선암사에도 눈길을 끄는 매화가 있다. 수령 600년을 넘긴 고목의 이 매화나무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화려한 꽃을 피워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태고종 본찰인 선암사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건축물로도 유명하다.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를 8점이나 보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돌다리와 해우소까지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사찰의 옛 모습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조계산을 사이에 두고 선암사 반대편에 있는 송광사까지는 산행코스로 인기가 높다. 산길을 따라 6∼7㎞ 걸으면 한국불교의 승맥을 잇는 송광사를 만난다. 이 곳에서도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보조국사 지눌 이외에 열여섯 명의 국사를 배출한 절로도 유명한 이곳에서 매화 향기는 절정에 달한다.

 

지척에 있는 낙안읍성에도 홍매화와 청매화가 봄을 가득 머금고 있다. 돌담 길 옆으로 늘어선 다른 봄꽃들도 아우성이다. 낙안읍성 민속마을은 조선시대 마을이 원형대로 남아있는 곳. 실제 100여 가구가 읍성 안에서 살고 있다. 성곽 위를 걸으며 내려다보는 것이 가장 예쁘다.

 

낙안읍성 민속마을과 어깨를 맞대고 있는 보성 벌교는 참꼬막의 고장이다. 꼬막요리를 한꺼번에 맛볼 수 있는 곳이다. 꼬막정식을 시키면 야들야들하게 삶은 통꼬막 외에도 꼬막부침개, 꼬막무침, 꼬막 회무침, 꼬막 된장국이 나온다. 꼬막회무침에다 밥을 비벼 먹어도 맛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지천에 봄꽃 흐드러질 날이…. 사람들의 몸이 간질이는 것도 이맘때다. 본격적인 봄꽃여행 채비로 가슴도 설렌다. 금둔사에 만개한 홍매화와 섬진강변에 피기 시작한 백매화가 그 증거다. 덩달아 우리네 일상도 언제나 가슴 설레고 활짝 피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 금둔사 찾아가는 길

○ 호남고속국도 승주나들목-22번국도 승주방향-857번 지방도 선암사·낙안읍성 방향-죽학삼거리(낙안읍성 방향)-금둔사.


태그:#홍매화, #납월매, #금둔사, #금전산, #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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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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