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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죽이지 않고 먹을거리를 만드니 '바른 농사'다. 바른 농산물에 제값으로 고마움을 표하니 또한 '착한 밥상'이다. 이렇듯 순리로 따지자면, 도시민과 농민이 상생하는 길은 멀지 않다. 헌데 그놈의 돈이 '웬수'다. 유통 거품, 그로 인한 심리적 거리감도 상당하다. 친환경마크를 믿지 못하겠다는 도시인, '눈'으로 먹는 소비자가 안타깝다는 농민. 연중기획으로 '바른 농사'와 '착한 밥상'이 더 가까워질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말]
지난 20일 아침, 장성 한마음공동체 유통본부
 지난 20일 아침, 장성 한마음공동체 유통본부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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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추적 내리는 빗방울이 갈대 잎을 두드린다. 그 소리가 들릴 정도로 사방이 조용하다. "연탄 가격이 인상될 예정이오니, 아직 연탄을 신청하지 않은 조합원은 빨리 신청하라"는 방송이 고요한 아침을 깨웠다. 20일 아침 7시 20분, 전남 장성군 남면 평산리 마을의 '하루'가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일찍부터 '찌뿌드드함'을 털어 버린 모습도 보인다. 큼지막한 '칠성무당벌레' 그림 간판 아래로 나란히 도열해 있는 트럭들. 이제 곧 '행복한 가족 건강, 안전한 밥상' 재료를 싣고 각 지역으로 떠날 차량들이다. 그 뒤편에서 장성 한마음공동체 유통본부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신선한 유통, '피'가 고이는 일이 없다

장성 한마음 공동체(한마음 유기농영농조합법인), 단 하나의 수식어만으로는 설명이 곤란한 곳이다. 그 안에는 다양한 조직이 숨쉬고 있다. 공동체 회원 농가들과 작목반, 자연생태 유치원, 여성농업인 센터 등이 생산자 공동체라면, 한마음 친환경 유기농 전문매장, 농촌체험시설 '한마음 자연학교'등은 도농교류의 또다른 공동체다.

"유기농 생산농민은 도시소비자의 건강을 지키고, 도시소비자는 유기농 생활농민의 생활을 보장하는 도농공동체"란 설명 그대로다. 그래서 평산리에 있는 이곳, 한마음 유통본부는 생산자와 소비자, 나아가 도농을 연결하는 '핏줄'과도 같다. 이 '핏줄'을 타고 가까운 광주를 비롯, 서울, 부천, 김해, 창원 등지에 친환경농산물이 공급된다.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피'가 고이는 일이 없다는 점이다. 중간에 대형 할인마트를 통한다거나 하는 일 없이 '한숨에 피가 통한다'. 잠시 후 떠날 운송차량들의 도착지점은 모두 직영매장이다. 그러니 '피'가 신선할 수밖에 없다. 출발 당일 아침까지 발주가 이뤄진다. 당연히 '썩은 피(재고)'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단단한 자부심 "믿을 수 있다. 신선하다. 저렴하다"

분주히 움직이는 한마음공동체 유통본부 사람들
 분주히 움직이는 한마음공동체 유통본부 사람들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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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더욱 시끌시끌한 분위기를 예상했었다. 트럭 여러 대에 한꺼번에 상차하는 과정이니, '그거 실었냐'라든지 '빨리 빨리 갖고 와'라든지, 고함 정도는 나와주는 역동적인 광경을 스케치하려 했다. 헌데 도대체 사람들이 말이 없다. 스무 명이 넘는, 거의 전 직원이 나와 일을 하고 있는데도 그렇다.

그저 창고와 트럭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대차(핸드카트) 바퀴 소리만이 요란했다. 그 소리마저 없었다면, 연간 매출 100억 원이 넘는 심장부에 와있다는 걸 잠깐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가 흐르고 트럭들에 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운전석에 앉아 있는 신복식(41·남)에게 지금 기분을 묻자 "이제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면서 "내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을 도시에서 소비할 수 있도록 한다는 생각에 늘 기분이 좋다"는 말까지 덧붙인다. 내친 김에 한마음공동체 농산물 자랑을 요청하니 "믿을 수 있다. 신선하다. 저렴하다"는 답이 곧바로 돌아온다. 단단한 자부심이 엿보였다.

봉급이 많아서일까. 그렇지는 않다고 했다. 이런 자부심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몹시 궁금해졌다. 그 '출처'를 따라가다 보면 '바른 농사'와 '착한 밥상' 사이의 거리감을 상당히 줄일 수 있는 해법이 나오리라 생각했다. 이제 겨우 한숨 돌린 구매팀의 박종필(30·남)씨, 물류팀 김두개(38·남)씨 그리고 전경호 물류사업부장(46·남)을 주저 앉혔다.

"타임 이스 금땡이 아닌가, 우린 눈만 봐도 통한다"

감귤 생산자와의 만남
 감귤 생산자와의 만남
ⓒ yugi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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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끌벅적한 분위기에서 상차가 이뤄질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서로들 말이 없더라.
박종필 "시간에 많이 쫓긴다. 바로바로 전날에 발주가 이뤄지고, 급할 때는 당일 아침에도 추가 발주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차 출발 시간에 맞추려다 보면,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다."

김두개 "'타임 이스 금땡이' 아닌가(웃음). 우리는 서로 눈만 봐도 다 통한다. '너, 이거 해라. 어이, 저거 해라', 이런 말이 필요 없다."

전경호 "덧붙이자면 다른 유통물 회사와 차이점이 우리는 당일 발주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일의 집중도가 높은 편이다. 실수를 줄이기 위한다는 마음에 자연스레 그렇게 되는 모양이다."

- 실제 분위기는 어떤가.
박종필 "앞서 다른 회사에 근무해 봤는데,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더라. 여기 오래 있었던 사람, 나중에 들어온 사람, 뭐 굳이 이런 것을 따지지 않는다. 급한 일이 생기면 본 사람이 먼저 나선다. 인간적으로 서로 챙겨준다는 차원을 넘어, 뭐랄까, 한마디로 가족 같다."

김두개 "직책에 대한 권위 의식이 없다. 여기 계신 부장님이나, 전무님이나, 모두 함께 짐도 나르고 그렇게 한다. 전체적으로 자연스러운 분위기다."

전경호 "물량이 많을 때는 직원들이 힘들 것 같아 잠깐 잠깐 도와주는 것뿐이다. 그렇게 하면 특히 바쁜 아침에는 다만 5∼10분이라도 절약할 수 있지 않나. 그만큼 우리 매장에 신선한 농산물이 빨리 진열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돈이 목적이 아니다" "경제 논리상으로는 미친 짓"

장성 한마음공동체 직영매장 모습
 장성 한마음공동체 직영매장 모습
ⓒ yugino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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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친 김에 회사 자랑 하나씩 해보자.
박종필 "무농약 또는 저농약이 보편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는 한 발 앞서 나가기 위해 예술자연농법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 농법이 농약을 사용하거나 퇴비를 넣는 이른바 '투입' 위주라면, 예술자연농법은 '무투입' 개념으로 땅의 유기질을 빼내는 것이다. 성공적으로 도입된다면 차별화에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김두개 "우리는 농산물 가격을 항상 일정하게 유지한다. 생산원가가 상승할 경우 그만큼 비용을 농가에 보전하지만, 그만큼을 소비자 가격에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윤을 최소화한다. 이윤을 따지기보다는 안정적인 가격에 공급하는 것을 더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전경호 "우리 공동체는 사회사업도 많이 한다. 장성 지역에 어린이 공부방과 자활공동체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노인학교를 개설해서 식사나 부식 등을 제공하는 한편, 비록 많은 금액이 아니더라도 장학사업도 하고 있다. 솔직히 1년 결산하고 나면, 순이익이 2∼3% 미만이다."

- 다른 곳에 비해 이윤이 훨씬 적다는 이야기가 된다. 손해 본다는 생각은 들지 않나.
박종필 "우리는 돈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내가 돈에 초점을 맞춘다면 계속 다니기 힘들지 않았겠나. 어렸을 때 잠깐 농촌에 살긴 했지만, 여기 들어와서 생산자 분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지 알게 됐다. 그만큼 합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데, 문제의식이 많이 커졌다."

김두개 "물론 경제 논리상으로 보면 미친 짓이다. 유통 이윤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만큼 생산이나 소비가 위축되게 마련이다. 삶의 방식은 다양하지 않나. 돈만 추구하며 사는 삶을 바라지는 않는다. 자구책은 있다. 로또 한번씩 산다(웃음)."

전경호 "돈을 목표로 한다면 다른 사업 쪽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 맞다고 본다. 가장 모범적인 유통법인 구축이 설립 취지다. 그래서 우리 직원들이 참 든든하다. 그만큼의 노력에 많은 걸 보상해주지 못하는데 대한 아쉬움, 미안함이 항상 있다."

'바른 농사'와 '착한 밥상' 사이에 '착한 유통'이 희망

왼쪽부터 김두개씨, 전경호 부장, 박종필씨
 왼쪽부터 김두개씨, 전경호 부장, 박종필씨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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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환경농산물 유통에서 가장 중요한 점을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박종필 "무엇보다 농사를 지으시는 분들이 다른 건 걱정 안 하고 농사에만 집중하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드리고, 그래서 나오는 농산물을 소비자에게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유통'이라 생각한다. 사실 생산자 분들 정말 어려움이 많다. 그에 대해 합당한 대우를 보장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우리 입장이다."

김두개 "사회적으로 전반적인 신뢰가 깨져 있지 않나.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만남이 필요하다. 생산지 견학 방문을 통해 직접 체험도 할 수 있고, 또 생산자가 소비자에게 직접 다가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무엇보다 소비자 스스로 믿게끔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중요하다."

전경호 "초창기 우리 매장이 없던 시절, 아파트에 농산물을 싣고 다니며 팔았다. 현장에서 즉석 좌담회나 교육을 반드시 병행했다. 소비자 분들을 모시고 와서 현장 체험도 했다. 그렇게 하다보니 자연스레 신뢰가 쌓이더라. 나중에는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교육을 통한 신뢰 확보 노력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세 분 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착한 유통'이 아닐까 한다. 끝으로 소비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박종필 "우리 한마음공동체에는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에 자신 있는 분들이 모여 있다고 자부한다. 우리 유통본부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가운데에 있기도 하지만, 생산자를 가장 앞에 두고, 소비자의 말을 가장 빨리 듣고 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가격만 보지 말고, 믿을 수 있는 곳인지 살펴 봐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싶다."

김두개 "딱 하나만 말씀드리고자 한다. 무슨 식품 사고가 터져서 언론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그 때는 가격 뿐 아니라 생산자나 인증 내용 등이 담겨 있는 뒤에 표기사항도 보시는 것 같더라. 그런데 '바람'이 지나가면 또 가격만 보시는 것 같다. 가격보다는 먼저 내가 먹는 농산물이 어떤 것인지를 보셨으면 좋겠다."

전경호 "언론 보도와 관련하여 한 마디 하고 싶다. 한 번 어떤 보도가 나오면, 그와 관련 있는 매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모두 싸잡아서 문제 있다는 식으로 보도하지 말고, 어떤 지역에, 어떤 품목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 정확히 구분해줬으면 좋겠다. 참 어렵게 쌓아올린 신뢰성을 잘못된 언론 보도로 많이 깎아 먹을 때마다 아쉬움이 너무 크다."

80년대 정치투쟁에서 도농공동체에 이르기까지
장성 한마음공동체의 줄기찬 도전 그리고 남상도 목사


남상도 목사
 남상도 목사
ⓒ 이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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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현실사회와 농업, 농민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정치투쟁을 앞장서서 전개하였으나 이러한 운동의 한계와 제도적인 문제해결의 어려움을 느끼고 농업 농촌 문제의 근본을 해결하기 위하여 정의, 생명, 민족공동체에 근거한 생산, 유통, 소비가 함께 어우러져 생활 속에서 농민운동을 실천하기 위하여 1990년 3월 호남 최초의 유기농업 단체인 한마음공동체를 설립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홈페이지(www.yuginong.co.kr) 소개문을 통해 드러나듯, 한마음공동체의 '어제와 오늘'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도전의 역사'다. 1980년대 수세거부 운동 등 정치투쟁에서부터 1990년대 '제초제 쓰지 않기 운동'으로 대표되는 유기농업 생산공동체 활성화 과정, 그리고 2000년대 도농 교류를 통한 친환경 농산물 유통 대중화 단계에 이르기까지, 한마음공동체가 걸어온 길 자체가 농민운동의 변천사다.

그래서 한마음공동체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남상도 목사(52)다. 1984년 마령리 백운교회에 부임하면서 농촌 현실에 눈을 뜬 남 목사는 이후 각종 정치투쟁을 선도하다, 80년대 말 '배추 파동'을 계기로 생산·유통·소비를 함께 고민하는 생활 속의 농민운동을 '대안'으로 선택하게 된다.

1990년 3월, 60여 유기농 농가를 중심으로 한마음공동체를 설립했고, 2000년 3월에는 폐교 터를 '한마음 자연학교'로 탈바꿈시켰다. 그 결과 한마음공동체 유기농 농가는 두 배로 늘어났으며, 유통본부 직원 29명, 직영매장 48개를 갖춤으로써 단단한 경제적 기반을 갖춘 '친환경농업단지'로 거듭났다. 작년 한 해 매출만 116억원, 한마음공동체를 다녀가는 '외지인'도 3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남상도 목사와 한마음공동체의 도전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있다. 사라져 가는 우리 향토 문화를 살려내기 위해 각종 축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황토문화 접목사업' 의 일환으로 최근 몇 년 전부터는 황토집 짓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마침 취재하러 갔던 날 역시, 남 목사는 '황토집' 때문에 출장 중이었다. 지난 2006년 <오마이뉴스>에 밝힌 그의 소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전국 농촌마다 그 고장만의 특화를 살려 비슷한 마을을 확산해나가는 것이 제 꿈입니다. 물론 농민들도 변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데…, 돈 많은 도시인들이 들어와 사는 건 싫어! 과연 그게 될까?'하는 부정 사고에서 스스로 벗어나야 합니다. 오직 긍정적 사고만이, 반드시 된다는 적극적 사고만이 우리 농촌과 도시 모두 '윈윈'하는 길입니다. 이것이 제 삶의 목표요, 유일한 소망입니다."



태그:#친환경, #장성, #한마음, #공동체, #유기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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