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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집에서 편안하게 살 권리를 보장하는 것 또한 집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다.
▲ SH공사의 광고문구 "집에 대한 새로운 생각" 자기 집에서 편안하게 살 권리를 보장하는 것 또한 집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다.
ⓒ 문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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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사회수업시간이었다. 선생님이 주권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한 학생이 이런 대답을 했다. "주권은 집입니다." 이것은 필자가 실제 겪었던 일로 당시에 엄청 웃었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십수 년이 지난 지금 뜬금없이 당시 그 학생의 말이 다시 생각난 것은, 주권을 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실제 존재하고 있다는 강한 인상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 그 학생의 생각은 '주권 = 집에서 살 권리'라는 등식이었을 테고, 지금은 '주권 = 집을 가진자의 특권'이라는 등식으로 해석해서 말이다.

살기 위한 집이라니?

집을 짓는 사람과 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 그리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해야 할 사람들이 집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외치고 있다. 이러한 외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새로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기존의 집에 대한 생각이 뭔가 잘못 되었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먼저 집이 사람에게 어떠한 가치를 가지는지 생각해보자. 사람이 살아가는 가장 기초적인 토대인 의식주에서 '주'가 바로 집이다. 집은 크거나 좁거나, 비싸거나 싸거나를 따지기 전에 우리의 몸을 보호하기 위한 1차적 보호막이다. 집이 좋네, 안 좋네를 따지는 건, 몸을 먼저 보호하고 논할 문제이다.

이쯤에서 재미있는 광고문구 하나를 보자. SH공사의 광고문구는 "'사기 위한' 집이 아닙니다. '살기 위한' 집입니다"라며 위에서 언급한 의식주로서의 집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덧붙여 이러한 광고문구를 '집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라고 말하고 있다.

집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 고작 살기 위한 집이라니. 이러한 광고문구가 나온 이면에는 우리사회가 집을 의식주의 하나로서 집을 생각하는 것이 아님을 전제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집은 사기 위한 것으로, 그리고 다른 한쪽에서는 집은 팔기 위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살기 위한 집’이란 광고문구로 등장할 만큼 우리사회에서 집에 대한 생각은 의식주 관념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살기 위한 집’이란 광고문구로 등장할 만큼 우리사회에서 집에 대한 생각은 의식주 관념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 문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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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모두가 집을 사고, 팔기위한 목적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집은 살기 위한 집으로 가치를 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기 위한 집을 짓는 사람과 살기 위해 집을 사는 사람이 적어 보이는 이유는, 일부 소수가 가지고 있는 집에 대한 잘못된 가치관이 우리사회 전체를 물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대다수를 위한 살기위한 집이 아닌, 기득권을 가진 소수를 위한 집을 양산하게 되는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목적 상실한 부동산 정책

재건축은 집을 사기 위한 대상으로 인식하는 그들이 눈독을 들이는 좋은 호재이다. 노후화된 건물을 허물고, 개발을 통해 깨끗한 주거환경 조성과 지역발전이라는 명분을 가진 재건축을 반대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건축이 노후화된 건물의 안전을 우려해 진행되기 보다는 투자의 가치가 우선시 되고, 기존의 입주자들의 환경을 고려하기 보다는 새로운 입주자 유치에 열을 올리는 것이 현실이다. 재건축의 목적이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아직 내려가려면 한참 남았다고 생각한 서울 강남의 집값은 서울시의 각종 규제완화 조치로 간신히 기사회생한 분위기다. '살기 위한 집'에서 '사기 위한 집'으로 과감히 유턴한 것이다. 이러한 유턴에도 빠질 수 없는 것이 명분이다. 그 명분은 '부동산 시장 활성화로 경기회복을 기대한다'이다.

재건축의 수혜자는 기존의 입주자를 포함하고 있어야 하나 현실은 기존 입주자의 이주를 부추기는 수단이 되고 있다.
 재건축의 수혜자는 기존의 입주자를 포함하고 있어야 하나 현실은 기존 입주자의 이주를 부추기는 수단이 되고 있다.
ⓒ 문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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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집이 가지는 권위는 대단하다. 아파트의 위치와 평수는 그 사람의 경제력을 뛰어넘어 그 사람 자체를 평가하는 수단으로까지 변질되고 있다. 도대체 집에 대한 어떠한 생각이 사회를 아파트 맹신주의로, 부동산 불패신화라는 가치관을 만들었는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집에 대한 생각은 국민 모두가 공유하고 공감할 수 없을 것이다. 반대로 너무나도 소박한 '주권 = 집에서 살 권리'에 대한 생각은 국민 모두가 긍정할 수 있는 문구가 아닐까 생각한다. '주권은 집이다'라고 말한 초등학생의 생각만큼만 따라갔으면 한다.


태그:#부동산, #재건축,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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