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3년 전, <오마이뉴스> 기사로 <방송고 1학년 2반을 소개합니다>란 기사를 썼다. 갖가지 사정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채, 사회에서 생활하던 분들이 늦은 나이에 방송고에 입학해서 1년 동안 생활했던 모습을 소개했던 기사였다.


그 기사의 주인공들이 2월 15일 졸업을 했다. 직장을 다니며 일요일에 나와 간 방송고에서 3년간 배움의 길을 걷고 값진 졸업장을 받게 된 것이다. 2월 15일 원주고등학교 부설 방송고 졸업식에 참가하고 졸업생 두 분과 인터뷰를 했다.

 

"방송고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입학부터 졸업까지 지켜드리겠다는 약속 지키지 못하고 떠난 미안함을 늘 가슴에 안고 살았는데, 이렇게 졸업하는 모습을 보게 되니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 먼저 방송고에 입학하게 된 동기를 말씀해주세요.

안중철 : "우리 사회는 낮은 학력을 가지고 생활하기 참 어렵습니다. 직장에서도 사회생활에서도 학력은 늘 제 발목을 잡았고 넘을 수 없는 벽이 되었습니다. 그 벽을 넘고 싶어서 방송고 문을 두드렸습니다."

 

백기범 : "입시위주의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질려서 1학년 중퇴 후 여러 기술을 습득하여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학교로 돌아갈 기회와 시간이 나지 않았는데, 연세 드신 부모님을 보필하려고 귀농한 후에는 어느 정도 시간을 낼 수 있어서 정규과정을 이수하려고 입학하였습니다."

 

 

-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은 아픔도 참 많으셨을 텐데요.

안중철 : "직장에서 승진 기회가 봉쇄되었지요. 같은 일을 같은 능력으로 하더라도 항상 다른 동료 뒤에서 숨죽이고 일해야 하는 아픔이 늘 따라다녔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가정환경 조사를 할 때 부모의 학력을 쓰게 되는데 내색은 하지 않더라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느껴지면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사회에서 학력 위조와 논문 표절 등으로 사회적 권위를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가 언론의 무차별 공격을 받아 법의 심판대에 서는 것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의 심정을 헤아려보기도 했습니다. 능력이 아닌 간판을 앞세우는 사회 현실 속에서 그들 또한 피해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합니다.

 

 이따금 사람들 앞에서 용기를 내어 중졸 학력을 자랑스럽게 얘기해보기도 했는데요.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그것도 학력이냐?'는 투의 조롱과 비하의 시선이 비수처럼 날아왔습니다."

 

백기범 : "회사에 근무할 때는 임금에서 학력에 차등을 두어 차별이 있었지만 기술이 있기 때문에 회사 내에서는 큰 아픔이 없었으나 회사가 아닌 교육장 등에서 신청 등의 서류를 받을 때 학벌에 대한 기록을 강요하며 차별대우할 때는 정말 화가 날 정도로 괴로웠습니다."

 

 

- 방송고를 다니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있었다면?

안중철 : "나이가 들어 공부하면서 기초가 부족한 과목은 힘이 들었습니다. 특히 영어, 수학, 화학 등 과목은 이해하기도 힘들었고, 진도를 따라가기 정말 어려웠습니다. 겨우겨우 시험을 봐서 졸업은 하게 되었지만 지금도 돌아보면 정말 힘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백기범 : "역시 기초가 필요한 영어 수학의 과정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기초를 다 잊었기 때문에 마치 묵정밭을 일구어 씨를 뿌리는 것과 다를 바 없이 힘들었습니다."

 

- 직장에 다니면서 일요일에 학교에 나와 수업을 받고 시험을 보며 고등학교 생활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졸업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이 무엇이었는지요?

안중철 : "우선 배움에 대한 갈증이 나를 채찍질하는 힘이 되었구요. 다음으로는 휴일도 반납하고 나와서 수업을 해주신 선생님들의 사명감 넘친 모습을 보며 포기하지 말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같은 길을 걷는 동료들의 격려와 조언이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백기범 : "늦깎이 학생을 이해 해주시는 선생님의 열정과, 같은 형편에 처한 동기학우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며 공부하는 그 점이 포기하지 않게 했던 원동력입니다."

 

 

- 방송고 다니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다면?

안중철 :  "학예경연대회 참가한 일이었습니다. 평소에 글쓰기에 관심이 많았는데 학교를 대표해서 학예경연대회에 참가해 내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게 참 뜻 깊은 일이었고, 기억에 남는 일이었습니다."

 

백기범 : "선생님과 학우들과 함께한 시간입니다. 소풍, 체육대회, 학우들과 점심을 나누었던 추억이 기억에 남고, 졸업 한 달을 남겨두고 아쉽게 영원히 떠난 칠순이 넘은 학우가 생각납니다." (방송고 다니던 한 분이 졸업을 앞두고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일이 있었다. <방송고 1학년 2반을 소개합니다> 기사에서 계주선수로 소개되었던 분이었다.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그 어느 학생보다 열심히 노력하셨던 분이라 졸업 직전에 돌아가신 것에 대해 방송고 졸업생 모두에게 가슴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 방송고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졸업을 하는 지금 심정을 말씀해 주세요.

안중철 : "막상 졸업을 하게 되니 졸업이란 기쁨보다 왠지 모를 서러움이 앞서는 건 왜일까요? 좀더 일찍 방송고를 다녔더라면 하는 후회도 앞을 가립니다." 

 

백기범 : "축하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졸업을 하게 되니 감개무량합니다. 청소년기에 졸업 했다면 이런 기분은 없었겠지요. 귀농 후 전공하고 싶던 조경학과에 진학을 해서 더더욱 기쁩니다."

 

-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학력 제일주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지요?

안중철 :  학력 이외의 방법으로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학력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게 무조건 잘못된 것이라 말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어떤 졸업장을 가지고 있느냐, 어느 학교 출신이냐가 개인의 능력보다 앞서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졸업장과 출신 학교가 그 사람의 모두가 아님을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인식하고 사회적 제도를 만들어 각자가 지닌 능력에 따라 정당한 평가를 받는 사회였으면 합니다."

 

백기범 : "우리 사회는 학력제일주의 보다 명문대 선호, 차별이 더 고질병입니다. 앞으로는 바르고 성실한 인간성에 기준을 두는 건전한 교육이 초등학교부터 이뤄졌으면 합니다."

 

 

- 끝으로 방송고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안중철 : "정말 잘한 선택이라고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절대 중도에 포기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또한 강의를 통하여 배우는 학문적 지식도 중요하지만 방송고 생활을 통하여 서로에게서 배우는 인생 공부를 소홀히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백기범 : "잘 들어 왔습니다. 최선을 다하면 앞길은 환히 열려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다시 한 번 졸업을 축하드리구요. 작년 졸업식에서 어떤 분이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우리를 괴롭혔던 고등학교 졸업장의 칼날을 방송고를 졸업한 뒤 다른 사람에게 휘두르지 말자고 하셨지요. 정말 공감이 가는 말씀이었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방송고의 소중했던 인연들을 오래오래 간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태그:#방송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