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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희생자 제4차 범국민추모대회'에 참석한 시민, 학생, 노동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14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희생자 제4차 범국민추모대회'에 참석한 시민, 학생, 노동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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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는 정치를 도덕으로부터 분리된 고유의 영역으로 파악했다. 그의 말마따나 현대인은 더 이상 정치를 도덕의 영역으로 간주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마키아벨리는 좋은 군주가 되기 위해서는 때로는 교활한 일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교활한 일에도 명분이 있어야 한다고 전제했으며,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교활함을 절대 들키지 않아야 하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권력의 '교활함'에 명분이 없을 때 그 '교활함'을 방어하는 능력도 약한 법이다. 그리하여 권력이 어설프게 교활해져서 그 교활함을 섣불리 들키게 되면 대개 심각한 사태가 야기되곤 한다. 비근한 예로 1987년 박종철군을 고문치사케 한 경찰이, '탁 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고 둘러댄 말은 오히려 6월항쟁의 테제(these)가 되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청와대와 경찰 간 '청와대 이메일 지침 파문' 사건 추이를 보면 두 가지를 알 수 있다. 첫째 이명박 정부는 교활한 권력이라는 점, 둘째 그 교활함을 곧잘 들키고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이명박 정부는 교활함을 들켰을 때의 대처 방법이 갈수록 어설프고 치졸해지고 있어 많은 이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연쇄살인과 공생하는 패륜의 공권력

정치가 도덕의 영역 밖에 있다는 점을 인정해 준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삶을 부단히 간섭하는 위정자들에게 무한한 타락을 허용한 적은 없다. 용산참사가 공권력의 공개적인 비행이었다면 이를 덮으려고 연쇄살인사건을 이용한 것은 비공개적인 비행이어서 더욱 서늘하다.

경찰이 저지른 용산참사는 무모하고 성급했을지언정 의도성이 있었다고까지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용산참사를 지우기 위해 연쇄살인사건을 끌어다 대고, 그것을 '긍정적 프레임'이라거나 '절호의 기회' 등으로 표현한 청와대의 언행은 명백히 의도적이다. 이명박 정부는 '연쇄살인 프렌들리' 정부라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사람은 모두 부도덕한 존재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부도덕을 의도적으로 행하지는 않는다. 또한 실수로 그것을 행했을 때 부끄러워할 줄 안다는 점에서 사람은 일면 도덕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것이 보통 사람의 수준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 드러난 청와대의 도덕성은 보통 사람보다 분명히 저수준이다. 청와대는 부도덕한 일을 의도적으로 기획했으며, 그것에 문제의식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는 점에서 석연치 않은 병리현상을 보인 것이다.

흔히 윤리를 망치는 행위를 패륜이라고 한다. 우리는 국가 최고 공권력의 도덕성이 패륜의 수준과 진배없다는 현실 앞에서 불안감을 느낀다. 그토록 법과 질서를 강조하던 공권력이기에 우리의 불안감이 더 큰 것인지도 모른다.

35세 1년차 행정관의 금지된 장난?

안민석 민주당 의원이 지난 12일 국회 본회의에서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용산사태로 인한 촛불시위 확산 동향관련 청와대 공문을 읽어보고 있다.
▲ 청와대 공문 보는 안민석 의원 안민석 민주당 의원이 지난 12일 국회 본회의에서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용산사태로 인한 촛불시위 확산 동향관련 청와대 공문을 읽어보고 있다.
ⓒ 연합뉴스 안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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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용산참사가 났을 때 청와대 김은혜 부대변인은 "과격시위의 악순환을 끊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는 가혹한 논평을 냈다. 그랬다가 문제가 되자 청와대는 '개인의 의견일 뿐'이라고 꼬리를 잘랐다. 물론 부대변인이 기자들 앞에서 공식 브리핑한 내용이 개인 의견일 수는 없다. 거기에는 청와대 높은 사람들의 의중이 반영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번에도 이메일의 존재를 한사코 부인해오던 청와대는 더 이상 감출 수 없게 되자, 이성호 행정관의 개인행동일 뿐이라고 또 꼬리를 잘랐다. 그는 35세 젊은이로 1년차 5급 행정관에 불과하다.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국정홍보 비서관실 행정관을 지낸 한 인사는 이를 "수상하고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언한다.

그는 먼저, "경찰과 접촉하는 사안은 민정수석실에 이첩해서 하는 것이 정상인데 국정홍보비서관실에서 '다이렉트'로 한 것이 수상한 일"이고, 다음은 "청와대 내에서 행정관은 물론 아래 행정요원의 업무도 다 체크가 되며 비서관 또는 수석의 지휘를 받지 않고는 할 수 없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청와대는 개인들의 집합체가 아니다. 아무리 이명박 정부가 허술하다고 해도 이렇게 직무계통과 위계질서가 한꺼번에 무시될 수는 없다고 본다. 1년차 5급 행정관이 경찰청 홍보담당관(경무관)에게 서로의 직책을 명기하고 보낸 이메일이 개인행동이었다고 한다면 그것을 믿을 사람이 과연 누가 있겠는지를 청와대는 헤아려야 한다.

게다가 이 행정관에 대한 사후 처분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 지난 해 4월 청와대 최아무개 행정관은 서상목 의원 홈페이지에 비난 글을 올려 직위해제된 바 있다. 이번 이 행정관의 경우 그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중대한 실책을 범한 것이다. 그런데 '구두경고'에 그쳤는데, 구두경고가 무엇인가. 말로 주의를 주었다는 뜻 말고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이 행정관이 이기택 민주평통 부의장의 자제라서 처벌하지 않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피상적인 시각일 수 있다. 이 행정관의 행동이 이미 윗선의 지시 또는 결재가 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상부의 지시에 따른 그를 심하게 문책하기가 어려웠을 것 아니겠는가?  

이 행정관이 소속된 국민소통비서관실은 말 그대로 국민과의 소통을 위한 부서로 알고 있다. 쇠고기 촛불시위가 있은 후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을 소홀히 한 점을 시인·반성한 바 있다. 그런데 대통령 비서진이 국민과 소통은 하려 하지 않고 경찰과 밀통이나 하고 있었음이 드러나고 말았다.

"영어 좀 한다"는 한 총리, 메일이 편지라면 뉴타운은 새마을?

한승수 국무총리가 지난 13일 정치분야에 관한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답변하고 있다.
 한승수 국무총리가 지난 13일 정치분야에 관한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답변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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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보도되었듯이 지난 11일 국회 본회의에서 한승수 총리는 "(청와대에서) 경찰청 홍보담당관에게 문건을 보냈느냐?"는 김유정 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메일이 갔는지 알아보겠다"고 답변했다. 이것은 청와대에서 (문건이 아닌) 메일을 보냈다는 뜻을 내포한 발언으로 비쳤다. '문건'이라고 물었는데 그는 '메일'이라고 앞서 나간 것이다.

이것이 문제가 되자 한 총리가 2차로 둘러댄 변명은 생뚱맞기까지 하다. 13일 이석현 민주당 의원이 총리의 '메일' 발언을 문제 삼으며, 총리가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니냐고 추궁하자, 그는 '어륀지' 정부의 총리답게 "영어로 메일이라고 하면 편지다, 내가 영어를 좀 한다"고 답변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뉴타운'이라고 말해놓고 그것은 '새마을'을 뜻한 것이라고 둘러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경찰 역시 마지막까지 잡아떼다가 청와대가 시인하자 메일 받은 것을 실토했다. "청와대에서 부인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먼저 시인하겠느냐?"는 경찰의 변명은 일면 자조적이지만 차라리 솔직한 편이다. 하지만 경찰은 용산참사가 있은 후 숱한 거짓말들을 '연쇄적으로' 늘어놓았다. 또한 경찰은 지난 1월 22일 MBC <100분 토론>에 개입하여 여론을 조작하는 무모함을 보이기도 했다.

이 모든 일들이 어설프고 치졸했다. 특히 김석기 전 청장의 경우가 더욱 그랬다. 그는 특공대 투입을 보고만 받았다고 했다가 직접 결재 서명된 서류를 들이대자, "보고 받았으면 승인한 것 아니냐?"고 천연덕스럽게 말을 바꿨다. 그런 그가 사임하면서 흘린 눈물은 또 무엇이었는지? 국민들은 그저 어리둥절했을 따름이다.

정작 큰 문제는 청와대는 물론 한 총리나 김 청장 등 이명박 정부 공직자들의 해명이 하나같이 1987년의 '탁 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는 어설프고 치졸한 수준으로 근접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위험한 징조이다. 왜냐하면 이런 일련의 일들은 이명박 정부의 공권력이 교활하다는 것을 들키고 있는 현상이며 동시에 이런 사태에 매우 부적당한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교활함'을 들키는 권력은 위태롭다

이번 '청와대 이메일 지침 파문'은 어느 면에서 용산참사 이상으로 심각하다고 본다. 놀랍게도 이명박 정부는 국민소통과 여론조작을 동일시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그리고 이러한 여론조작이 논의로만 그치지 않고 실행되어 실제로 언론에 먹혀들었다는 징후가 뚜렷하다.

'민언련'의 분석에 따르면 이번 강아무개 사건은 지난 2004년의 유영철 연쇄살인사건 때보다 방송 보도 횟수가 두 배 이상이나 많았다고 한다. 또한 조중동은 며칠 전까지 이 사건으로 지면을 도배하다시피 해왔다. 그들은 강의 마스크를 벗겨 '악마의 생얼'을 공개하고 사건의 지엽적인 에피소드들을 다량으로 보도함으로써 연쇄살인을 센세이션화 하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

이번 '청와대 이메일 지침 파문'은 이명박 정권의 교활함이 들통난 사건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교활함을 들킨다는 것은 권력으로서 매우 위태한 일이다. 조중동이 마치 합의라도 한 것처럼 이 사건에 함구하고 있는 것은 사안의 폭발성을 알기 때문이라고 본다.

정부가 파장을 지레 두려워하여 사건을 은폐·축소하려고 하면 되레 불리해진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사건의 전말을 소상히 밝히는 것이 급선무이다. 공개된 이메일의 내용을 읽어보니 최종 목표는 '촛불 차단'에 있었다. 정부는 더 이상 촛불을 두려워하지 말고 촛불과 적극적으로 소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희생자 제4차 범국민추모대회'에 참석한 시민, 학생, 노동자들이 지난 14일 저녁 서울 서대문 이화여대앞에서 행진을 벌이다 경찰에 밀려 인도로 올라온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희생자 제4차 범국민추모대회'에 참석한 시민, 학생, 노동자들이 지난 14일 저녁 서울 서대문 이화여대앞에서 행진을 벌이다 경찰에 밀려 인도로 올라온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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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연쇄살인프렌들리, #이메일, #여론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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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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