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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지난 2007년 6월, 서울 강남구 도곡동 언주초등학교의 방과후 교실 폐쇄를 규탄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강제해직 철회를 요구하는 시민단체들의 기자회견 모습.
 사진은 지난 2007년 6월, 서울 강남구 도곡동 언주초등학교의 방과후 교실 폐쇄를 규탄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강제해직 철회를 요구하는 시민단체들의 기자회견 모습.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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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보건휴가 썼어요?"
"아뇨? 어떻게 써요. 대체교사도 없는데…."
"우린 꼬박꼬박 찾아쓰는데… 나이스(NEIS)에다 달고. 안 됐다. 보건휴가도 못 쓰고."

같은 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K씨의 말이다. 누구 가슴에 염장 지르려고 그러는 것인지… 툭 하면 이런 소릴 한다. '비정규직'인 것도 서러운데, 노동법상 누릴 수 있는 권리가 분명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누릴 수 없다. 감히 말도 꺼내보지 못한다.

새 학기를 앞두고 있는 요즘은 각 학교마다 방과후교사 재계약을 하는 시점이다. 벌써 곳곳에서 공고가 올라오고 있다. 분명 각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방과후교사가 있음에도 재공고가 올라오는 이유는 뭘까.

방과후교사 임용권은 학교장이 가지고 있다. 그렇다 보니 방과후교사의 능력을 믿고 지속적으로 계약을 유지시켜주는 학교가 있는가 하면 그와는 반대로 해마다 계약대상을 바꾸는 학교들도 있다. 속이 후련하도록 해직 이유가 명확하다면 물러나는 사람도 속이 덜 상하겠지만 대부분 그 이유란 것이 너무나도 애매모호한 것들이다.

학교측은 계약만료기간이 다 돼서 새로운 교사를 찾는다는 이유를 대지만 그 이유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계약 시에도 부당한 사례들이 종종 생긴다.

방과후교사의 운명은 학교장 손에?

퇴직금과 연월차수당은 1년 이상 계약유지가 돼야 발생하기 때문에, 퇴직금을 주지 않으려고 계약일을 3월 2일 이후로 작성해 사인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또 계약서 작성 시에도 다 완성된 계약서에 도장만 찍게 하기도 한다. 그것도 직접 찍는 경우는 그나마 기분이 덜 상한다. 무슨 조건으로 어디에 찍는지도 모르게 그냥 도장만 두고 가라는 경우도 있다. 며칠 전 한 교사가 이런 제보를 해왔다.

'어쨌든, 아직도 전 학교 측의 처사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제 신분이 1년 계약직이기 때문에 학교장의 재량에 따라, 기존에 하던 사람이 있어도, 형식적으로 재공고를 내고 서류접수를 받는 학교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하고 있는 사람한테 재계약에 대한 의사조차 물어보지도 않고, 학교 측에서 일방적으로 모집 공고를 내고… 나한테는 할 생각 있으면 서류 내라고 하기에 똑같이 서류 내고 면접 보고 다했습니다.

그런데, 보건휴가 한 번 제대로 못 내고 1년 동안 뼈 빠지게 일한 저한테 돌아오는 말은 저보다 '경력 많은 사람이 올 것 같다'는 담당교사의 말 한마디였습니다. 정말 어이가 없더군요. 그래도 1년 동안 일했던 사람인데. 이렇게 비정규직, 그것도 1년 계약직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을 헌신짝 버리듯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건지…. 지금도 학교측의 처사만 생각하면 화가 날 뿐입니다. 생각 같아선, 당장이라도 교장한테 가서 따지고 싶었지만… 정말 나중에 혹 딴 학교로 옮기려고 했을 때 불이익이나 해코지라도 당할까봐 꾹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글은 하나의 사례지만, 해마다 해직의 불안에 떨고 있는 대다수 방과후교사들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글이기도 하다.

이외에 다른 사례도 있다. 한 학교에서 방과후교사로 일하던 K씨는 어느 날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해고 통보를 받았다. 나중에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교장의 지인이 후임으로 온다는 것이었다. K씨는 노조 조합원이기도 해서 조합에 가서 하소연도 했지만 '개인이 제시한 문제를 가지고는 어떻게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없다'는 대답만을 들어야 했다. 노조에 큰 배신감을 느낀 K씨는 근로감독관을 찾아갔으나 '계약이 만료된 시점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을 듣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고. 그 후 K씨는 자신을 매몰차게 내몬 학교 쪽으론 고개도 돌리지도 않는다고 한다.

아이들 가르치는 교사임에도 '소외' 받는 방과후교사

방과후 교실에서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는 초등학생.
 방과후 교실에서 바이올린을 배우고 있는 초등학생.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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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후교사 10년 차인 나에게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여러 가지 분한 일들을 겪으며, 남몰래 소리 없이 울기도 많이 울었다. 교사들이 전체 회식을 하러 간다며 학교 현관문을 잠가 버리고 가버려 혼자 학교 안에서 발을 동동 굴렀던 일도 있었다. 학교 내 행사에 대해 알려주거나 전달해주는 사람이 없어 소외당하는 건 예사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 방과후교사로 첫 출근한 날엔 교실도 없고 앉을 자리도 없어 '방과 후 수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행정실과 교무실을 전전하며, 메뚜기처럼 생활해야 했다. 거기다 이곳저곳에서 시키는 잡다한 업무들도 모두 방과후교사가 해야 할 일이었다.

전용교실이 없어 1, 2학년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가 청소를 하고 수업을 하곤 했다. 그 어느 누구도 방과후교사의 존재에 관심이 없었다. 철저한 무관심 속에 살았다. 그 속에서 방과후교사들은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노력들을 기울였다. 20~30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작품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언론을 통해 알리려고 노력했지만 관심 기울여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현재 방과후 전용교실이 마련되기까지 5번의 이사를 했다. 그것도 혼자서 책상을 옮기고 교구들을 옮기곤 했다. 원반 교실모퉁이에서 컨테이너로, 다시 교실로, 다시 5층 체육관으로, 다시 2층으로…, 그 많은 이삿짐들을 혼자서 꾸리고 풀었다.

휴가만이라도 마음 놓고 당당히 쓰고 싶다

방과후교사는 엄연히 학교 내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임에도 '보육전담관리인력'이 공식 명칭이다. 이 명칭만 보더라도 관계기관에서 방과후교사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근무 조건도 1년 365일로 정해져 있는데, 이 또한 악용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근무는 365일이지만, 임금은 270일 기준인 과학보조원과 같은 수준으로 받고 있다. 보너스나 추가 근무수당은 고사하고 물가상승분도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또 365일 기준이다 보니 학교휴무일, 재량휴업일, 방학기간에도 휴가 없이 근무를 하고 있다.

거기다 보육교사에겐 몇 십 년을 일하든, 몇 백 년을 일하든 승급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이유는 학교가 정부에서 인정하는 보육시설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그러다 보니 연수 기회도, 보수교육 기회도 없어서 교사들은 자비를 들여 스스로 교육연수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방과후교실은 초등학교 저학년을 대상으로 주로 운영되고 있다. 학생들 급식지도와 학습지도, 부족한 학습의 보충, 특별활동지도, 간식지도 등을 담당하기 때문에 교육과 보육을 병행하면서 교사와 부모의 역할을 감당해 내고 있다.

방과후교사들은 학년이 다른 학생들을 15~20명씩 가르치며 돌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사명감 없이는 일을 할 수 없다. 그런 교사들의 바람은 소박하다. 정년까지 해직 걱정 없이 아이들과 함께 일해보는 것, 휴가를 마음 놓고 당당하게 써 보는 것, 공식적으로 방과후교사로 인정받는 것 등이다.

다시 봄이 오고 있다. 이 봄이 우리 방과후교사들에게도 따뜻함을 나눠주길 바란다.


태그:#보육교사, #방과후, #비정규직,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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