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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학년이 시작되었다.  예전 같으면 2월이 제일 한가할 터이지만, 이제는 송구영신의 제일 바쁜 달이 되어버렸다.

 

일 년 내내 이 지겨운 녀석들 얼굴 안보게 되는 날만 기다렸던 나.  그러나 막상 진급을 하게 될 전날 밤, 내내 뒤척뒤척하는 기분은 묘했다.

 

  유독 개성이 강한 아이들인데다 나 또한 오랜만에 담임을 했던 터여서, 적응하는 데에만 일 년을 다 보내버렸지 않은가.   정 들자 이별이라더니...

  콧날이 시큰해졌다.

 

  마지막 날 아침 조회.

  정작 아이들은 고3으로서 자신 앞에 펼쳐질 새로운 삶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 새로운 담임에 대한 호기심, 새로운 친구에 대한 기대 등으로 예전의 담임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시끌시끌한 분위기를 겨우 정돈한 다음, 나는 말문을 열었다. 

 

  일 년 동안 너희들과 씨름하느라고 혈압이 수없이 오르내렸다만, 지나고 나니 다 그리운 추억이 되는구나.  학년 초보다 점점 나아져서 마지막에는 아주 잘했어. 끝이 좋으면 다 좋은 법이거든. 그래서 걱정은 않는다만 그래도 녀석들아, 3학년 때 잘못하면 너희들 잘못 키웠다고 내가 욕을 얻어먹게 될 거야. 그러니 속 차리고 열심히 해서 수능 끝나면 좋은 결과 가지고 나를 찾아오너라. 그러면 술 사줄게. 밥 말고 술! 일 년 후에 우리는 술집에서 만나는 거야!

 

  앗, 술집이라니!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정말요?

  그래!

  꼭 약속 지키셔야 해요.

  그렇다니까!

 

  아이들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책을 가슴에 품은 채 3학년 교실로 옮겨 갔다. 아이들은 교실 문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내게 인사를 했다. 물기가 묻어나는 눈이었다.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언제든 놀러와. 특히 어렵고 힘들 때. 알았지?

  네. 그럴게요.

  나는 아이들이 사라진 텅 빈 교실에 한참 서 있었다. 그간의 시간이, 세월이, 이야기가 소리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래, 갈 것들은 다 가는 법이지. 시간과 함께, 이야기와 함께, 다들, 그렇게...  

 

  교무실은 분주했다.   선생들이 새로 발표된 일 년간의 업무분장에 따라 자리 이동을 하고 있었다. 나 또한 뒤늦게 장갑을 끼고 부랴부랴 책상 정리를 시작했다. 그때였다.

 

  선생님!

  돌아보니 유민이었다.   학년 초부터 유독 나와 부딪침이 많았던 아이. 교실 복도에서 학년 전체 아이들이 긴장할 만큼 큰소리로 대들기도 했고, 자습 시간에 무단 땡땡이로 걸리거나, 자습 시간에 떠들어 여러 번 지적도 받았다. 또 말끝마다 왜요? 왜요? 하며 학급 분위기를 어렵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런 유민이가 종이 커피를 들고 교무실로 찾아온 것이다. 나는 눈을 크게 뜬 채 유민이를 맞았다.

 

  선생님, 일 년 동안 감사했어요!

  유민이의 커다란 눈이 금세 빨게졌다. 그러자 금방 눈물을 떨구기라도 할 듯 도망치듯 교무실을 빠져나갔다. 책상 위에는 유민이가 남긴 커피와 쪽지가 올려져 있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학기 초부터 항상 말썽만 부렸던 유민이에요. 다른 애들과 다르게 선생님께서 혼내기도 많이 하시고, 늘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시면서 "요즘 유민이 너무 잘하고 있어서 기분이 좋다"라고 하시며 환하게 웃으셨잖아요? 표현은 못했지만, 너무 행복하고 선생님께 고마웠어요! 맨날 속만 썩이고 많이 미운 행동만 했는데... 그래도 끝까지 응원해주신 거 항상 고마워하고 있어요.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3학년 땐 실망시켜드리는 일 없도록 할 거예요. 지켜봐 주세요.

  선생님 사랑해요.   -유민-

 

  이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때였다.

  '아이들이 새로운 교실로 다 이동을 했으니, 새 담임은 맡은 교실로 가 주세요!'

  젖은 눈시울을 닦을 새도 없이 나는 또다시 장갑을 벗어던진 채 새로 만나게 될 아이들을 향해 교무실을 나섰다.


태그:#교육, #교실, #새 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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