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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심을 알 수 없는 바다에서 다이빙을 하다 전신마비자가 된 남자, 라몬 실화를 재조명한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영화 <씨 인사이드>(2004). 가족들의 헌신적인 뒷바라지 속에 침대에 누워서 오로지 입으로 펜을 잡고 글을 써왔던 그의 소망은 단 하나,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수심을 알 수 없는 바다에서 다이빙을 하다 전신마비자가 된 남자, 라몬 실화를 재조명한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영화 <씨 인사이드>(2004). 가족들의 헌신적인 뒷바라지 속에 침대에 누워서 오로지 입으로 펜을 잡고 글을 써왔던 그의 소망은 단 하나,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 스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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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도 이제 어렵다고 하면서 뭐하러 호스 주렁주렁 달고 중환자실에 눕혀 놓는지 몰라! 나 그런 사람 여럿 봤어요. 돈은 돈대로 들고, 나는 그거 정말 안 하고 싶어요."
"나 아는 사람도 그렇게 2년 반이나 있다가 결국 세상 떠나더라구요. 긴 병에 효자 없다고 자식들도 나중에는 다 지쳐서 이제나 저제나 가시길 기다리니 서로 못할 일이지요."
"그래도 막상 부모가 그런 상태면 자식으로서는 이제 치료 그만두라는 말이 안 나올 거예요. 그치요? 나도 우리 부모님 누워 계시면 그렇게 못할 거 같아요."
"그러니까 남편이나 자식들한테 미리 미리 말해 두는 게 좋다는 거지. 안 그래요?"

"내가 아는 분은 아버지에게 호흡곤란이 왔는데 의사가 호흡기 끼자고 하니까 자식들은 다 그러자고 했는데 부인이 나서서 말렸어요. 아버지 힘드시다고. 아버지가 평소에 갈 때 되면 호흡기 같은 거 끼우지 말고 그냥 보내달라고 했다면서 자식들을 말린 거예요. 한 사흘 그렇게 있다가 가셨는데 옆에서도 두고두고 잘 했다고 했어요. 말도 못 하고 사람도 못 알아보면서 그저 누워만 있으면 뭐하겠어요."
"맞아. 어떻게 가시든 자식들 마음 속에 후회야 남는 거고, 본인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게 제일 좋을 거 같은데 문제는 원하는 걸 말로 못할 때가 온다는 거지요.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내가 진행하는 죽음준비교육 수업시간에 소생 불가능한 환자에게 연명 치료를 하는 것에 대해 토론을 벌였을 때 나온 이야기들이다. 최근 법원의 '존엄사 인정' 판결을 설명해 드리고 다시 의견을 여쭤보니, '존엄사'라는 것에 대해 조금 더 현실적으로 느끼시는 것 같았다.

존엄사는 '자연사', 안락사와는 달라

"당연하지, 그냥 목숨만 붙어 있는 거잖아. 말을 못해서 그렇지 환자도 그러고 있는 게 좋겠어? 가족이고 누구고 이제 그만했으면 하는 생각을 해도 막상 나서기는 어려우니까 법으로 해줘야지."

"맞아. 환자가 평소에도 기계 끼우는 거 싫다고 했다며? 그럼 된 거지, 뭐."

"그래도 자식들이 참 용기 있어. 아무리 어머니가 평소에 그렇게 부탁을 했다 해도 그런 결정 내리기 쉽지 않았을 걸."
"그럼, 이제부터는 누구나 원하면 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야?" 

'존엄사'는 '말기의 불치병 환자에게 연명치료를 유보 또는 중단함으로써 초래되는 죽음, 즉 자연사의 임종 과정'(김건열, <존엄사> 93쪽)을 뜻한다. '존엄사'를 '안락사'와 혼동하는 경우도 많은데, 나는 어르신들이 쉽게 이해하실 수 있도록 풀어서 설명해드리곤 한다.

환자가 도저히 견딜 수 없고 더 이상 치료와 조절이 불가능한 고통을 없애주기 위해 인위적인 방법으로 자연적인 사망을 앞당기는 것은 '안락사'이고, '존엄사'는 이와 달리 소생이 불가능한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존엄사'는 자연사다.

여기서 한 가지 알아둬야 하는 것은 '연명치료'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모든 치료를 무조건 다 중단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환자의 통증관리 등을 위한 완화의료 행위는 당연히 지속하게 된다. 

앞의 어느 어르신의 질문처럼 그렇다면 앞으로는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아직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남겨두고 있지만 앞서 나온 판결을 중심으로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지난해 11월 28일 서울서부지방법원의 '존엄사 인정' 첫 판결 내용을 보면 판단의 근거를 세 가지로 들고 있다. 의사들의 감정 결과 환자가 의식을 회복해 도움 없이 생존할 가능성이 없고 기대여명은 3~4개월 이내로 보이며, 환자가 평소 기계에 의해 연명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던 정황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 2월 10일 서울고등법원에서도 '존엄사'를 인정했는데 치료 중단의 엄격한 요건 중에는 '회생 가능성 없는 사망 과정 진입'과 '환자의 진지하고 합리적인 의사표시' 항목이 들어있다.

천하보다 귀한 사람의 생명을 두고 고민하는 '존엄사'만큼 민감한 문제가 또 있을까. 의사 표시를 못하고 있는 환자의 고통과 그에 따르는 가족의 어려움을 인정하고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살만큼 살았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오는 연세 많은 분들에 대한 압박 혹은 의료비 문제를 염두에 둔 반강제적인 생명 포기가 될 수도 있다는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게 된다.

따라서 이 문제는 앞으로 아무리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한 이야기를 나누고 깊이 있는 토론을 거쳐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갖가지 경우의 수를 고려해 논의하고 해법을 구해야 할 것이다. 환자의 소생 가능성을 판단하는 것은 의료전문가들의 영역이므로 나는 여기서 우리들 스스로 할 수 있는 부분만 정리하도록 하겠다.

'생존 시 유언서'는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

사랑하는 사람이 불의의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두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그녀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불의의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두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그녀에게>
ⓒ 미로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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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환자가 평소에 '기계에 의해 연명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던 정황을 인정했는데, 만약 환자가 인공호흡기 제거라든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한다는 의사를 말뿐만이 아니라 서면으로 남겨놓았더라면 주위에서 환자의 뜻을 파악하는 데 더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존엄사'는 죽음준비교육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데 수업에 참가하는 분들이 직접 작성해 서면으로 남겨놓도록 하고 있다.

스스로 판단능력이 없어질 때를 대비해 원하는 진료와 치료 내용에 대해 자신의 소망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에는 '생존 시 유언서(Living Will)'와 '사전 의료 지시서'가 있다. '사전 의료 지시서'는 아래에 덧붙여 놓은 양식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생존 시 유언서(Living Will)'에 대해 설명하면, 유언장은 보통 사후에 공개되지만 이것은 살아있을 때 충분히 공개되고 공유되어야 효과가 있어 '생존 시 유언서' 혹은 '생전(生前) 유언'이라 부르고, '존엄한 죽음을 위한 선언'이라고도 한다.

소생이 불가능할 때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하지 말되 통증을 완화시키기 위한 조치는 최대한 해 줄 것을 문서에 적고 서명을 해두는 것이다. 환자 자신의 의사 결정을 분명하게 밝혀둘 수 있어 보호자를 비롯한 주위의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삶의 다양한 방식만큼 다양한 죽음의 방식이 있기에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도 죽음준비의 한 항목이다.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은 결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의미가 아니고, 자신이 맞이하고 싶은 죽음의 방식을 미리 정해 놓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과 관련해 구체적인 의사표시를 해두면 남은 가족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이 과정 자체가 죽음을 통해 삶을 들여다보는 좋은 기회가 된다. 마지막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가고 싶은 것, 그거야말로 모든 이의 소망 아니겠는가.


태그:#존엄사, #리빙 윌, #존엄한 죽음을 위한 선언 , #죽음준비, #LIVING W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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