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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동네 도서관을 가보면 꽤나 기이한 낌새가 들 거다. 지하 열람실부터 꼭대기 층까지 한 번 돌아보면, 책을 읽고 있는 학생들보다도 문제집을 붙잡고 씨름하고 있는 학생들이 훨씬 많으니까 말이다. 하니 요즘엔 학생들이 ‘도서관 간다’하면 책 읽으러 간다기보다는 각종 시험공부를 하러 간다는 뉘앙스가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지하철에서조차도 각종 무언가를 풀고 있는 학생들이 종종 눈에 띈다. 차림이나 생김새로 보아 거의 대부분 고등학생들인데 문제를 슬쩍 들여다보면 대개 모의고사 문제집인 경우가 많다. 하긴, 중학생들이 이런 문제집을 풀어도 요즘엔 별로 이상할 게 없으니 그들 중 중학생들이 껴 있었을 수도 있겠다.

 

이런 풍경은 카페에서도 가끔 눈에 띈다. 두세 명씩 테이블에 앉아 앞에 커피나 코코아 같은 것을 한 잔씩 놓고서 문제 풀이에 열중하는 풍경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지 않은가.

 

 학구열에 불타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칭찬할 사람들도 있겠다. 어린 학생들이 놀 시간을 아끼고 자투리 시간을 쪼개 공부하는 모습이 기특하다고 할 사람들도 있겠다. 하지만 이 칭찬들에 답하기에 앞서 하나 명확히 짚고 넘어 갈 것이 있다. 이 학생들 중에 이런 식으로 공부하는 것이 재밌고 좋은 학생들이 몇이나 될까? 아니, 부정적인 어법으로 다시 물어보자. 공부가 ‘안 싫은’ 학생들이 몇이나 될까?

 

사실 내 주위 친구 중에 공부가 재밌고, 그래서 공부 자체만으로도 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은 본 적이 없다. 물론 자신의 의지로 공부하는 학생들도 많다. 하지만 이들에게 주어진 공부란, 훗날 무언가의 ‘목적’에 대한 ‘수단’밖에 되지 않는다. 대부분 학생들이 미래를 담보로 생존의 수단으로 공부라는 것을 억지로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진정 학문의 즐거움에 푹 빠져 공부하는 학생들은 한국의 현주소에서 거의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데 공부라는 것이 재미있을 리가 있는지.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들은 공부가 싫은 것일까? 당연한 이유다. 한국의 공부가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교육을 학생들 입장에서 한마디로 말하자면 ‘문제집 교육’이다. 이는 한국의 공부가 생존의 ‘수단’임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한 문제라도 더 맞히기 위해서는 한 문제라도 더 푸는 것이 유리한데 이는 각종 시험의 줄 세우기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수단’인 것이다. 이러한 생존의 수단에 학문적 가치나 유희를 따질 수 있을 리는 만무하다.

 

또한 문제에 정답이 따르는 것은 당연지사, 한국의 문제집들에는 항상 정답이 있으며 한국 학생들에겐 이 정답들만이 살 길인 것이다. 즉, 이곳에서 공부라 함은 이런 ‘정답 익히기’에 불과하다. 정답과 다른 답을 내놓는 학생은 바로 줄에서 뒤로 밀려나게 되고 학교나 수능 등 각종 시험의 줄 세우기에서 밀려났다는 것은 곧 인생이 밀려남과 같은 의미이기 때문이다.

 

 아까 그 기이한 풍경들로 돌아가 생각해보자. 우린 이쯤에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누가 이들을 이런 ‘문제집 학구열’에 불타도록 몰아갔는가? 누가 자투리 시간을 쪼개 이런 ‘문제풀이’를 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도록 몰아갔는가? 도서관에서 읽고 싶은 책을 맘껏 골라 읽을 수 있는, 지하철에서 잡지 한 권을 펼쳐 들고 여기저기 밑줄 쳐 가며 볼 수 있는, 카페에서 또래 친구들과 사회와 문화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일 수 있는, 그런 작은 자유와 여유 그리고 지적유희조차 그들에게서 빼앗아간 한국 사회를 우린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진짜 공부는 문제풀이가 아니고 정답 익히기가 아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삶의 철학, 그리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에 대한 안목, 그리고 나와 세상의 관계에 대한 해석을 시도하는 것이 진짜 공부 아니겠는가. 이런 기회를 박탈당하고 공부라는 이름 하에 모두 똑같은 시험을 향해 달음박질하는 대한민국의 모든 학생들은 명백한 피해자다. 현재의 기득권자들의 입맛에 맞는 인재를 찍어내는 데에 교육의 목표를 두는 시대착오적 발상에서 생겨난 피해자인 것이다.

 

거꾸로 가는 지금의 한국 교육에는 유턴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 교육에 있어서는 공부가 재미없고 싫은 게 당연하다. 목적과 수단이 분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입시라는 잠깐의 목적을 위해 청소년기를 바치는 것이 아닌가. 공부라는 것이 생존의 수단이 아니라 행복한 삶을 위한 연장선이 되기 위해 한국 교육은 당장 변화되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공부가 생존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모든 청소년들에게 행복하게 공부할 수 있는 권리를 돌려달라.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 블로그[http://blog.hani.co.kr/dreame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입시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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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적인 거북목 때문에 힘들지만 재밌는 일들이 많아 참는다. 서울인권영화제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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