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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 들머리에 앉아있던 유가족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명동성당 앞을 지나다 잠시 발걸음을 멈춘 회사원 커플도 들머리 입구에 세워진 작은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시킨 중년 아주머니의 입에선 "아~" 탄식이 나왔다.

 

스크린 속에서는 온 나라가 88올림픽 준비에 정신을 빼앗긴 사이 재개발로 달동네 집을 빼앗기고 2년6개월 동안 상계동에서 명동성당으로, 다시 부천의 고속도로변 작은 땅까지 철거민들이 내몰리는 과정을 담아낸 김동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상계동 올림픽>이 상영되고 있었다.

 

부천시청의 철거반에 맞서 어머니를 구하려 뛰어들었던 고등학생이 시청직원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고 "억울해... 억울해"라고 울부짖을 때 이 장면을 지켜보던 사람들 중 몇몇은 여기저기서 눈시울을 훔쳤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장면, 올림픽 성화 봉송 때 보기 좋지 않다는 이유로 추위를 피할 가건물까지 철거당한 주민들이 허허벌판에서 '출전가'를 부르는 장면이 나오자 촛불집회 참가자들 중 일부는 함께 그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12일 저녁 7시 명당성당 들머리에 다시 켜진 촛불

 

12일 저녁 7시 명동성당 들머리에 다시 촛불이 켜졌다. '이명박정권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아래 범대위)가 주최한 촛불 집회에 자리를 함께한 '용산 참사' 유가족들과 시민들은 <상계동 올림픽>을 함께 보면서 2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변하지 않은 철거민에 대한 '국가 폭력'에 대해 분노를 나타냈다.

 

88년 올림픽이 열렸을 때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는 회사원 최영호씨는 "올림픽을 준비하기 위해 정부가 없는 사람들을 그토록 탄압했다는 사실이 놀랍다"며 "2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철거민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가 어쩜 그리 똑같은지 오늘 영상물(상계동 올림픽)을 보고서야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취재하던 기자에게 이날 상영된 다큐멘터리의 제목이 뭔지 묻기도 했다.

 

일부 참가자들은 유가족과 범대위의 시국농성을 경찰을 동원해 막으려 한 명동성당의 냉정한 태도에 대해서도 비판을 쏟아냈다.

 

대학생 김정욱(24)씨는 "<상계동 올림픽>에서는 쫓겨난 철거민에게 명동성당 내에 거주할 공간을 마련해 주고 김수환 추기경이 직접 철거민들을 만나 위로하는 장면이 나오던데 지금의 명동성당은 사회적 약자들을 외면하기에 급급하다"고 실망감을 드러냈다.

 

이날 집회에서 유가족들은 시민들에게 관심과 도움을 요청했다. 유가족 유영숙씨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납득할 수 없는 수사결과를 발표해 우리 유가족들은 두 번 죽이고 끝까지 철거민을 짓밟으려 하고 있다"며 "하지만 우리는 끝까지 살아남아 진실이 규명될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유씨는 "우리의 싸움이 계속 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관심과 도움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14일 오후 4시 용산역 광장에서 '용산 살인진압 규탄 범국민 추모대회'

 

곧 재개발이 예정돼 있는 은평구에서 9년째 세입자로 살고 있다는 평화활동가 조약골씨는 "재개발 소식으로 이미 주변의 집값이 크게 올라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쫓겨난다면 어디로 갈지 막막하다"며 "내려 올 곳 없는 망루를 쌓아 올려야만 했던 철거민의 처지가 내게 닥칠 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며 씁쓸해 했다.

 

한편 전날 명동성당의 시설물 보호 요청을 이유로 성당 입구를 막아섰던 경찰은 성당측의 요구로 철수했다.

 

천주교 빈민사목위원회 위원장인 이강서 신부는 "늦었지만 오늘에서야 성당측과 범대위가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게 됐다"며 "공권력에 짓밟히고 냉대받는 철거민들과 유가족들을 성당마저 외면하는 것 같아 섭섭하셨을 유가족들에게 죄송하다"고 사과의 뜻을 밝혔다.

 

이날 촛불 집회를 마친 유가족과 시민 500여 명은 명동역까지 행진하면서 거리의 시민들에게 14일 오후 4시 용산역 광장에서 열릴 예정인 '용산 살인진압 규탄 범국민 추모대회'에 참석해 달라고 호소했다.

 

범대위는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용산 참사에 대한 재수사 및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국농성을 14일까지 이어갈 예정이다.


태그:#용산 참사, #상계동 올림픽, #철거민, #명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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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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