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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을 돕는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봉사는 작은 씨앗에서 자라나 커다란 나무가 되듯 하나를 시작하면 자신감이 생기며 자기 자신이 자랑스러워집니다. 봉사는 자기 자신을 키우는 것이지 남을 키우는 것이 아닙니다.”<정영길 과장 인터뷰 중에서>

 

우리시대의 슬픈 자화상

 

 경기불황 때문에 ‘희망’보다는 ‘절망’이 회자되는 시대다. 기축년 새해가 밝은 지 2개월이 지났건만 기대와 희망의 말 보다는 “먹고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희망이 없다보니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힘겹다. 그래서 현실인식에 대한 체념과 무기력증은 더욱 내면화되는 듯하다.

 

 서글픈 현실 때문에 십시일반으로 모아 소외된 이웃을 돕던 뜻있는 사람들도 어려운 이웃에 관심을 갖기란 쉽지가 않다. 때문에 당장 한 끼니가 현실인 어려운 이웃에게 올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하지만 위기국면에서도 부자들은 10년만의 최고 투자의 기회로 삼고 재테크 서적과 정보수집에 시끌벅적하다. 자산 가치의 하락은 없는지, 새로운 투자처는 없는지, 자산 포트폴리오를 재점검하면서 다가올 미래에 대해 만반의 준비를 하는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그들은 진정한 기부문화에 대해서는 여전히 인색하다.

 

 부자들의 기부문화에 대한 인색함 속에서도 지난 해 불우이웃 성금액수가 증가됐다. 이것은 우리사회에서 경기침체로 서민들의 이웃사랑에 대한 열기가 식었다 하더라도 ‘사랑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들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이웃사랑을 묵묵히 해내는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 별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인터뷰를 한다고 수차례 손사래를 쳤다. 여러 번의 설득 끝에 지난달 20일 한국수력원자력 청평발전소(이하 청평발전소) 발전기 주제어반에 근무하는 정영길(47) 과장을 만났다.

 

한결같은 이웃사랑

 

 정영길 과장은 더불어 사는 사회를 꿈꾸면서 ‘나눔’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봉사 예찬론자다. 그가 봉사예찬론자된 것은 ‘화전민’ 생활을 하던 유년기 경험에서 비롯됐다. 충북 제천에서 3남 2녀의 둘째로 태어난 그의 부모님은 야산을 일구어 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홍수로 인해 흉작이 다반사였다. 그래서 일곱 식구의 호구지책은 암담했다.

 

 가난의 경험은 소외된 이웃에게 절실한 것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해 주었다. 그것은 “형식에 급급해 큰 것만을 주는 것이 아닌 가지고 있는 것 중 일부만 나눠도 충분하다는 것. 그래야 주는 사람이건 받는 사람이건 나눔의 행복은 윤택해진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그래서 그는 틈나는 대로 불우이웃에 대한 사랑의 끈을 놓지 않고 그들을 찾아간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사택과 인접한 <노인 회관> <원방의 집>에 행복을 나누기 위해 늘 달려간다. 여기에 지난 2004년부터 청평에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소년가장’을 돕고 있다. 정 과장은 충분히 금전적으로 보탬이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항상 받는 이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항상 “자신의 용돈 일부를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것”으로 여긴다.

 

 이처럼 그가 보기에 ‘나눔’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중 일부를 나누면서 더 큰 것을 얻는 것이다. 그는 “나누다 보면 점점 더 자신에게 더 많은 자신감을 가질 수 있어 행복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나눔이란 비단 물질적인 풍요로 계량화할 수 없는 정신적인 행복을 찾는 원동력이다. 때문에 나눔과 행복은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특히 그에게 나눔을 통한 행복의 이치를 깨닫게 해 준 것은 노자의 <도덕경>을 읽고부터다. 그 책에서 지나친 욕심이 큰 화를 초래한다는 것을 읽고 나서 함께 나누는 것을 실천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은 일상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불편한 마음이 생기거나 혼란스러울 때 <도덕경>을 보면서 마음을 다스린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청평 발전소>의 사내분위기는 그를 봉사 예찬론자에만 머물지 말고 체계적인 실천을 하면서 나누는 삶을 가르쳐 주었다. 그는 “과거에는 사내에서 봉사활동을 하면 왜 해야 하는지 의구심이 들어 지루하기만 했다. 그런데 청평발전소는 동료들 모두 봉사활동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나눔의 가치관을 심어 주었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사내 봉사활동으로 치매 어르신과 독거노인 들이 계신 <원방의 집> <열린 효경원>과 인연을 맺으면서 목욕봉사, 전기공사 등을 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그는 봉사활동이 “단지 금전적인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육체적인 도움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때문에 정영길 과장은 전공한 전기와 배선을 수리하는 일을 도맡아 한다. 전기공사와 관련된 일은 일사분란하게 마무리해서 어르신들로 부터 ‘맥가이버’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다.

 

  나누십시오, 그러면 행복은 윤택해 집니다

 

 이웃사랑의 실천은 직장 동호회 봉사활동에만 국한 되지 않는다. 온 가족이 함께 사택에 거주하는 정영길 과장은 “가족들과 함께 텃밭을 일구어 무와 배추를 수확한 후  매년 초겨울 이면 가족이 함께 김장을 담근다”고 한다. 가족들의 한결같은 이웃사랑이 담긴 김장 김치는 어김없이 <노인 회관>으로 전달된다. 그 때마다 어르신들의 감사의 포옹은 하루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내 준다.

 

정영길 과장의 이웃사랑은 현재진행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미래완료형이기도 하다. 때문에 퇴직 후에도 지속될 <장학재단> 설립을 목표로 지난 2004년에 경남 하동에 1200여평 의 토지를 구입하여 녹차나무와 매실나무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아직 시장성은 없지만 지난 해부터 1톤 정도를 수확하기 시작했다. 좀 더 시간을 가지면서 상품화를 목표로 농업에 관련된 책을 틈틈이 읽고 있다. 이 때문에 쉬는 날에는 어김없이 가족과 함께 경남 하동까지 달려가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이것은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남들로부터 받은 것을 사회에 되돌려 놓겠다는 야심찬 계획의 일환이다. 말하자면 <장학재단>은 ‘폼생폼사’의 인생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사회’를 꿈꾸는 봉사활동의 최종정리를 하는 마침표인 것이다.

 

 나눔은 마음의 여유를 찾는 것

 

 어찌 보면 우리사회의 화두인 노후설계, 교육자금, 내집 마련의 현실이 이웃사랑에 대한 실천을 지연시키는 요인들이지만, 정영길 과장은 이러한 문제들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배운 자신감과 마음의 여유라는 귀중한 정신적인 자산을 얻었기 때문이다. 봉사활동은 그에게 “자신의 마음을 넓힐 수 있는 것이다. 남한테 주는 것 때문에 자신의 물건은 줄더라도 마음은 줄어들지 않고 계속해서 늘어나는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주었다.

 

 그가 쓸쓸한 노년을 보내는 치매 어르신들이 계신<원방의 집> <열린효경원>에서 지속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이유도 부족하지만 서로 나눌 수 있는 행복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불우청소년에게는 손잡고 격려해 준 말 한마디로 주눅 들곤 했던 아이도 웃음을 되찾았다. 날로 각박해져가는 세상이지만 정영길 과장에게 그들은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게 해 준 스승에 가깝다.

 

 최근 “경기불황으로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도 마음의 여유가 없는 일반인들에게 덕담 한 마디”를 묻자 “우선 일을 저지르세요. 시간이 흐르면 자신에게 잘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봉사는 후회라는 자체가 무의미 합니다. 일단 시작하면 더 잘해보겠다는 욕심이 생겨 인생의 값진 경험을 얻을 수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의 한결같은 이웃사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이처럼 이웃사랑에 논리는 단순 명쾌했다.

 

정영길 과장의 이웃사랑은 끝이 없다. 새로운 도약을 향한 힘찬 날개 짓을 하면서 항상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다. 장학재단이 설립되어 소외된 이웃의 희망이 되었으면 한다. 그의 아름다운 변신을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연락처 열린 효경원 031-585-5671 원방의 집  031-581-1435


태그:#한국수력원자력 청평발전소, #원방의 집, #정영길, #열린효경원, #노인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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