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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대 대선일인 2007년 12월 19일 투표 모습. 18대 대선에선 재외국민의 참여도 가능하다.
 제17대 대선일인 2007년 12월 19일 투표 모습. 18대 대선에선 재외국민의 참여도 가능하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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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재외국민 240만 명에게 대통령선거와 총선 비례대표 투표권을 부여하는 재외국민투표 관련법을 지난 2월 5일에 통과시켰다. 기존에는 국정선거와 지방선거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주민등록이 선거인명부에 등록되어 있어야만 했지만, 이제는 주민등록이 되어 있지 않은 재외국민도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재외국민 중 국내에 거소신고를 한 이들은 4월 경기도 교육감 선거와 재보궐 선거에 참여할 수 있다.

재외국민의 투표권 부여 범위는 지방자치 선거와 대통령/국회의원 선거가 약간씩 다르며, 국회의원 선거 또한 비례대표 투표와 지역구 투표 권한에 차이가 있다. 지방자치선거와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 투표하기 위해서는 재외국민이라도 국내에 거소신고가 되어 있어야 하는 반면, 대통령 선거와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의 투표는 주민등록이 없거나 국내거소신고가 되어 있지 않아도 선거일 전 150일부터 선거일 전 60일까지 재외선거인 등록을 하면 투표할 수 있다.

이번 공직선거법 등의 개정은 2007년 6월 28일 주민등록 여부를 요건으로 선거권을 행사하도록 한 기존 공직선거법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한 후속조치지만,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선거 공정성에 대한 시비가 불거져 나오고 있고, '선상투표' 도입 여부도 후속 과제로 미뤘다. 특히 2012년 대선과 총선이 다가올수록 정치적 유불리를 다투는 논쟁은 피해갈 수 없다.

그동안 국내에 거주하지 않는 국민의 해외 투표가 한 번도 시행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1966년에서 1972년까지는 국내에 주소를 가진 국외 체류자가 현지에서 부재자 투표를 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 제도는 박정희 정권이 확실한 자기 표를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믿었던 파월장병들의 표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되었으나, 유신체제의 등장과 함께 사라졌다.

재외국민 투표권 문제가 다시 불거진 것은 1997년 이부영 당시 신한국당 의원이 재외국민의 서명을 받아 선거권 보장을 위한 청원을 국회에 제출하면서부터다. 이후 재일한국인과 프랑스 거주 상사주재원과 유학생이 투표권 보장을 요구하는 헌법소원을 청구하기도 했으며, 1999년 헌법재판소는 기술적인 어려움과 해외거주 사유를 본인 스스로 만든 점 등을 들어 청구를 기각했다. 다만, 해외파견군인과 공무원 등에 대해서만 후속조치를 권고했을 뿐이다.

재외국민 투표권, 무엇이 쟁점이었나?

그동안 재외국민의 투표권을 둘러싼 논쟁은 권리부여 대상의 범위 문제가 핵심이었다. 생활 기반이 국내에 있으면서 일시적으로 해외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투표권을 보장할 것인지, 아니면 해외에 거주할 목적으로 영주하고 있는 이들에게까지 투표권을 보장할지에 대한 것이다. 전자가 주로 기술적인 측면 때문에 투표권이 부여되지 못하고 있었으나 투표권 부여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큰 이견이 없었다면, 후자는 갑론을박이 존재했다. 헌재 또한 1999년의 판결과 2007년의 판결이 달랐듯이,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법리적 다툼은 아니었다.

이 문제는 법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며,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이 변해오기도 했다. 예전에는 주로 진보적인 인사들이 재외국민 투표권에 관심이 높았지만, 최근에는 재미한국인의 보수적 성향에 대해 확신을 느낀 한나라당이 훨씬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첨예한 갈등 구조 속에서 종종 몇 표 차이의 박빙승부를 볼 수 있는 한국정치 지형에서 지지표가 더 생긴다는 것은 쉽게 뿌리칠 수 있는 유혹이 아니다. 최근 대통령 선거에서도 17대 대선을 제외하면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자와 2위 득표자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 더구나 단 몇 표 차이로 승부가 갈리는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말 그대로 '한 표가 아쉬운' 판이다. 재외국민 240만 표가 단순한 선거권 보장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불공정 시비가 등장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재외국민은 재외선거인 등록신청을 한 이들만 투표할 수 있으므로, 일종의 '유권자 등록운동'을 펼칠 수 있는 재력과 조직을 가진 해외 단체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국내 후보의 득표율이 달라질 수 있다. 마치 낮은 투표율 속에서는 촘촘히 짜인 선거조직을 동원할 수 있는 기성정당의 당선율이 높아지는 것과 비슷하다.

게다가 공직선거법 개정안에서는 재외 선거권자를 대상으로 한 선거운동을 위해 국외에서 지출하는 비용은 선거비용으로 포함하지 않는다는 조항도 추가되었다. 따라서 소수정당이나 원외정당은 해외에서 기성 정당과 경쟁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해외 불법선거운동 시비를 접어두더라도 애초에 재력과 조직의 차이가 자신에게 유리한 유권자의 등록과 정보전달 상의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해외 영주권자의 국내 투표권 허용 논란

흔히 해외영주권자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에 대한 가장 흔한 비판은 납세와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지 않는 이들에게 권리만 보장한다는 것이다. 일면 타당하지만, 그들 또한 정치적 권리를 누려야 할 주체이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선거권 등 기본적인 정치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영주권을 가진 재외국민에게 투표권을 주어야 하는가'라는 기존의 프레임을 벗어나 새로운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바로 무엇이 '민주주의'에 부합하느냐에 대한 것이다.

재외국민이 투표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어떤 정치적 결정 과정에 개입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직선거법은 우리의 삶을 규정짓는 법을 제정하는 대표자를 선출하는 것이며, 국민투표권은 더욱 직접적으로 결정과정에 개입하게 한다.

저명한 독일 사회학자인 하버마스는 근대 법질서는 자신의 정당성을 오직 자기결정의 사상으로부터만 끌어올 수 있다고 했다. 시민들은 법의 수신자로 법에 종속되어 있지만, 동시에 항상 그 자신을 그 법의 저자로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떤 결정(법)에 영향을 받는 이들이, 그 결정을 스스로 만들도록 하는 것이 근대 법질서의 정당성이다.

따라서 대의제 민주주의의 원리에서도 정치적 대표자를 뽑는 선거권은 그 대표자의 결정에 따라 영향을 받는 이들이 포함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해외 영주권자의 경우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해외에 영주할 목적으로 살고 있는 이들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결정은 어디에서 이루어지며, 이제 그들이 투표해서 선출할 대표자의 결정은 누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가?

여기에서 법이나 중요한 결정을 만들어내는 과정과 이것이 규제하는 영향력의 범위 사이에 묘한 불일치가 발생한다. 해외 영주권자들은 그들이 선출한 대표들의 결정에서 받는 규제의 강도와 폭이 국내 거주자들보다 작으며, 그들에게 더 강한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결정은 다른 곳에서 이루어진다.

그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결정은 이곳 의회에서가 아니라 영주국 대표들에게서 이루어진다. 해외 영주권자들은 해당국가에 세금을 내며, 그 곳 법률가들과 정치인들의 결정에 따라 생활을 조직하고 영향을 받는다. 결국 해외 영주권자들이 투표권을 행사해야 할 곳은 대한민국 선거가 아니라 영주하고 있는 나라의 선거다.

타지에 영주하면서도 모국에 대한 정체성을 잊지 않으려 하는 재외국민의 심정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예를 들어보자.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기 고향에서 선거권을 행사하는 것이 옳은가, 자기 거주 지역에서 자기에게 영향을 미칠 결정을 내리는 정치인을 선거하는 것이 옳은가?

고향을 떠나 살고 있다고 해서 자기 고향에 대한 정체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역과 혈연적 연대성을 가진다는 것과 정치적 결정을 행사할 범위를 일치시킨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고향의 문제에 대해 어떤 연대감을 가지거나 특별한 행동을 할 수는 있지만, 정치행위는 자신 삶의 영역에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세계적 수준으로 확대시켜보아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고향인 재외국민은 한국민과 당연히 민족적, 국가적 정체성을 공유할 수 있다. 해외 원정 경기에 나선 한국 선수들을 응원하는 재외국민의 열광은 그런 민족적 정체성의 전형적인 표출이다. 그러나 그들의 삶을 규정짓는 정치적 대리자를 선택하는 것은 모국이 아닌 자기 삶의 영역에서 행사되어야 할 문제다. 따라서 미국 영주권자는 미국 의원 선거나 대통령 선거에 참여해야 하며, 다양한 국민투표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은 국내 선거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 우리 주민투표법에는 국내 거주 외국인의 투표권을 인정하고 있다. 주민투표법 제5조에는 "출입국관리 관계법령에 따라 대한민국에 계속 거주할 수 있는 자격(체류자격변경허가 또는 체류기간연장허가를 통하여 계속 거주할 수 있는 경우를 포함)을 갖춘 외국인으로서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정한 사람"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있다.

일정한 자격을 갖춘 국내 거주 외국인에게 지방선거 투표권을 부여하는 것은 유럽 여러 나라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최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도 이주노동자에게 영주권이 매우 제한적으로 부여되고 있고, 선거에 참여한 이들도 압도적 다수가 국내 화교들이다.

또한, 아직까지 외국인에게는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지 않다. 그들도 각자의 모국이 있지만, 그들 삶의 영역이 대한민국이라면 여기에서 정치적 권리가 행사되어야 한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또한 해외에 영주하는 우리 국민들처럼 민주주의를 향유할 권리가 있다.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과 선거권

이런 주장이 단지 '몽상'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에게,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재외국민에게 각각의 나라에서 투표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국제 규약을 이미 비준했다. 바로 '시민적및정치적권리에관한국제규약'(속칭 'B규약')이다.

세계 147개국이 비준한 이 국제 규약은 1966년 12월 16일 채택되었으며, 우리는 1990년 7월 10일부터 채택국에 가입했다. 이 규약의 제2조 1항에는 "이 규약의 각 당사국은 자국의 영토 내에 있으며, 그 관할권 하에 있는 모든 개인에 대하여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기타의 의견,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또는 기타의 신분 등에 의한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없이 이 규약에서 인정되는 권리들을 존중하고 확보할 것을 약속한다"고 되어 있다.

또한, 제25조에는 "모든 시민은 제2조에 규정하는 어떠한 차별이나 또는 불합리한 제한도 받지 아니하고 다음의 권리 및 기회를 가진다"고 명시하면서 다음 세 가지 제시하고 있다.

(a) 직접 또는 자유로이 선출한 대표자를 통하여 정치에 참여하는 것
(b) 보통, 평등 선거권에 따라 비밀투표에 의하여 행하여지고, 선거인의 의사의 자유로운 표명을 보장하는 진정한 정기적 선거에서 투표하거나 피선되는 것
(c) 일반적인 평등 조건하에 자국의 공무에 취임하는 것

다시 말해, B규약은 재외국민의 국내 투표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이들이 그 나라의 정치적 권리를 차별 없이 행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것이 '자기 결정성'을 핵심으로 하는 민주주의 원리에 보다 부합하는 방향이다.

우리가 일정한 자격을 갖춘 외국인에게 주민투표권을 인정하고 있듯이 대통령과 국회의원에 대한 선거권도 인정해야 하며, 해외 영주권자 역시 그 나라에서의 정치적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2007년 미국 보스턴에서도 영주권자에게 시 선거 투표권을 부여하는 문제를 두고 뜨거운 논란이 일어난 바 있다. 이처럼 영주권자는 해당국에서 시민권자와 동일한 법률적 규정을 받고 동일한 방식으로 세금을 납부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끊임없는 논쟁이 벌어질 것이다.

재외동포에게 마냥 축하인사 전할 수 없는 이유

우리가 무차별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과정에서 주권행사의 불평등을 끊임없이 경험했듯이, 국적과 주권, 영토와 민주주의의 문제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제기될 수 있는 의제다. 국민국가보다 상위의 통치 질서가 제대로 성립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즉 해외 영주권자들이 해당 국가에서 정치적 권리를 보장할 것을 강제할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각 영역에서의 투표'라는 주장이 허황된 것이라고 반박할 수는 있다.

그럼에도 이번 조치를 단순히 재외동포에 대한 기본권 보장이라는 의미로만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는 민주주의적 가치보다 정치적 이해타산이 더 깊숙이 개입되었기 때문이다. 재외국민의 선거권 보장 조치가 과연 우리 민주주의에 득이 될지, 해가 될지는 머지않아 드러나겠지만, 더 우려스러운 것은 설령 우려가 현실화된다 하더라도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그런 결과조차 '과거보다는 더 좋은 것'으로 몰아세우면서 현상 유지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런 사태가 벌어졌을 때, 우리는 국적과 상관 없이 해당 영토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개인에게 투표권을 주는 국제 청원운동을 펼치는 것 외에,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주민등록이 되어 있고 흠 잡을 곳 없는 유권자라 할지라도, 자기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으면 가차 없이 국가폭력을 휘두르는 정부 체제 아래에서 이 문제에 대한 민주적인 모색과 대안을 기대하는 것은 사치다.

모국에서나마 선거권을 획득한 재외동포들에게 마냥 축하의 인사만을 전하고 있을 수 없는 이유다. 새 정부 1년을 경험해보니, 우려가 현실화되는 일이 너무도 흔해졌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새사연 홈페이지(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 재외국민투표권 허용과 관련된 논쟁사는 <이철우, 2008, ‘인민주권의 영토적 경계’, 건국 60주년 기념 공동학회의 자료집>을 참고 했습니다.



태그:#재외국민, #투표권, #해외영주권자, #국내 거주 외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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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생활속 진보를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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