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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와 교육청은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이하 일제고사)를 세계의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 실시하고 있다고 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영국의 일제고사 유형이 우리의 모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말을 그대로 믿으면 미국에서도 우리와 같이 전국 일제고사가 모든 학교에, 모든 학생에게 치러지는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미국 교육부와 주 교육청 등을 통해 찾아본 결과 이 말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은 부시 정권 시기인 2001년 '낙제학생 방지법(NCLB)'을 도입한 이후 국가 수준의 일제고사(NAEP : National Assessment of Educational Progress)와 주 또는 교육구별 일제고사(Statewide and Districtwide Assessments)를 각 주에서 의무적으로 실시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은 교육부(Department of Education) 산하에 전국교육통계센터(National Center for Educational Statistics : NCES)와 전국평가관리위원회(National Assessment Governing Board : NAGB)를 두고 이들 기관을 중심으로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근거로 삼기 위해 원문을 그대로 옮겨와서 영어가 많이 있음을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차이1 : 미국의 국가 수준 일제 고사는 표집 평가(sample test)

Question : How many schools in my state have been selected?
In a typical state, 100 schools are selected for grade 4 assessment, and 100 schools for grade 8 assessment. These schools are selected to represent the demographic and geographic composition of the state.


질문 : 우리 주에서는 얼마나 많은 학교들이 (전국일제고사에 표집으로) 선택되었나?
일반적인 주에서는 4학년과 8학년 평가에 각 100개의 학교가 선택된다. 이 학교들은 그 주의 인종적, 지리적 구성을 대표하도록 선택된다.

(출처 : 미국 교육부 산하 NCES 홈페이지 NAEP FAQ)

분명 미국에는 학교에서 교사별로 실시하는 평가 외에 국가(nation), 주(state), 교육구(district) 단위의 일제고사가 있다. 그러나 미국의 국가 수준 일제고사(NAEP)는 한국에서처럼 모든 학교, 모든 학생이 의무적으로 참가하는 것이 아니라 표집(sample)으로 선택된 학교의 일부 학생만 참가하는 표집 평가라는 점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표집으로 선택된 학교가 아닌 일반 학교는 참가할 의무가 없으며 참가할 수도 없다. 10만개가 넘는 미국의 학교 중 각 주별로 100개씩이면 전국적으로 대략 5000개 정도의 학교가 참가하는 것으로 비율로 치면 5% 정도의 학교만 참가한다는 것이다.

차이2 : 샘플로 선택된 학교의 학생이라도 시험을 치지 않을 수 있다

Question 5. Who participates in NAEP?
A representative sample of the student population is selected to participate in the NAEP assessment, and each participating student takes only a small portion of the overall assessment. Student participation in NAEP is voluntary, and parents must be informed that students may decline to participate in NAEP in part or in its entirety.


질문5 : 누가 전국 일제고사에 참가하는가?
전체 학생 군 중에서 대표적인 샘플이 전국 일제고사에 참가하도록 선택되는데, 각각의 참가 학생들은 전체의 일부분만 시험을 친다. 전국 일제고사에 학생의 참가는 의무가 아니다.

(출처 : 플로리다주 교육청 홈페이지 NAEP 관련 FAQ 일부)

미국의 국가 수준 학업 성취도 평가에서 샘플로 선택된 학교는 반드시 시험에 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연방 재정 지원(title 1 education fund)을 받을 수 없다.

주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는 주별로 100개 정도의 학교가 샘플로 선택된다. 샘플로 선택된 학교들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반드시 시험에 응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의무는 학교에만 부과된 것이지 학생에게는 시험에 꼭 응해야 하는 의무가 없다.

샘플로 선택된 학생이라고 하더라도 얼마든지 시험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보지 않을 권리가 있으며 이로 인하여 그 학생은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는다. 정부에서는 학생의 참가율을 높이기 위하여 과학 도구(science kit)나 세계 지도(atlantis) 등을 공짜로 주기도 한다. 즉, 미국의 전국 일제고사는 학교는 의무(mandatory)이지만 학생은 선택(voluntary)이다.

차이3 : 개인 또는 학교 성적표 자체가 없으며 성적을 공개하면 형사 처벌

What NAEP Does—and Doesn't—Report
NAEP provides results on subject-matter achievement, instructional experiences, and school environment for populations of students (e.g., all fourth-graders) and groups within those populations (e.g., female students, Hispanic students). NAEP does not provide scores for individual students or schools, although state NAEP can report results by selected large urban districts.

전국 일제고사는 무엇을 보고하고, 무엇을 보고하지 않는가?
전국 일제고사는 학생군(예를 들면 4학년 학생 전체)과 그 학년 학생군의 일부 그룹(예를 들면 여학생, 히스패닉 학생 등)의 과목별 성취도, 교육적 경험, 그리고 학교 환경에 대한 결과를 제공해 준다. 전국 일제고사는 각 개별 학생 또는 학교에 대한 성적을 제공하지 않는다. 주 단위 일제고사의 경우 선택된 대도시 교육구의 성적을 보고할 수는 있다.

(출처 : 미국 교육부 산하 기관인 NCES 홈페이지 NAEP 해설 자료 일부)

Will my child's answers be kept confidential?
Yes. Your child's name will not be associated with his completed assessment booklet. After students complete the assessment, their names are physically removed from the booklets and are never linked to a specific booklet or a test score.
All government and contractor employees who work with NAEP data swear to uphold a confidentiality law. If any employee violates the confidentiality law by disclosing the identities of NAEP respondents, that person is subject to criminal penalties, including fines and prison terms

내 자녀의 답안지는 비밀인가?
예. 당신 자녀의 이름은 작성된 답안과 연관시키지 않는다. 학생들이 이 시험을 친 후에 그들의 이름은 답안지에서 제거되어 결코 특정 유인물이나 시험 점수와 연결시키지 않는다.
전국 일제고사 데이터로 작업하는 모든 정부나 계약 고용인들은 비밀법을 준수한다는 선서를 해야 한다. 만약 관계자가 전국 일제고사 참가 학생의 개인 신상을 공개함으로써 비밀법을 위반한다면, 그 사람은 벌금이나 징역형을 포함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출처 : 미국 교육부가 만든 The NAEP Guide : Question 3)

한국 중고등학교의 경우 일제고사를 친 학생들은 전국 평균, 지역 평균, 반평균, 자기 점수 등이 기록된 개별 성적표를 받는다. 그러나 미국의 국가 수준 학업 성취도 평가는 개별 학생이나 학교 평가를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시험에 참가한 학생들도 성적표를 받지 않는다. 샘플로 선택된 학교 역시 학교별 성적표가 없으며 다른 학교와 비교되지도 않는다.

시험을 친 직후 학생을 인식할 수 있는 이름을 답안지에서 삭제하고 결코 개인과 연결시키지 않는다. 학생이나 학교별로 성적을 매기는 것이 아니라 주별, 인종별, 성별, 학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 등의 요소에 따라서 성적 산출을 한다. 그래서 이 결과를 홈페이지 등을 통하여 공개한다.

학생과 학교, 학부모에게는 시험 성적이 제공되지 않으니 개인의 평균이나 석차 같은 것도 당연히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아무도 모른다. 미국에서는 개인 성적표를 제공하기는커녕 학생이나 학교를 인식할 수 있도록 시험 결과를 공개하는 것은 벌금이나 징역 등 형사 처벌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차이4 : 주별 일제고사는 의무이지만 학부모가 신청서를 내면 시험 면제

*Parent Exemption for STAR Program
Parents may initiate a request to have their student exempted from participating in all or a portion of the Standardized Testing and Reporting (STAR) Program. To exempt your student from participating in the STAR Program, you must submit your request in writing to the STAR test coordinator at your student's school.

*표준화 시험에 대한 학부모의 면제권
학부모는 자녀 학생이 표준화 시험(주 일제고사)의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해서 참가를 면제해 줄 것을 요구할 수 있다. 학생이 이 일제고사에서 면제 받기 위해서는 학부모는 반드시 그 학교의 시험 진행자에게 서면으로 시험 불참 요구서를 제출해야 한다.

(출처 : 캘리포니아주 교육청 홈페이지에 실린 주 일제고사 STAR 시행 지침 일부)

미국의 NCLB 법에 국가 수준의 일제고사인 NAEP 외에 주별로 일제고사(Statewide assessment)를 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시험은 시행하는 주별로 이름이 모두 다르다. 예를 들면 캘리포니아 주는 STAR(Standardized Testing and Reporting), 펜실베이니아 주는 PSSA(Pennsylvania System of School Assessment), 플로리다 주는 FCAT(Florida Comprehensive Assessment Test), 일리노이 주는 PSAE(Prairie State Achievement Examination) 등이다.

미국의 주 단위 일제고사는 샘플 시험이 아니라 전집 평가이다. 그러나 이 시험 역시 학부모가 일정 양식의 서면 신청서를 제출하면 학생은 그 시험에서 면제된다. 시험 면제를 위한 어떤 사유도 묻지 않도록 하고, 이를 증명할 필요도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차이5 : 일제고사 거부 권리를 반드시 안내하도록 학부모에게 편지를 보낸다

Student participation in NAEP is voluntary, and parents must be informed that students may decline to participate in NAEP in part or in its entirety. (출처 : 플로리다 주 교육청 홈페이지 답변 내용)
.................................................
We appreciate the participation of each student who is selected; however, participation in NAEP is voluntary. Students who do participate in NAEP will gain valuable test-taking experience that benefits our nation and the State of Florida. Parents who do not want their child to participate are requested to send written notification to [name] by [deadline for notification]. (출처 : 플로리다 교육청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는 학부모에게 보내는 편지 일부)

한국에서는 교사들이 학부모에게 일제고사에 불참할 수 있다는 내용의 학부모 편지를 보냈다는 이유로 서울에서 7명, 강원도에서 4명의 교사가 파면 해임을 당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이와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전국 일제고사를 실시할 때 반드시 학부모에게 이 시험에 참가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것을 공지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이를 학부모에게 공지하기 위해서 학부모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내도록 하고, 학생에게도 이런 권리를 명시한 편지를 보내도록 하고 있다. 플로리다 주 교육청 홈페이지는 이런 편지를 학부모에게 보내도록 명시하면서 편지의 견본까지 제공하고 있다.

한국과는 반대로 학부모의 선택권을 학부모에게 안내하지 않은 학교나 교사가 법을 어기는 셈이다.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미국의 일제고사

이명박 정부의 일제고사 모델이 되었다고 하는 미국의 전국 일제고사는 우리와 너무나 달랐다. 미국의 전국 일제고사는 전집 평가가 아닌 표집 평가다. 그리고 샘플로 선택된 학교의 학생도 학부모의 요구가 있으면 시험을 치지 않을 수 있다. 학생별, 학교별 성적 제공을 하지도 않으며 주, 인종, 성별,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 등의 지표에 의한 성적 통계만 산출한다. 학부모에게 홈페이지와 편지 등을 통하여 일제고사에 참여하지 않을 권리가 있음을 분명히 고지한다.

일부 주에서는 주 단위 일제고사(statewide assessment)를 통하여 학교별 성적을 공개하기도 하지만 이때에도 학생은 시험을 보지 않을 수 있다. 부시 정권은 NCLB를 시행하면서 학교 성적에 따라 지원을 차등하는 등 학교에도 경쟁을 도입했었다. 그러나 새로 임기를 시작한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는 교육에 경쟁을 지나치게 도입한 전국 일제고사와 같은 제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학생들과 학교로 하여금 일년 내내 규격화된 시험을 보도록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일제고사 체제를 완전히 개혁하겠다는 것인데 경쟁보다는 지원을 염두에 둔 평가를 시행하겠다"라는 교육 공약을 통하여 일제고사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을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이로써 부시 정부식의 미국 일제고사는 이제 존폐의 기로에 섰다. 세계적 추세라고 하면서 들여온 한국의 일제고사 도입 근거 자체가 사실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이제 이명박 정부와 서울시교육청은 일제고사와 교사 파면 해임의 근거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덧붙이는 글 | "다른 나라에도 일제고사가 있을까?" 기사에 대한 후속기사입니다. 일부 오해의 소지가 있어 미국의 전국 일제고사의 예를 더 자세하게 근거와 함께 분석한 글입니다.



태그:#일제고사, #미국, #NA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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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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