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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후 안산 문화예술의전당. 1년 중 평균 10회 정도만 매진된다는 공연장이 관객들로 가득 차고 있었다. 유명 가수의 단독 콘서트나 송년 음악회 등을 제외하고는 일반 공연에서의 매진은 드문 일이라 다소 이례적이었다. 1400여 좌석이 예매 시작 3~4일 만에 동 날 만큼 이날 예정된 공연은 이미 인기를 예고하고 있던 상태. 새해 첫 매진을 기록한 공연은 ‘2009 으랏차차 콘서트’였다.

 

이날 공연이 주목을 끈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가수 안치환씨를 비롯해 유니버셜 발레단과 시립 국악단 등의 출연진 면모도 면모지만, 관객들이 몰린 가장 큰 이유는 저렴한 관람료 때문. 평상시 같으면 2만~5만 원 정도의 관람료가 소요되는 공연이 이날만큼은 전 좌석 균일하게 단 돈 1000원이었다.

 

파격적인 관람료는 관객들을 유혹하기 충분한 조건이 됐다. 저렴한 수준을 넘어 무료에 가까운 공연에 사람들의 관심은 높았다. 가족 친구 이웃 등 주변 지인들이 함께 어울려 공연장을 찾았다. 평소 여건상 공연을 접하기 쉽지 않던 사람들도 대거 공연장으로 몰려 들었다. 천 원의 힘이었다. 문턱 낮춘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은 공연이 펼쳐질 때마다 뜨거운 박수로 호응했고, 공연에 몰입했다.

 

천 원짜리 공연이라 그저 그렇거나 부실한 내용이 아니었나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출연진들은 수준 높은 음악과 무용을 선보이며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을 충분히 만족시켰다. 뮤지컬 테마곡이 춤과 함께 무대를 장식했고, 북한에서 작곡된 관현악 아리랑이 국악으로 연주되며 삶의 애달픔을 표현했다.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내가 만일> <광야에서> 등을 이어 부른 가수 안치환씨는 관객들의 열띤 반응에 새로 발표한 신곡을 앵콜곡으로 부르며 관객들에게 화답했다. 발레단은 관객들을 무대로 끌어올려 어울림 무대를 만들어 냈다. 2시간여 가까이 이어진 멋진 공연에 관객들은 열광했고, 박수가 이어졌다. 저렴한 가격으로 볼 수 있던 알찬 공연에 다들 흡족해 하는 표정이었다.   

 

‘파이팅’ 대신 ‘으랏차차!’

 

이렇듯 수준 있는 공연의 관람료가 천 원이 된 것은 현재의 어려운 경제 사정 때문이다. ‘어려운 시대를 헤쳐 나가려는 사람들에게 문화를 통해 작은 힘을 주겠다’는 뜻이 이날 공연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것이 이날 천 원 공연의 주된 의미이자 특징이었다.

 

이와 관련, 이번 공연을 기획한 안산 문화 예술의 전당 측은 ‘극심한 경기침체로  꽁꽁 언 마음을 따뜻이 녹여보고자 준비한 공연’이라고 설명했다. 천 원으로 행복지수를 올리고, 천 원의 해피 바이러스가 따스함과 감동을 선사하고, 그래서 이름도 ‘으랏차차 콘서트!’. 희망을 노래하는 가수 안치환씨가 초청된 것은 이날 콘서트의 상징과 같은 것이었다.

 

‘으랏차차’는 힘들 때마다 외치는 ‘파이팅’ 구호를 우리말로 표현한 것. ‘으랏차차 힘내자’는 의미다. 이 때문인 듯 사회를 맡은 로버트 할리씨는 관객들에게 “어려운 상황 힘내자”며 독려하고는 ‘파이팅’ 보다는 으랏차차! 구호를 주문했다. 이날 공연이 관객들에게 주고 싶은 메시지였다.

 

이날 공연은 정치 경제적으로 어려운 현실에서 문화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해 주고 있었다. 문화 예술계 또한 정부의 지원 예산이 축소되면서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지만,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힘을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 지자체 문화 실무 담당자들의 생각은 완장만을 연상시키는 국가 문화 책임자의 모습보다 나아 보였다.

 

으랏차차 콘서트를 기획한 안산 문화 예술의 전당 조경환 공연기획팀장은 천 원 공연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힘든 한해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기 때문에 문화 예술의 역할이 크다고 봅니다. 일본의 고베 대지진 때도 피해자들을 위한 위문 공연이 실의에 빠진 사람들이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합니다. 그만큼 문화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화가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힘이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어려운 시기, 문화가 활력을 찾게 해 주고 희망을 갖게 해 줬으면 한다는 바람이었다. 관람료 천 원은 그래서 나온 결과물이다. 적은 비용으로 큰 만족을 얻게 해 주고 싶은 마음으로 형식적인 비용만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 비용은 다른 의미 있는 일에 사용된다고 한다.

 

“이번 공연 수익금은 전액 문화 나누미 사업에 사용됩니다. 문화 나누미 사업은 경제적인 사유로 공연 관람이 어려운 이웃들이나 예술을 가까이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공연 티켓을 선물하는 일인데, 문화 소외계층에게 되돌려 주려는 것입니다.”

 

그는 “문화는 나눠야 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그래서 공연 수익 또한 문화소외계층을 위해 사용할 계획이라는 것. 이어 이날 공연에 “외국인노동자들과 사할린에서 이주해 온 동포들, 다문화 가정 및 청소업체 종사자 등이 많이 초청됐다”고 덧붙였다. 어려움을 이겨내자는 취지로 마련된 공연이기에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했다는 것이다. 천 원 공연을 생각하게 된 바탕이었다.

 

천원, 어려운 시기 활력과 희망을 찾기 바라는 마음

 

 

이 때문인 듯 이날 공연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다. 삼삼오오 무리지어 온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에서 문화 예술 공연장을 찾는 것은 처음이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공연 시작 전 로비에서 만난 자그리브씨(35)는 인도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 한국 온 지 1년 됐지만 이런 공연을 보러 온 적은 한번도 없다고 했다. “흥미 있을 것 같다”고 말한 그는 공연을 마치고 나와서는 너무 재밌었다면서 “베리 굿”을 연호했다. 

 

30여 명이 함께 온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은 “교회를 통해 초대권을 얻었다”고 말하고, “공연을 재밌게 봤다”면서 “이런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지역 주민들 또한 저렴한 공연에 만족스러움을 나타냈다. 경제적 부담 때문에 가족들이 함께 공연을 보기 힘든데, 저렴한 공연이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어 좋다는 반응이었다.

 

자녀들과 이웃에 사는 세가정과 함께 공연을 보러 왔다는 이철원씨는 “좋은 공연은 간간이 즐기는 편이지만 비용 때문에 아이들과 함께 가기 힘든 데, 이처럼 저렴한 공연은 온 가족과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며 “이런 공연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문화가 일상의 피곤함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고 활력을 얻는 데 좋은 역할을 하기에 저렴하게 볼 수 있는 공연이 많아지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이는 문화 소외계층의 시각도 마찬가지였다.

 

딸이 표를 구해줘 친구들과 오게 됐다는 60대 아주머니는 “이런 데 올 일이 없는데, 딸 덕분에 좋은 구경을 했다”며 “비싼 공연인 줄 알았는데 천 원밖에 안 한다고 해 편하게 보러왔다”고 말했다. “이런 공연이 있다면 동네 친구들과도 종종 보러 오고 싶다”고 덧붙였다.

 

천 원이 가져다 준 만족감이 대부분 크다는 표정들. 공연장을 나서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밝은 미소가 가득했다. 천 원이 안팎의 시름을 잠시 잊게 해 줄 만큼 해피 바이러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태그:#콘서트, #안산문예당, #안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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