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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북하게 쌓아 놓고 파는 부럼용 땅콩과 호두
 수북하게 쌓아 놓고 파는 부럼용 땅콩과 호두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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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낼 모레가 보름이잖아요? 정월대보름, 정월대보름도 모르세요?”
“아차! 그렇구나. 정말 낼 모레가 정원대보름이네, 집에 가서 마누라한테 오곡밥 해 달래야겠는걸.”

지난 토요일(2월 7일)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서 만난 서울 관악구 신림동 재래시장은 온통 나물 천지였다. 수북수북 쌓아놓은 나물들이 여간 풍성한 모습이 아니어서 “웬 나물천지냐”고 묻자 상인 아주머니가 그것도 모르느냐고 핀잔을 주는 것이었다.

“정월대보름이라고 오곡밥에 나물을 만들어 먹긴 하는 거야?”
“그럼, 우리 집에선 다른 건 몰라도 해마다 정월대보름이면 오곡밥과 대보름 나물은 빼먹는 법이 없어. 집에 가면 아마 나물 삶는 냄새가 진동할 것 같은데.”

걷는 일행에게 물으니 그의 집에선 정월 대보름 음식을 꼭 만들어 먹는다고 한다.

무우시래기
 무우시래기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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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거지, 명화나물,고구마순, 북한산 아주까리 잎
 우거지, 명화나물,고구마순, 북한산 아주까리 잎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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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대보름, 참 정다운 우리 민속명절이다. 그러나 보름달은 달마다 뜬다. 정월부터 섣달(12월)까지 둥근달이 두둥실 뜨는 보름이야 어느 달인들 없겠는가. 그러나 옛 도교에서는 정월 대보름을 상원(上元)이라 하여 7월 보름의 중원과 10월 보름 하원을 일컬어 삼원이라 하였는데, 정월 대보름 상원을 으뜸으로 여겼다.

정월대보름은 세시풍속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다양한 민속이 전해 내려온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호두나 땅콩, 잣 등 껍질이 단단한 마른 과일을 깨뜨려 먹는 부럼 깨기가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또 보름날 아침 아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 대답하면 “내 더위” 라고 말하여 더위를 파는 풍습도 전해진다. 마을의 풍물패가 집집마다 돌며 지신밟기를 행했고, 대보름 밤에 다리를 밟으면 일 년 동안 다리 병이 나지 않는다 하여 일부러 가까운 다리를 찾아가 다리 밟기를 하기도 했다.

나물과 야채
 나물과 야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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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동 재래시장 풍경
 신림동 재래시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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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놀이로는 줄다리기, 사자놀이, 고싸움놀이, 놋다리밟기, 나무조롱 쇠기, 봉죽놀이가 전해진다. 또 한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달집태우기를 하기도 했다. 달집 사르기라고도 하는 이 민속은 음력 정월 대보름날 농악대와 함께 달맞이를 할 때 주변을 밝게 하기 위해 마을사람들이 대나무로 기둥을 세운 위에 볏짚, 솔가지, 땔감 등으로 덮고 달이 뜨는 동쪽에 문을 내서 만든 달집을 불태우는 풍속이다.

달집 속에는 짚으로 달을 만들어 걸고, 달이 뜰 때 풍물을 치며 태웠다. 달집태우기는 쥐불놀이나 횃불싸움과 같이 불이 타오르는 발양력과 달이 점차 생장하는 생산력에 의탁한 민속놀이다.

이때 달집을 태워서 이것이 고루 잘 타오르면 풍년, 불이 도중에 꺼지면 흉년이고, 달집이 타면서 넘어지는 쪽의 마을이 풍년, 이웃마을과 경쟁하여 잘 타면 풍년이 들 것으로 점을 쳤다. 또 달집 속에 넣은 대나무가 불에 타면서 뚝딱! 뚝딱! 터지는 소리에 마을의 악귀들이 물러간다고 여겼다.

간장 된장담그기용 메주덩이들
 간장 된장담그기용 메주덩이들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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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땅콩과 볶은 땅콩
 생땅콩과 볶은 땅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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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월 대보름의 전통 풍속 중 지금까지 가장 잘 전해 내려오는 민속은 아무래도 오곡밥과 대보름 나물을 만들어 먹는 일일 것이다. 달집태우기나 쥐불놀이는 대도시에서는 거의 행해지기 어려운 민속이고 시골에서도 요즘은 보기 드문 민속놀이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서울관악구 신림동 재래시장에서 만난 나물천지의 모습처럼 오곡밥과 대보름나물, 그리고 부럼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지켜지고 있는 풍속인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시장 입구 조금 넓은 공터에는 부럼용 땅콩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오곡밥은 찹쌀, 찰수수, 팥, 차조, 콩을 섞어 지은 밥을 말한다. 마른 나물은 봄부터 가을까지 나오는 채소들을 말려 놓았던 것을 삶거나 데쳐서 만든 나물들을 말하는데 아홉 가지 나물을 아홉 번 이상 다른 사람의 집에서 각각 먹어야 그해 운이 좋다고 했다.

초봄의 미각을 자극하는 달래나물
 초봄의 미각을 자극하는 달래나물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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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긋한 냉이
 향긋한 냉이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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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야 그런 행운을 바라는 마음으로 오곡밥이나 나물을 만들어 먹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보름음식으로 많이 만들어 먹는다. 나물 종류로는 무시래기 나물을 비롯하여 아주까리 잎, 토란 줄기, 고구마 잎줄기, 취나물, 말린 호박과 무말랭이 등 다양하다. 그런데 이 오곡밥과 아홉 가지 나물을 성분 분석을 해보면 요즘 각광받는 건강식품으로도 손색이 없다고 하니 그저 막연한 풍속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신림동 시장골목엔 나물이나 오곡밥 재료만 풍성한 것이 아니었다. 나물들 옆에는 어김없이 냉이며 달래 등 봄나물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면 향긋한 봄 냄새가 물씬 풍길 것 같은 봄나물들도 대보름 시절 음식에 뒤질세라 상큼한 모습을 선보이고 있었다.

상큼한 돌나물
 상큼한 돌나물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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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을 전후하여 휘몰아쳤던 추위도 가시고 봄날처럼 따스한 기온 속에 맞은 정월대보름. 오곡밥이며 나물들이 풍성한 가운데 향긋한 봄나물들까지 가세한 재래시장 풍경이 우리 민족 오랜 전통의 세시풍속을 일깨우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정월대보름, #오곡밥, #달집태우기, #이승철, #민속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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