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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제 다음날 마을 회관에는 산신제 음식을 먹는 잔치가 열렸다. 산신제를 지낸 음식을 먹으면 1년 동안 재수가 좋다는 풍속때문이기도 하지만, 산신제를 지냈던 사람들에게 마을 사람들이 위로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 위로 산신제 다음날 마을 회관에는 산신제 음식을 먹는 잔치가 열렸다. 산신제를 지낸 음식을 먹으면 1년 동안 재수가 좋다는 풍속때문이기도 하지만, 산신제를 지냈던 사람들에게 마을 사람들이 위로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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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입춘 다음날. 무슨 절기도 아니고 특별한 날도 아닌데 덕봉리(안성 양성면) 마을 어르신들이 하나둘 마을회관에 모인다. 마을회관이야 시골사람들에겐 사랑방이요, 행사장이요, 정보국인데 오늘은 무슨 일일까. 어르신들의 인상으로 봐서는 틀림없이 좋은 날이긴 한데. 궁금하다.

"아, 오늘이 말여. 바로 산신제 다음날 모이는 뒷풀이제. 산신제 지낸다고 수고한 사람들에게 위로를 하고 마을 사람들끼리 제사 지낸 음식을 서로 나눠 먹는 날이란 말여."

그렇다. 바로 오늘이 해마다 음력 정월달에 시행되는 마을 산신제를 지낸 다음날인 것이다. 그것도 자그마치 400년 동안이나 이어온 전통 연례행사였던 것이다. 산신제 지낸 음식을 먹으면 1년 내내 재수가 좋다는 미담과 함께 말이다.

26년간 안성 덕봉리 마을의 산신제 당주로 수고하고 있는 안정구 할아버지(77세)는 산신제 다음날 마을회관에서 그동안의 산신제 내력을 세세하게 말해주었다.
▲ 당주 26년간 안성 덕봉리 마을의 산신제 당주로 수고하고 있는 안정구 할아버지(77세)는 산신제 다음날 마을회관에서 그동안의 산신제 내력을 세세하게 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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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고성산(해발 298m, 안성 양성면 덕봉리) 정상에 올라가면 집채만한 바위가 있는디 거기에 '백운대(白雲臺)'라고 큼지막하게 파놓은 글씨가 있지. 거기 앞에서 선택된 마을 남자 8명이 올라가서 산신제를 지내는 겨. 아, 그기는 아무나 못 올라 가제. 산신제 당일에는 부정 탄다고 그 사람들 외에는 산 출입도 일체 못하게 하는 겨."

올해로 26년째 마을 산신제 당주로 수고하고 있는 안정구(77) 할아버지의 설명이다. 산신제를 하는 날짜를 잡는 데는 나름 원칙이 있다. 음력 정월 초하루에서 보름 사이에 '산신 하강일'을 택한다는 것이다. '산신 하강일'은 역학 책력에 나와 있는 날짜를 참고로 하고 일진을 살펴 정한다고. 만일 날짜가 잡혔어도 마을에서 어느 집에 초상이 나면 날짜를 다시 잡고, 모든 절차를 다시 해야 한단다.

올해는 2월 4일 입춘 날짜가 산신이 하강하는 날로 잡혔다. 이날이 마을 산신제를 하는 날이다. 이날에 산신제를 하러 산에 올라가는 사람은 지관 6명, 축관 1명, 당주 1명 등 도합 8명이다. 40대부터 70대까지의 남성들이다.

산신제를 드리러 가는 사람들은 고성산 입구에서 추운 겨울에도 불구하고 모두 발가벗고 찬물로 목욕재개를 한다.
▲ 목욕 재개 산신제를 드리러 가는 사람들은 고성산 입구에서 추운 겨울에도 불구하고 모두 발가벗고 찬물로 목욕재개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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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엔 산신제가 3일 동안 진행 되었제. 그때는 산신제 지내러 올라간 남정네들은 3일 동안 그 자리에서 꼬박 3일 내내 정성을 다한 겨. 소금, 간장, 김, 밥 등만 먹고 말여. 기름기 있는 음식이나 화려한 음식은 못 먹었던 게지. 요즘은 하루만 하는 겨. 다들 바쁘고 힘든 게."

하루만 한다고 해서 정성이 약해진 것은 아니다. 산신제 하러 올라가기로 선택된 남자들은 적어도 3일 전부터 부부잠자리를 해서는 안 된다. 담배나 술 등을 함부로 해서도 안 되고, 상가 집이나 잔치 집에 가서도 안 된다. 이(사람 몸에 기생하는 벌레)나 기타 동물을 잡는 등의 피를 보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산신제 당일에는 산에 올라가 발가벗고 찬물로 목욕 재개를 해야 하고 몸에 걸치는 모든 것(신발, 옷)들은 반드시 새것이어야 한다는 등의 엄격한 규율이 지금도 지켜지고 있다. 모두 심신을 정갈하게 하고 정성을 다한다는 의미다.

당일 아침 일찍 출발하여 날이 샐 무렵, 아직은 어둑할 때 산신제가 시작된다. 축관이 산신제를 진행하고 지관이 보조를 한다. 지관은 가져간 축문(마을 대대로 내려오는 산신제 글귀)을 읽는다. 축문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산신제에 참가한 지관들이 정성을 다해 절을 하고 있다.
▲ 절 산신제에 참가한 지관들이 정성을 다해 절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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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들이 마을의 안녕을 비는 마음으로 축문 등을 태우고 있다. 아주 성스러운 종교 의식처럼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 불 참가자들이 마을의 안녕을 비는 마음으로 축문 등을 태우고 있다. 아주 성스러운 종교 의식처럼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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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이 정성을 들여 음식을 준비해 이렇게 산신제를 지내니 산신께서는 1년 동안 우리 마을을 무탈하게 지켜주소서."

그런데 산신제를 지내는  자연 바위에 새겨진 '백운대(白雲臺)'라는 글귀는 참으로 신기하다. 집채만한 바위에 누가 새겼는지도 신기한 일이지만, 반입체로 새겨진 글귀의 깊이와 그 크기가 사뭇 놀라울 정도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산신제를 지내던 조상 중에서 누가 새겼을 거라 추측하고 있지만, 여전히 미스터리다. 집채만한 바위에 새겨져 있는 글귀는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에 소개되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제. 박정희 대통령 시절, 간첩이 숨어 들 수 있는 곳이라 하여 당사(산신제를 준비하는 집)를 헐어 버렸는디. 아 그날 바로 마을 아이들 3명이 물에 빠지는 등의 사고로 죽어 버린 겨. 사실 옛날엔 당사에 산신제가 다가오던 날이면 큰 호랑이가 다녀가고 했었는 디. 눈 오는 날엔 호랑이 발자국도 있었응께."

산신제를 드리는 바위에는 누가 언제 새겼는지 모르는 '백운대'라는 글귀가 있다. 아마도 산신제를 드리던 조상 중에서 새긴 걸로 마을 사람들은 추정하고 있다.
▲ 백운대 산신제를 드리는 바위에는 누가 언제 새겼는지 모르는 '백운대'라는 글귀가 있다. 아마도 산신제를 드리던 조상 중에서 새긴 걸로 마을 사람들은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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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째 대대로 내려오는 축문이다. 내용은 "마을 사람들이 정성을 들여 음식을 해서 이렇게 정성을 바치오니 일년 동안 마을 사람들과 마을을 지켜주소서"라는 것이다. 한자 중에서 옥편에도 나오지 않는 한자 등이 있어서 모두 한글로 번역해 토를 달아 놓았다.
▲ 축문 400년째 대대로 내려오는 축문이다. 내용은 "마을 사람들이 정성을 들여 음식을 해서 이렇게 정성을 바치오니 일년 동안 마을 사람들과 마을을 지켜주소서"라는 것이다. 한자 중에서 옥편에도 나오지 않는 한자 등이 있어서 모두 한글로 번역해 토를 달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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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주 안정구 할아버지의 설명은 등골을 오싹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렇다고 그런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고. 한국전쟁 1·4후퇴 때 있었던 일이다. 아직 음력으로 정월이 되지는 않았지만, 마을 사람들이 서둘러서 산신제를 지내고 피난길에 올랐다는 것. 신기하게도 마을 사람들 중 한사람도 전쟁 통에 피해를 보거나 희생당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의 사실 진위 여부를 떠나서 산신제는 이미 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굳은 신앙과 같은 행사가 됐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마을을 잘 지켜 내겠다는 의지로 마을 사람들이 한 마음이 되어 정성스럽게 하나의 일을 치러낸 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사람이 정성을 들이면 하늘도 감동하지 않고는 못 배길 터.

"400년이나 이어져 오는 마을 미풍양속인데, 정부차원에서라도 지원이 있었으면 좋겄어. 그라고 산신제하러 올라가는 길이 너무 험하고 불편한 디 길도 좀 고쳐 주면 더 좋제."

이날 제사를 함께 지냈던 사람들 8명 중 5명이 사진을 함께 찍었다.
▲ 참가자 이날 제사를 함께 지냈던 사람들 8명 중 5명이 사진을 함께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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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마을회관에 모인 어르신들의 이구동성이다. 하여튼 옛것이 자꾸만 사라져 가는 요즘, 마을이 존재하는 한 계속 이어가겠다는 어르신들의 주문은 과연 헛된 것일까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산신제 다음 날인 5일, 안성 덕봉리 마을 회관에서 이루어졌다. 위의 산신제 사진들은 관계자외 출입금지라는 금기사항 때문에 산신제 진행자에게 부탁해서 입수한 사진들이다.



태그:#산신제, #안성 덕봉리, #고성산 산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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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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