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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통신시장의 판도를 바꿔놓을 KT와 KTF 합병을 둘러싼 논란이 좀처럼 가시질 않고 있습니다. KT를 뺀 나머지 거의 모든 통신업체들이 합병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4일 공정거래위원회는 KT 합병에 대한 기업결합심사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KT 합병을 둘러싼 논란과 쟁점을 두 차례에 걸쳐 알아봅니다. <편집자말>

 

지난해 12월 초 SK브로드밴드(옛 하나로텔레콤) 관계자가 KT쪽에 전화를 걸었다. 서울 세종로 방송통신위원회 건물에 인터넷TV(IPTV)를 개통하기 위한 협조 요청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최시중 방통위원장실에 IPTV를 설치하기 위해 KT의 광케이블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IPTV는 초고속인터넷망을 기반으로 한 차세대 멀티미디어서비스. 지난해 12월 1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IPTV 상용서비스 출범기념식엔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최시중 위원장의 방에 IPTV가 설치된 것도 이즈음이었다. 하지만 KT를 제외하고 SK브로드밴드와 LG데이콤 등은 직접 광케이블을 깔 수 없었다.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케이블을) 직접 깔기 위해선 KT가 가지고 있는 설비를 통해서만 가능한데 그럴 수 없었다"면서 "이 때문에 KT의 광케이블을 빌려서라도 개통하려고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화로 구두요청을 한 뒤, 얼마 안 돼 KT쪽에서 광케이블 사용을 허락해서 매우 놀랐다"면서 "만약 (방통)위원장실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 일반 고객들을 위한 것이었다면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방통위 기자실에서 메가TV만 볼 수 있는 까닭

 

KT쪽에선 말도 안 되는 주장일뿐이라고 일축했다. KT 관계자는 "현행법상 (2004년 이후 만들어진) 광케이블의 경우 다른 기업에 (통신망) 설비를 제공할 의무가 없다"면서 "그럼에도 서로 협의해 계약을 맺었고, 광케이블을 제공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여하튼 최시중 방통위원장 사무실에는 KT의 메가TV를 비롯해 SK브로드밴드의 브로드엔TV(옛 하나TV), LG데이콤의 myLGTV 등 3개 회사의 IPTV가 서비스되고 있다. 하지만 이곳뿐이다.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작년에 방통위 기자실에도 IPTV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했지만, KT쪽에서 (설비임대 요청을) 거부하는 바람에 못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방통위 기자실에는 KT쪽에서 제공한 메가TV만 설치돼 있다. 이에 KT 관계자는 "SK쪽에서 (방통위) 기자실에 초고속망 서비스를 위한 설비임대 요청을 받은 바 없다"고 잘라 말했다.

 

KT가 가지고 있는 각종 통신설비 이용을 둘러싼 업체간 시비는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었다. 전국에 걸쳐 촘촘히 깔려 있는 KT의 각종 통신설비로 인해 후발 사업자들이 공정한 경쟁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특히 KT가 KTF와 합병을 공식선언하자, SK 등 다른 통신업체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여기엔 과거 공기업 시절 사실상 국민세금으로 만들어진 각종 통신망 등 필수설비를 독점적으로 지배한 KT와 향후 통신시장에서 경쟁을 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

 

국민세금으로 만든 통신망을 둘러싼 '독점' 논쟁

 

그동안 자체적으로 수조 원을 들여가며 통신망을 깔았지만, KT를 따라잡기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SK브로드밴드가 옛 하나로텔레콤 때부터 10여 년 동안 통신망에 5조원 넘게 투자했지만 KT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때문에 한편으론 망 건설을 포기하고, KT쪽에 돈을 내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역시 만만치 않다. KT쪽에 필수설비이용 신청을 하더라도 대부분 거절당하기 일쑤라는 것이다. 이래저래 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

 

SK텔레콤은 최근 공정위에 낸 의견서에서 "KT의 시장지배력은 민영화 이전 국영 독점시절에 대부분 형성된 것"이라며 "이는 다른 경쟁사업자들이 경제적으로, 물리적으로 복제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통신산업 특성상 결국 대부분의 통화는 시내전화 가입자망으로 연결되는 것은 필수"라며 "KT가 시내전화가입자망의 90% 이상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쟁업체들은 KT쪽에 엄청난 접속료를 계속 내야만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KT가 필수설비를 독점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다른 사업자들에겐 요금인상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며, 결국 시장에서 사업자간 공정경쟁을 무력화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필수설비 KT에서 분리해야" VS. "합병의미 퇴색해 불가"

 

따라서 일부에선 합병 조건으로 필수설비를 KT로부터 따로 떼어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를 통해 필수통신망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활용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물론 KT의 견해는 정반대다. 공기업 시절에 만들어진 통신망에 대해선, 민영화 당시 정부에 이미 모든 대가를 지불하고 받은 정당한 시설이라는 주장이다. 아울러 이미 현행 규정상 필수설비를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게 돼 있다는 점과 향후 통신환경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기존의 통신망을 통한 경쟁환경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KT 관계자는 "이미 제도적으로 다른 사업자들도 충분히 기존 설비를 사용할수 있도록 돼 있고, 다른 업체들의 광케이블망 건설 등으로 KT의 독점성은 크게 약화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오히려 후발 사업자들이 정당한 절차와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KT의 설비를 무단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필수 설비망 분리에 대해서도, KT는 "해외에서도 유무선 사업자 합병 시 가입자망 분리를 인가한 사례가 없다"면서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SK텔레콤 등에선 영국의 브리티시텔레콤(BT)의 사례를 들면서, 필수설비망의 구조분리는 글로벌 트렌드라고 반박하고 있다.

 

KT-KTF 합병을 심사 중인 공정거래위원회도 필수설비의 독점성을 둘러싼 부분에 대해 심도 있는 검토작업에 들어간 상태다. 공정위 관계자는 "KT가 가지고 있는 필수설비가 기업간 경쟁을 제한할 수 있는 요인이 되는지 여부가 중요하다"면서 "여러 가지 가능성과 사례를 검토하고,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KT 합병과 통신소비자들 손익은?... 비용 증가 VS. 다양한 상품 경험

 

KT의 필수 설비망을 둘러싼 독점 논란 이외에도 이번 합병을 둘러싼 논쟁은 여전하다. 무엇보다 이번 합병이 통신 소비자들의 손익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도 중요하다.

 

특정 업체로 시장 쏠림 현상이 더욱 커져, 경쟁사업자들의 퇴출로 이어지고 결국 통신소비자들의 비용부담 상승 등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이 거세다.

 

통신업계에서도 시내전화 등 유선통신시장에서 사실상 독점적 지배력을 가지고 있는 KT가 대대적인 마케팅으로 향후 이동통신 등 무선시장에서도 지배력을 크게 확대할 것으로 보고 있다.

 

1998년 KT가 초고속인터넷시장에 진출한 지 1년 만에 시장점유율 43.9%를 기록해 단숨에 시장 선두로 올라선 일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전국에 걸친 유선네트워크를 통해 KT의 메가패스는 빠르게 시장을 장악해 갔다"면서 "결국 하나로텔레콤(현 SK브로드밴드)에 이어 2위를 달리던 두루넷은 재무상황이 크게 나빠지면서 하나로에 합병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정부도 1996년 KT의 이동통신시장 진출 당시 "유선전화시장에서 KT의 시장지배력이 무선시장으로 이전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KT는 KTF를 자회사로 설립해 이동전화시장에 진출해야만 했다.

 

SK텔레콤은 최근 공정위에 낸 의견서에서 "KT가 유선시장 독점지배를 통해 이동통신시장에서 각종 결합상품을 내놓을 경우, 업체간 공정경쟁에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KT로 시장 쏠림은 더욱 커질 것이고, 특정 업체의 시장 지배 강화는 통신소비자들에게도 비용부담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이 이들 주장이다.

 

KT의 반박도 만만치 않다. KTF와 합병하더라도, 유선의 시장지배력이 무선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대적인 자금동원을 통한 마케팅 경쟁도 어렵다는 태도다.

 

오히려 자금력 측면에선 통합 KT보다 SK 통신그룹이 훨씬 앞선다는 것이다. 실제 작년말 기준 영업이익만 따져도 SKT는 2조599억원을 기록한 반면, KT는 KTF와 합쳐도 1조5680억원 수준이다.

 

KT 관계자는 "SKT가 오히려 지난 5년 동안 마케팅 비용으로 10조원이 넘는 돈을 써가며 불필요한 경쟁을 주도해왔다"면서 "막대한 이윤을 바탕으로 과당 경쟁을 이끈 업체가 '마케팅 경쟁 과열' 주장하는 것은 자기모순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유선시장의 지배력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지배력이 무선시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것은 기우에 불과하다"면서 "합병을 통해 새로운 유무선 신규서비스를 선보여 소비자들에게 더 값싸고, 질좋은 통신환경을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태그:#KT 합병, #최시중, #IPTV, #방송통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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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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