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6일 오후 태백시 삼방동에서 만난 김동석 할머니. 식수차가 오면 물을 받기 위해 빈 페트병 3대를 오른 손에 꼭 쥐고 있다.
 6일 오후 태백시 삼방동에서 만난 김동석 할머니. 식수차가 오면 물을 받기 위해 빈 페트병 3대를 오른 손에 꼭 쥐고 있다.
ⓒ 김환

관련사진보기


6일 오후 4시 30분 강원도 태백시 삼방동 골목길. 경사진 언덕 위로 자주색 겨울옷을 걸친 할머니가 힘겹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왼손에는 약봉지와 가방이 들려 있고, 오른손에는 1.5ℓ짜리 빈 페트병 3개가 꼭 쥐어져 있었다.

허리병으로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라는 김동석(73) 할머니는 빈 페트병의 용도를 묻자 "내일 식수차가 오면 먹을 물을 담아와야지"라고 대답했다. 김씨를 따라 들어선 집 마당에는 물이 담긴 작은 바가지가 하늘을 향해 놓여 있었다. "웬 바가지냐"는 질문에 "빗물이라도 받으려고 내놨다"는 답이 돌아왔다.

"여기는 물이 한 방울도 안 나와. 마을 입구는 조금이나마 나오기라도 하는데…. 엊그제 비가 조금 오길래 그거라도 받아 두려고 놔둔 거야. 비가 얼마 오지 않아 다 차지도 않았어. 집안에는 바가지 더 많아."

김씨가 힘겹게 넘어서는 문턱 안쪽 방에는 크고 작은 바가지들이 놓여 있었다. 모두 다 집 근처 우물에서 길어왔다 한다. 이 우물은 수돗물 공급으로 폐쇄됐다가, 최근 가뭄으로 다시 열렸다. 하지만 마실 수 있을 만큼 위생적이지 않다. 그래도 김씨 같은 노인들에게는 하나 밖에 없는 생명수인 셈이다.

"식수를 받으려면 내일까지 기다려야 해요. 내가 받아서 집까지 들고 올 수 있는 물은 겨우 1.5ℓ 한병 밖에 안 돼…. 먹는 물은 항상 부족하지만, 기다려야지 뭐 어쩌겠어. 내일 오전에 물 받으러 저기 아래까지 가면 식수를 준대요. 그래서 오다가 아랫집 할머니한테 빈 물통(페트병) 얻어왔지. 근데 아래까지 내려갈 수 있을까 몰라. 허리가 아파서 날마다 물도 떠다 먹지 못하고 있었다니까."

김씨는 주섬주섬 약봉지를 꺼내 한 입 털어 넣은 뒤 우물에서 떠 온 물로 삼켰다.

"이 마을은 대부분 혼자 사는 노인들이고, 다들 몸이 좋지 않아 병 하나씩은 갖고 있어. 우리 같은 노인네들에게 일주일에 물 몇 통만 올려다주면 얼마나 좋을까."

김 할머니 집안에는 물이 담겨 있는 양동이가 한켠을 차지했다.
 김 할머니 집안에는 물이 담겨 있는 양동이가 한켠을 차지했다.
ⓒ 김환

관련사진보기


가뭄으로 다시 열린 우물. 식수로 사용하기에 부적합하지만, 노인들에겐 하나 남은 생명수다.
 가뭄으로 다시 열린 우물. 식수로 사용하기에 부적합하지만, 노인들에겐 하나 남은 생명수다.
ⓒ 김환

관련사진보기


노인 대부분인 고지대 주민들... "우물물 길어 겨우 연명"

강원도 태백 시민들은 '23년래 최악의 가뭄'으로 고통을 겪고 있지만, 낮은 지대에 살고 있는 젊은 사람들은 그래도 상황이 좀 나은 편이다. 평균 해발 650m 보다 더 높은 곳에 사는 가난하고 힘없는 노인들은 하루 3시간 나오는 급수마저 받지 못해 더 큰 고통을 겪고 있다.

고지대 주민들이 낮은 수압 때문에 제한급수도 받지 못하자 태백시는 5t 용량의 대형 물탱크를 곳곳에 설치했다. 매일 급수차를 보내 물을 채워놓지만, 노인들에겐 이마저도 힘겹다. 대부분 70세를 넘긴 노인들에겐 양동이나 페트병으로 물을 떠서 집까지 나르는 것도 이만저만한 일이 아니다.

태백시 통계에 따르면 5만여 명에 달하는 시민 중 총 1650세대 3250명의 고지대 주민들이 전혀 급수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6일자 <겨울가뭄일일보고>). 김씨가 살고 있는 삼방동도 그런 곳 중 하나다. 재개발로 철거 예정인 이 동네는 50여 가구가 옹기종기 살고 있다. 대부분 70대 노인들이다.

남편과 단 둘이 산다는 윤순녀(78)씨. 윤씨 집 앞마당에는 물이 꽉 차 있는 물통 5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어디서 가져 온 것이냐"고 묻자 역시 "우물물"이라고 답했다.

"우리 할배가 집 바로 옆 우물에서 퍼온 거래요. 우물도 깊고 물도 많아요. 수질요? 저도 모르죠. 먹으면 안 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마을 입구까지 물 받으러 갈 힘은 없고…."

하루 일과 중 가장 중요한 게 '물 뜨러 다니는 일'이 돼 버린 윤 노인은 말끝을 흐렸다.

삼방동 고지대에 사는 김씨 할머니가 수도꼭지를 틀어 보이고 있다.
 삼방동 고지대에 사는 김씨 할머니가 수도꼭지를 틀어 보이고 있다.
ⓒ 김영균

관련사진보기

시청에서 제공한 물탱크와 가까운 곳에 사는 노인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삼방4길의 김아무개(76) 할머니는 "이게 사람 할 짓이 아니시더"라고 말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시에서 2~3일에 한번씩 2병씩 생수(1.5ℓ)를 갖다 주는데 이틀을 못 먹어요. 빨래도 작은 것은 물 받아 놓고 하이타이 담궜다가 손빨래를 하는데, 큰 빨래는 하지도 못해…. 세탁기도 물이 없으니까 돌아가지를 않아요. 그나마 오전 8시 20분쯤 되면 수돗물이 졸졸졸 나오기는 하는데, 워낙 가늘게 나와서 쓰지도 못해요. 받은 물은 (침전물을) 가라앉혀서 써야 하고."

김씨는 보란 듯이 수도꼭지를 틀어 보였다. 수도꼭지가 오른쪽으로 다 돌아가도록 물은 단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다. 땅 속에 묻힌 수도관부터 말라버린 듯했다.

"물탱크에 물이 차 있고, 시에서도 물을 자주 공급해주는데, 할머니들 나이가 많아서 물 바께스(양동이) 들지도 못해…. 가뭄 들어도, 물이 이렇게 줄기는 생전 처음이라."

할아버지와 손자, 세 식구가 살고 있는 집은 삼방동 딴 가옥에 비해 비교적 깨끗했지만, 수도가 끊긴 뒤로는 애써 설치한 수세식 화장실도 무용지물이 됐다.

"물이 안 나와서 집 화장실은 쓰지도 못해요. 저 아래 공동화장실(할머니가 손으로 가리킨 곳은 약 200m 언덕 아래에 공동상가다) 갔다가 오고…. 노인들이 화장실 한 번 가려고 저 길을 걸어 내려갔다 오는 거야."

"시청에서 힘없는 노인들한테 물 좀 갖다 주면 좋겠네"

김씨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50대 중반의 한 아주머니가 물탱크 앞에 양동이를 들고 나오는 게 보였다.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물을 받아 밖에서 칼과 도마를 씻고 있었다.

"물이 안 나오니까…. 생선 손질하고 설거지하러 나왔지. 날도 추운데 이게 무슨 꼴이야. 우리집은 심야전기를 써서 물만 나오면 온수가 쏟아지는데, 지금 그거 아무 소용없어."

아주머니의 말은 푸념으로 이어졌다.

"내 딸이 어린이집 선생인데, 집에서 씻을 수가 없으니까 아침 저녁으로 밖에서 씻고 출근하고, 씻고 퇴근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거 보통 일이 아니래요. 내가 여기(삼방동) 산 지 38년인데, 지금이 최고로 어려운 것 같애."

대화를 하면서도 부지런히 칼과 도마를 씻던 아주머니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마침 다른 노인 한 분이 페트병으로 물을 받아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우리집은 그래도 괜찮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어른이 우리 옆집 할어버진데, 나이가 78살이야. 할머니는 당뇨병 앓고 있어 누워 있고…. 여든 다 된 할아버지가 매일 페트병으로 3개씩 물을 떠다가 나르고 있어. 시에서는 이런 일을 알고나 있는지 몰라. 힘 없는 노인네들 위해서 물 좀 갖다 주면 얼마나 좋아."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노인을 안타깝게 쳐다보던 그녀도 돌아섰다.

"빨리 비가 와야지. 이게 사람 사는 거야?"


태그:#가뭄, #태백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1년 오마이뉴스 입사 후 사회부, 정치부, 경제부, 편집부를 거쳐 정치팀장, 사회 2팀장으로 일했다. 지난 2006년 군 의료체계 문제점을 고발한 고 노충국 병장 사망 사건 연속 보도로 언론인권재단이 주는 언론인권상 본상, 인터넷기자협회 올해의 보도 대상 등을 받았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