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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의 삶은 무엇 위해 사는 것일까. 우스개 소리처럼 먹기 위해 사는 것일까. 살기 위해 먹는 것일까. 날마다 숨을 쉬듯이 살아가는 생활 속에 무엇을 발견하면 살아있는 기쁨이 배가 될까. 문득 삶 속에서 모든 것이 변해도, 항상 그 자리에 있는 동네의 낡은 건물들도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신뢰는 주는 기쁨이 있는 듯하다.
 
임어당의 <생활의 발견>에 나오는 말처럼 "인생이라는 것 결국 먹고 자고, 친구들과 모였다가 헤어지고, 친목회나 송별연을 베풀고 눈물을 흘리고 웃고, 2주일에 한 번씩 이발을 하고, 화분의 화초에 물을 주고, 이웃 사람이 지붕에서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그런 일로 날을 보내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우리의 단순한 생활과 달리 동네 주변은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그래서 문득 어느날 주위를 둘러보면 눈에 익었던 건물이 놀랍게 다른 건물로 바뀌어 있어, 그 변화된 거리 속에서 나도 모르게 고독감을 느끼기도 한다.
 
 
도시의 변화가 유달리 많은 해운대 시가지에 웬만한 낡은 건물은 뜯기고 고층 건물로 바뀌는데, 항상 그 자리에 있는, 30년 넘은 의성 쌀가게를 만나면 낡은 추억의 사진처럼 나에게 많은 것을 그리워하게 한다. 
 
해운대 장지천 근처 있는 의성 쌀가게는 쌀가게 간판을 달고 있지만, 쌀만 팔지는 않는다. 계란, 소금 등도 판다. 부부가 함께 장사를 하는데 배달이 없는 날은 아저씨가 몰고 다니는 스쿠터 한 대가 늘 대어져 있다. 아저씨가 배달 나가면 아주머니가 가게를 본다. 오래된 슬레이트 건물의 쌀가게 간판도 새시도 낡았지만, 아저씨 아주머니 인상은 후덕한 인상이다. 
 

 

구멍가게에 관한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하나 있다. 나는 고향이 밀양인데, 중학교를 부산에서 다니게 되어 학생인 막내 누나와 함께 자취를 했다. 그런데 막내 누나는 심부름을 주로 나한테 시켰다.

 

그러나 나는 어린 시절부터 돌아가신 어머니의 남아선호 사상 때문에 '남자애는 절대 부엌에 들어가서는 안된다'는 교육을 단단히 받고 자란 터라 막내 누나가 심부름 시킬 때마다 심하게 투덜거리며, 나중에 어머니에게 다 일러바칠 것이라고 위협을 주곤 했지만, 그러나 누나는 콧방귀를 뀌며, 쌀 심부름 연탄심부름은 물론 두부, 콩나물 사오는 잔심부름 등을 내게 시켰다.

 

그것도 어떨 때는 "너 쌀 한되만 외상 얻어와라" 하고 말할 때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내가 그 일을 어머니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우리의 가난한 자취살림 살이의 애로를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정말 요즘 같은 시대에는 동네 슈퍼에서 외상 사오기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때 그시절을 생각하면, 이웃과 이웃 간에 절대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외상이란 생활 습관은 나쁜 것이지만, 사람 사이 사람 사이 신뢰가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그리운 생활 풍습인 것이다. 

 

그 시절은 참 동네마다 연탄구멍가게, 쌀구멍가게, 문방구 구멍가게, 채소 구멍가게 줄지어 있었다. 그렇게 많던 구멍가게 다 어디 갔을까? 둘러보면 낡은 건물은 하룻밤 무섭게 새 건물로 들어선다. 새 건물은 분명 깨끗하고 편리한데 새 친구처럼 서먹하다. 

 

드르르 의성 쌀가게 문을 열고 들어선다. 그러나 아주머니도 아저씨도 다 배달 나가셨는지 오늘은 안 계신다. 한 5분 기다리다가 내일 다시 오리라 생각하며 되돌아 선다. 그러면서 일편 내일 오면 이 건물 사라지고 없는 것은 아닐까, 걱정된다. 그래서는 안되는데….


태그:#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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