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사장인 누나가 직원인 동생에게 일을 시키고 있다. 누나왈 " 시키는 재미가 쏠쏠한데."란다.
▲ 직원과 사장 사장인 누나가 직원인 동생에게 일을 시키고 있다. 누나왈 " 시키는 재미가 쏠쏠한데."란다.
ⓒ 송상호

관련사진보기


며칠 전부터 두 녀석이 시끄럽다. 자세히 들어보니 내용이 이렇다.

“누나, 고물 팔면 그 이윤에서 50%는 내게 줘.”
“아. 싫어. 그건 너무 많아.”
“그래도 우리가 올해 연말에 일본여행가기로 했잖아. 나 돈 모아야 돼.”
“나도 모아야 되거든. 그리고 나는 휴대폰 사용료도 내야 되거든.”

그러고 보니 둘이서 노사 간에 임금 협상을 하는 중이다. 그동안 누나(중3) 혼자서 친구랑 고물을 모아 팔았는데 이제는 동생과 함께 고물을 팔기로 한 것이다. 고물을 파는 것에 먼저 발을 들여 놓은 누나가 사장이고 뒤늦게 합류한 막둥이 아들(초3)이 직원인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임금이었다. 동생은 누나에게 고물 값 중 50%를 요구했고, 누나는 동생에게 그렇게는 못 준다는 것이다. 누나가 동생에게 제시한 금액은 30%라는 것. 며칠 동안 막둥이는 누나에게 30%보다 조금 더 올려달라고 협상 중이었던 게다.

이유인즉슨 올해 말에 ‘더아모의집’에서 일본으로 여행가기로 한 것 때문에 막둥이도 열심히 돈을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막둥이의 입장은 이렇다.

“누나는 나보다 용돈도 더 받는데 고물 값 받아서 50% 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그래야 나도 일본 여행 경비를 내 힘으로 모으지. 누나보다 용돈도 적은 내가 언제 돈을 다 모으겠냐.”

반면 누나의 입장은 이렇다.

“그 돈 받아도 휴대폰 사용료로 한 달에 2만원은 나가야 하는데. 너는 휴대폰도 사용하지 않는데 그렇게 필요하냐. 그리고 막말로 내가 사장이고 니가 직원인데 50%는 너무하지 않냐. 30%로 해주겠다. 됐냐.”

둘의 입장은 팽팽하다. 그래서 며칠 동안 임금협상이 결렬되어 시끄러웠던 것이다.

지금은 막둥이가 고물을 올려주고 누나가 정리를 하는 중이다. 둘이서 척척 손발이 맞다.
▲ 고물실기 지금은 막둥이가 고물을 올려주고 누나가 정리를 하는 중이다. 둘이서 척척 손발이 맞다.
ⓒ 송상호

관련사진보기


그러다가 오늘 막둥이가 개학하기 전날이라 고물을 팔기로 했다. 고물을 정리해서 팔기 전까지 임금 협상이 타결되어야 할텐데. 아니나 다를까. 막둥이가 서두른다. 자신의 임금 협상안을 타결해보려고 막판 안간힘을 쓴다. 사장이라고 가만히 앉아 있을쏘냐. 신경전이 팽팽하다.

이럴 때 중재하는 사람이 나서는 것은 수순일 터. 드디어 내가 둘 사이에서 중재에 나섰다. 30%를 준다는 사장과 50%를 달라는 직원 사이에 선 것이다. 그러면 40%로 하면 되지 않느냐는 중재안을 제시한다. 그래도 실랑이는 여전하다.

그러다가 고물 정리하기 10분 전에 극적으로 협상안이 타결된다.

“누나는 휴대폰 사용료도 내어야 하고, 중학생이라 용돈도 더 써야 하고, 일본여행 경비도 모아야 하니 돈을 많이 필요한 게 당연하지 않니?”
“그럼. 누나 말대로 할까?”
“그 대신 고물 값이 많이 나오면 보너스를 줄 게. 그러면 됐지?”
“그래. 그럼 좋아. 약속”

지금은 고물상 마당에서 누나 사장이 동생 직운에게 일당을 지급하는 중이다. 오늘 고물 값 65000원 중 약속한 30% 19500원과 보너스 4500원을 더한 24000원을 지급하는 중이다. 직원은 첫 임금이라 그저 좋다.
▲ 일당 지금은 고물상 마당에서 누나 사장이 동생 직운에게 일당을 지급하는 중이다. 오늘 고물 값 65000원 중 약속한 30% 19500원과 보너스 4500원을 더한 24000원을 지급하는 중이다. 직원은 첫 임금이라 그저 좋다.
ⓒ 송상호

관련사진보기


이렇게 극적으로 타결되고 나니 머뭇거릴 것도 없이 고물 정리에 나선다. 사실 그동안 누나가 휴대폰 사용료를 벌기 위해 고물을 정리해서 팔아왔던 것이다. 이제는 정식으로 누나가 사장이고, 동생은 직원이 된 것이다. 그리고 나는 운전기사다. 전부터 계속 운전기사였지만, 내겐 일당이 없다. 나는 소위 자원봉사자인 셈이다.

마당에 어지럽게 놓여 있는 고물들을 하나둘 정리하고 챙겨서 차에 싣는다. 박스들은 모두 일일이 칼로 따서 편다. 차곡차곡 쌓기 좋게 말이다.

그런데 사장이 직원에게 말한다.

“야, 저거 해. 야, 이거 해. 그건 그렇게 하면 안 되지.”

하루 볕이 무섭다고. 먼저 고물 사업을 시작한 사장이 직원에게 이래라저래라 시킨다. 직원은 시키는 대로 말도 잘 듣는다.

“야, 그거 시켜 먹는 재미가 쏠쏠한데.”

오늘 판 고물 값이다. 평소보다 훨씬 많이 나왔다. 그래서 막둥이도 누나도 기분이 좋을 수밖에.
▲ 고물 값 오늘 판 고물 값이다. 평소보다 훨씬 많이 나왔다. 그래서 막둥이도 누나도 기분이 좋을 수밖에.
ⓒ 송상호

관련사진보기


사장의 말이 기가 막힌다. 그러거나 말거나 직원은 열심이다. 그거 있지 않은가. 회사에 처음 갔을 때는 돈을 번다는 마음으로 쌩쌩하게 일을 잘한다는 것을. 그것을 일컬어 초심이라고 하지 않던가. 직원이 아직 초심의 상태이니 얼마나 말을 잘 들을까.

그렇게 고물을 정리하고 고물상으로 향한다. 고물상에 도착하니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었다. 고물 무게를 계수하고 나니 고물 값이 꽤 나왔다. 그동안 우리 집에 있던 연탄보일러를 고물로 팔아서인지 무게가 꽤 나왔기 때문이다. 고물 가격이 65000원이다. 사장과 직원이 올린 처음 성과치고는 짭짤하다. 막둥이는 그저 ‘싱글벙글’이다. 물론 누나도 마찬가지.

고물상 주인으로부터 고물 값을 받아 드디어 배분하는 시간이다. 65000원의 30%는 19500원. 오늘 일당은 19500원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당초 예상보다 고물 값이 더 나왔으니 약속한 게 있지 않던가.

“누나. 고물 값도 많이 나왔는데 어떡할 거야.”
“아이. 아까운데.”

그러다가 사장이 보너스를 제시한다. 4500원 더 얹어주기로. 그래서 직원이 받는 일당은 24000원이 되는 셈이다. 직원도 만족, 사장도 만족이다.

이렇게 받은 돈을 막둥이는 당장 은행에 입금했다. 천 원짜리는 사먹거나 용돈으로 사용하고 2만원만 저금하라는 나의 조언에도 막둥이는 전액을 모두 통장에 집어넣는다. 일본여행 경비를 모으겠다는 의지가 단단하다.

고물로 받은 24000원을 한푼도 쓰지 않고 막둥이는 통장에 입금한다. 일본여행 경비를 스스로 모아보려는 불타는 의지때문이다.
▲ 입금 중 고물로 받은 24000원을 한푼도 쓰지 않고 막둥이는 통장에 입금한다. 일본여행 경비를 스스로 모아보려는 불타는 의지때문이다.
ⓒ 송상호

관련사진보기


이렇게 누나 사장과 동생 직원이 극적으로 임금협상을 타결했을 뿐만 아니라 둘이서 나란히 사업도 잘 이끌어 낸 것이다. 오늘은 우리 집 노사 간에 임금협상이 타결된 기쁜 날이다.

덧붙이는 글 | '더아모의집'은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의 집'이라는 뜻으로 송상호가 열어가는 집의 이름이다. 현재 안성 금광면 시골 마을 흙집에서 마을 아이들과 오손도손 재미나게 살아가고 있으며, 2008년 12월에 인물과사상사를 통해 '문명 패러독스'를 출간했다. 홈페이지는 http://cafe.daum.net/duamo 이다.



태그:#고물 팔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