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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이 지나고 정월 대보름이 다가온다. 설 명절이 가족과 친지들이 만나 피붙이의 정을 나누는 혈연의 시간이라면 정월대보름은 마을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공동체의 시간이고 축제의 시간이다. 그래서 정월 대보름이 다가오면 마을 곳곳이 술렁거리고 떠들 썩 해 진다

 

먼저 마을회관 앞에서는 어른들이 벌이는 척사대회가 펼쳐진다. 모든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윷놀이로, 정월 보름 며칠 전부터 시작되는 큰 규모의 행사였다. 이 윷놀이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남자들이며, 토너먼트 방식으로 경기가 진행된다, 경기가 진행되면 진행 될수록 마을 회관 앞은 월드컵 열기만큼이나 떠들썩해진다. 이때 주어지는 상품으로는 비료 한 짝, 양은 냄비가 전부였는데도 마을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승부에 대한 집착이 대단했다. 마을회관 앞에서 벌써 큰소리가 들려온다

 

“걸~어가자~ 걸”

“젠장 걸도 못하고, 또 도여”

“잘 봐! 엉아가 워~ 떻게 던지나”

“자~ 한 살이 쳐보자고~”

“아이고. 말이 존다 졸어”

“야! 날 새것다”

 

마을 사람은 주변에 막걸리 몇 통을 갖다 놓고, 윷 끝 발이 안서거나 한살이를 칠 때면 걸죽한 막걸리를 한 발씩 들이킨다. 이때 돼지고기 찌개와 먹는 술 맛은 어디 비교할 수가 없다. 그리고는 흥이 나서 윷 가래를 더 힘껏 던진다

 

“자! 윷이다~”

“아이고!  낙방이네! ”

“영 끝발이 안~오르네 ”

“야! 술 한 잔 더 줘 봐”

 

점점 열기가 더해가며 승부가 갈린다. 진 사람은 낙심해서 한잔 먹고, 이긴 사람은 흥이 나서 한잔 더 먹고, 어느새 막걸리는 동이 나고 만다. 그렇다가 술김에 진 사람이 화를 버럭내고 만다.

 

“아까! 니 놈이 말을 잘 못 써서 그려”

“뭐? 말을 잘 못 써! 웃기고 있네 낙방만 잘 하더라 ”

“...”

“야! 너는 오늘 안 되 것더라”

“뭐 한판 붙어볼래”

“그래 좋다  뭐~내기 할래~ 응”

 

이렇게 또 척사대회와 전혀 상관없는 윷판이 옆에서 벌어진다. 나중에는 가족들까지 모두 나와서 편을 들고 응원 하느라 야단법석이다.

 

“자 개잡고 걸”

“도 다도”

“야! 어렵다 어려워!”

 

이렇게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모르고 마을사람들은 회관 앞에 켜있는 희미한 백열등 아래에 모여 윷놀이를 며칠 동안 벌린다. 남자들이 회관에서 이렇게 윷놀이를 하고 있을 때, 아주머니들은 어느 집 안방에 모여 또한 윷놀이를 펼친다. 이때 벌칙으로는 노래를 부르거나 음식을 내오곤 하였다.

 

“갑순이 엄니 노래 혀”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 났네~”

”물~동이 호미자루 나도 몰래 내던지고 ~“

"호미자루 내던지고 워디갔다고 ~"

"까르르~"

 

안방에서 새어 나오는 아줌마들의 노래 소리와 웃음소리는 남자들의 윷판보다 때로는 더 짖궂고 시끄러웠다. 마을 아주머니들의 윷놀이는 여러 집을 돌아가며 끊이지 않고 정월 대보름까지 계속되었다. 이때 여자들이 주로 먹는 음식은 찐 고구마에 동치미가 전부였지만 산해진미 못지않게 그들에게는 더 없이 맛있고 달콤한 음식이었다.

 

그 때 사춘기의 애들은 편을 갈라 거지 밥을 얻어먹으려고 마을을 돌아 다녔다. 큰 바가지 하나를 들고 여러 명이 모여 집집을 돌아다녔는데, 여러 종류의 밥과 나물을 얻을 수 있었다. 보리밥, 잡곡밥, 쌀밥, 시래기, 콩나물, 된장, 고추장 등등, 마을사람들이 주는 대로 받아오면 비록 거지 밥이지만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어둠 컴컴한 촛불 밑에서 여럿이 몰래  먹는 비빔밥은 지금 생각해도 꿀맛이었던 같다.

 

밤에 동네를 한 바퀴 돌아다녀서 시장하기도 하고 여럿이 먹는 밥 숟갈로 인해 그 비빔밥은 정말 맛있었다. 정월 대보름날만이 먹을 수 있는 별미중의 별미였다. 그 많던 밥이 몇 숟갈 뜨지도 않았는데 금세 없어지고 만다. 그렇다가 아쉬운 생각이 들면 남의 집 담장을 또 넘어 들어갔다. 몰래 밥을 가져오려다가 솥뚜껑을 잘 못 닫기라도 하면 솥 뚜껑이 “꽝”하고 부딪힌다. 이때 주인은 방문을 열어 젖히며 “누구여?” 라고 점잖게 소리친다. 그러면 행여라도 들킬세라 부엌을 쏜살같이 달려 나와 친구들이 있는 사랑방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는 각자의 무용담을 늘어  놓는다.

 

“야! 갑순네 집에 갔더니 밥그릇은 없고 죽만 있더라”

“그 집은 밥을 안 해 먹고 죽 써 먹나봐”

“야! 도식이네 집은 지랑(간장)만 있드라”

“야!  붕신들아 고기를 가져와야지”

 

그렇게들 모여 떠들고 노닐다가 대보름날이 되면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달집을 태운다.

 

달집이 다 타고 나면 그 속에 있던 장작불더미를 깡통에 넣고 논둑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돌려댔다. 이때 친구들의 쥐불과 비교해 시원치 않으면 할머니 고무신짝을 몰래 갖다가 태웠는데,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정월 보름이 다가오니까 예전에 친구들과  함께 했던 추억들이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오늘(2월 2일) 오후에 시골마을을 돌아보니 아이들은 어딜 가고 마을은 썰렁하기만 하다. 모두 도시로 떠났기 때문이다. 포도밭에서 포도나무를 손질하는 농부들만이 간간히 보일 뿐…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정월 대보름날 펼쳐지는 달집태우기는 한해 농사의 풍년과 흉년을 점치는 세시풍습으로 짚으로 만든 달집을 태우면서 액막이와 풍년을 기원하는 민속놀이이다. 달집을 태워서 이것이 고루 잘 타오르면 그해는 풍년이 오고, 불이 도중에 꺼지면 흉년이 온다고 전해진다.

 

달집이 타면서 넘어지는 쪽의 마을에는 풍년이 오고, 이웃마을과 경쟁하여 잘 타면 풍년이 들 것으로 점을 치기도 한다. 달집 속에 넣은 대나무가 불에 타면서 터지는 소리에 마을의 악귀들이 달아난다고도 전해지는데, 달집을 태울 때 남보다 먼저 불을 지르거나 헝겊을 달면 아이를 잘 낳고, 논에서 달집을 태우면 농사가 잘된다고 하여 대부분의 농촌에서 달집태우기가 행해졌고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정월대보름 행사다

 

요즘 정월 대보름 행사를 도시사람들과 함께하기 위해 마을 전체가 주관하는 마을이 곳곳에 있다. 충남 연기군 서면 청라리 마을에서도 2월 7일에 달집태우기 체험행사(연날리기, 소원문달기, 제기차기, 달집태우기)가 있을 예정이다. 아이들과 함께 옛날의 추억을 떠올리며 정월대보름 행사에 참여해 보는 것은 어떨까 ?. 

덧붙이는 글 | sbs유포터에도 송고합니다


태그:#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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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을 다니며 만나고 느껴지는 숨결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 가족여행을 즐겨 하며 앞으로 독자들과 공감하는 기사를 작성하여 기고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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