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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일)은 일요일, 어느 때보다 일찍 일어났습니다. 뜨기 싫은 눈 억지로 떠서는, 머리도 감지 않고 급히 버스를 타고 북한산성 입구에 갔습니다. 산에 가려는 거냐고요? 아닙니다. 산에 가려고 일찍 일어날 만큼 부지런한 사람은 아직 안되거든요. 

 

일요일 아침 늦잠을 금쪽 같이 여기는 저를 일어나게 한 건, 산이 아니라 바로 '교육을 걱정하는 은평 주민들'과 정상용 선생님입니다. 

 

오늘 아침 아홉시부터 북한산 입구에서 은평 주민들과 구산초 정상용 선생님이 함께 '부당 징계 철회', '일제 고사 반대', '공정택 퇴진'을 외치는 캠페인을 벌인다는 소식을 미리 알고는, 그 자리에 함께하고자 게으른 제 몸을 일으켜 세운 것이었습니다.

 

 

지난해 12월, 정상용 선생님 출근 투쟁을 함께 했던 익숙한 얼굴들이 여기저기 많이 보입니다. 언제 준비했는지 따뜻한 차와 손난로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더군요. 일요일 아침이라 산에 오르는 분들이 무척 많습니다.

 

"부당징계 철회와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서명을 받고 있습니다. 따뜻한 차도 마시고 서명도 해주세요!"

 

때로는 큰 외침으로, 때로는 친근한 말투로 다가서는 우리들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분들도 참 많았습니다. 이렇게 거리 캠페인을 할 때면 한 번씩 괜히 나무라는 분도 생기고, 안 좋은 눈빛을 보내는 분들도 있기 마련인데 오늘만큼은 그런 분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갑자기 떠오르더군요. 산에 오르는 분들이라 마음도 건강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죠.

 

 

산에 오르는 분들 못지않게 몸도 마음도 건강한 분들이 또 계십니다. 바로 저처럼, 일요일 늦잠을 포기하고 함께 캠페인을 벌인 분들이죠.

 

피켓 들고 서있는 분들, 조심스레 서명을 부탁드리는 분들, 때로는 큰 소리로 '부당해고 철회, 일제고사 반대'를 외치는 분들, 지나가는 차에 대고 피켓을 들고 침묵 선전하는 분들. 그리고 뒤에서 조용히 커피를 타고 물을 끓이던 분들, 주전자며 휴대용 가스렌지를 집에서 가져온 분들까지….

 

두 시간 동안 우리들은, 한 마음으로 산에 오르는 것 못지않게 몸을 써가며 우리들의 뜻을 사람들한테 알렸습니다. 산에 오르는 것만 운동은 아닐 거예요. 건강한 정신을 알리고자, 바삐 몸을 놀리는 것도 '운동' 아니겠어요?

 

 

두 시간 가까이 거리 캠페인을 벌이는 동안, 이번에 해고된 정상용 선생님도 맨 앞에서 열심히 설명도 하고 전단지도 나눠주면서 이 자리를 함께 하셨습니다.

 

한 달 여 만에 만나는데, 그새 얼굴이 많이 안 돼 보입니다. 아무래도 그 시간 동안 마음고생을 많이 하신 탓이겠지요. 저한테는 훌쩍 지나간 한 달이지만 선생님께는 애타게 긴 시간이었을 테니까요.

 

지난해 방송이며 신문기사며 제가 직접 본 모습까지도 정상용 선생님은 주로 '파란색' 잠바를 입으셨는데요, 오늘은 검정색을 입으셨더군요.

 

몇 번 뵈니 편안해진 건지 친한 척 말을 붙여 봅니다. "파란색 잠바가 선생님 대표 옷 같은데 오늘 안 입으시니까 다른 분 같아요." 웃음 섞인 대답이 돌아옵니다. "그것만 입으니까 옷도 더러워지잖아요. 이 옷이랑 번갈아 입으려고요 빨았어요."

 

그 대답을 들으면서 문득 이랜드 일반노조 언니들이 떠오르더군요. 파란색 짧은 윗도리를 입고 파업 투쟁을 시작해서 '스머프 언니들'로 불리던 그 분들 말이죠. 그 스머프 언니들이 지난해 여름, 파란색 옷을 다시 꺼내 입으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벌써 파업투쟁 한 지 일 년이 되다니! 이 옷을 다시 입고 거리에 나가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거든."

 

부당해고 당하던 순간, 정상용 선생님이 입었던 그 파란색 잠바. 다시 볼 일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그렇게 '스머프 언니들'이야기랑 겹쳐서 떠올랐답니다.    

 

 

북한산 입구에서 캠페인을 벌인 뒤에 뜻 맞고, 시간 되는 몇몇 사람들은 함께 청계천으로 갔습니다. '폭력살인진압 규탄 및 MB악법 저지를 위한 국민대회'가 열리는 곳이었죠. 캠페인만으로도 몸은 충분히 지쳤지만, 힘들어도 묵묵히 산길을 오르는 것처럼 오늘 하루 죽 달려보기로 마음을 모은 겁니다.

 

옳은 이야기를 여러 사람들이랑 함께 외치는 일이니 마음도 건강해 질 거고, 또한 열심히 걸어야 하니까 몸 운동도 되고. 이렇게 우리는 오늘 하루 여러모로 '운동'에 올인을 했답니다. 

 

행진을 앞두고 마지막 순서에 '풍등'을 날리는 식이 있었습니다. 용산 철거민 참사를 두고, '살인진압 사죄, 책임자 처벌'하라는 뜻을 가장 크게 담았을 저 풍등에 저는 특별히 다른 뜻 하나를 더 담아봅니다.

 

 

바로 오늘 아침 북한산에서 보았던 저 문구, "경쟁교육 부질없다. 돕고 사는 인성교육이 먼저다. 일제고사 반대!"한다는 마음입니다.

 

내일이면 초등학교는 개학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일부터 정상용 선생님을 비롯한 부당해고 된 선생님들이 출근투쟁을 다시 시작한다고 합니다. 더불어 3월 초에는 일제고사가 대대적으로 치러질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렇기에 저 풍등에 담고 싶은 소망은 너무너무 많았지만, 오늘 만큼은 일제고사에 반대하고, 아이들의 참된 교육을 바라는 마음을 특별히 실어 보내고 싶었습니다. 

 

참! 오늘 청계천 문화제에서 평화 노래꾼 홍순관씨가 노래를 하시더군요. 오늘 하루 제 운동이 제대로 이어지는 날인가 봅니다. 홍순관씨랑 제가 풍등에 담은 소망이랑 연결된 따끈한 소식이 하나 있거든요. 

 

 

교육을 걱정하는 은평 주민들 가운데 한 분이 홍순관씨와 함께 작은 음악회를 준비했답니다.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이라는 대안 문화를 가꿔가는 조그마한 카페 사장님이죠. 부당해고 된 선생님들, 특히 같은 동네 주민이기도 한 정상용 선생님께 조금이라도 힘이 될 방법을 찾고자 기획한 음악회죠. 정상용 선생님도 가족이랑 같이 오시겠다고 오늘 저한테 다짐해 주셨네요. 저 또한 당연히 갈 거고요.   

 

풍등에 담은 소망들, 이뤄지기를 마냥 기다리기보다는 이렇게 작은 것 하나부터 그 소망을 이뤄낼 길을 찾아가는 것이 몸도 마음도 건강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인 듯합니다. 그렇게 걸어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들 하나하나가 우리들 소망을 담아 하늘로 날려 보낸 저 풍등이 되어있지 않을까, 혼자 행복한 상상을 펼쳐 봅니다. 이런 정도 상상은, '건강한 정신'으로 봐줘도 괜찮겠지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은평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일제고사,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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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기타 치며 노래하기를 좋아해요. 자연, 문화, 예술, 여성, 노동에 관심이 있습니다. 산골살이 작은 행복을 담은 책 <이렇게 웃고 살아도 되나>를 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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