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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로 2구역 상가 대책위원회' 세입자들이 허물어진 건물 앞에서 3년 째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세종로 2구역 상가 대책위원회' 세입자들이 허물어진 건물 앞에서 3년 째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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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그리고 테러리스트. 우리 사회와는 멀게만 느껴졌던 이들이 요즘 부쩍 가깝게 느껴진다. 경찰과 여당이 용산 참사와 관련 "테러로 불러도 좋을 만한 일이 벌어졌다"며 철거민들을 '도심 테러리스트'로 몰면서부터다.

정부와 여당의 논리를 따른다면 대한민국은 수천 수만 명의 테러리스트가 대놓고 활약하는 사회다. 그리고 권력의 심장부인 청와대 코앞에서 '잠재적 테러리스트'를 양산하고 있는 아주 이상하고 불안한 사회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냐고?

청와대가 한눈에 보이고 외교부와 정부종합청사가 바로 옆인 곳. 북쪽으로 5분 걸어가면 광화문과 경복궁이 있고, 동쪽으로 길 하나만 건너면 주한미국대사관이 있으며, 남쪽으로 5분만 내려가면 서울시청에 닿을 수 있는 대한민국 핵심 요지. 지금 이곳에서 철거민들이 싸우고 있다. 

청와대 코앞, 광화문 거리에도 철거현장이

바로 세종로사거리와 맞닿아 있는 신문로2가(종로구 당주동 29번지 일대 4750㎡)가 그곳이다. 현재 이곳에는 세입자 22가구 수십 명의 철거민들이 벌써 햇수로 3년째 거리에서 천막 농성을 벌이고 있다.

정부 고위 공무원들과 '화이트 칼라' 노동자 등 하루 유동 인구 2만 명에 달하는 이곳은 "특A급 상권"으로 통한다. 평일 점심시간, 이곳에서 식사를 하려면 줄을 길게 서야 했다. 그리고 저녁에 맥주 한 잔 하려 해도 빈자리가 없기 일쑤였다. 이곳 상인들은 다른 지역 상인들에게 부러움을 받는 나름대로 '잘 나가는 상인'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모두 과거의 일이다. 그 잘 나가던 '광화문 사장님'은 지금 철거민이 되어 거리에서 싸우고 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3년째 말이다. 그동안 철거 용역업체 직원들에게 시달려 잠 못 이룬 밤은 셀 수가 없다. 간혹 잠이 들어도 너무 억울해 벌떡 일어난 적도 많았다. 도대체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세종로 2구역 상가 대책위원회' 세입자들이 허물어진 건물 앞에서 3년 째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세종로 2구역 상가 대책위원회' 세입자들이 허물어진 건물 앞에서 3년 째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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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풀린 28일 오후, 허물어진 건물 앞에 을씨년스럽게 늘어서 있는 신문로2가 철거민들의 천막 안으로 들어섰다. 열 명이 안 되는 세입자의 눈길이 일제히 쏠렸다. 난로가 있었지만 천막 안은 따뜻하지 않았다.

'세종로2구역 상가 대책위원회' 대표를 맡고 있는 장광섭(57)씨와 총무 김충희(55)씨는 표정 없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기억이 날듯 말듯 낯익은 얼굴인데, 기억이 희미하다. 의문은 이들의 인사를 통해 해소됐다.

장광섭 대표 "이곳에서 호프집 '독도골뱅이' 운영했었습니다." 
김충희 총무 "저는 '화원 김충희 플라자' 운영하며 꽃 팔았습니다."

<오마이뉴스> 직원들은 '독도골뱅이'에서 자주 회식을 했었다. 그리고 나는 사랑하는 여인에게 꽃다발을 주기 위해 '화원 김충희 플라자'에 들리곤 했다. 반가움에 웃었다. 하지만 기자와 철거민 취재원으로 다시 만난 현실이 유쾌할 리 없다.

"정말 자다가도 깜짝 놀라 깨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사람 신세가 하루아침에 이렇게 바뀌는데 환장할 노릇이지요. 다 타버린 내 가슴을 뭐라 표현할 말이 없어요."

기막힌 인생... '광화문 사장님'이 철거민으로

과거 꽃다발을 만들던 김 총무의 눈이 젖었다. 다른 이들은 눈길을 돌리거나 한숨을 쉬었다. 김 총무를 비롯한 상가 세입자 23가구가 자신들 의지와 무관하게 철거민으로 추락하기 시작한 건 2005년부터다.

신문로2가는 1994년부터 도심재개발 구역으로 묶였다. 하지만 그동안 뚜렷한 재개발 계획이 나오지 않아 편하게 장사를 해왔다. 건물이 재개발 업자에게 팔린 건 2005년 10월께다. 세입자들은 상가임대차보호법 등이 있기 때문에 특별한 걱정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철거 용역업체 직원들이었다. A재개발 업자와 계약을 체결한 용역업체 직원들은 2005년 11월 4일부터 영업 중인 세입자들의 가게에 찾아왔다. 보증금과 이사비용 1000여만 원을 받고 나가라는 "강압적 통보가 하달" 됐다.

"여기 광화문 주변은 상권이 좋아 열 평 당 권리금만 1억원입니다. 우리도 다 그 돈 내고 여기 들어왔어요. 그리고 또 그동안 시설 투자비는 얼마나 많겠습니까. 게다가 여기 광화문은 보증금은 싸고 월세가 비싼 동네예요. 보증금만 받고 나가면 서울에서 다시 장사하기 어렵습니다. 평생 장사하던 사람이 어디 가서 뭘 어떻게 먹고 삽니까."

장광섭 대표의 말이다. 그는 "우리가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제대로 된 재산 평가를 하고 보상이 이뤄지면 모든 게 해결된다"며 "외교부 청사 뒤편 도렴동 일대는 그런 평가를 거쳐 모두 원만하게 타협하고 이주했다"고 밝혔다.

용역업체 직원들에 의해 파손된 광화문 신문로2가 식당의 모습.
 용역업체 직원들에 의해 파손된 광화문 신문로2가 식당의 모습.
ⓒ 상가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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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광화문 일대 재개발은 신문로2가만이 아니다. 바로 인근인 세종문화회관과 외교부 뒤편의 도렴동도 재개발 구역에 편입됐으나 이쪽은 별 마찰 없이 세입자들이 이주를 했다. 그곳은 A재개발 업자가 아닌 다른 회사가 재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용역 직원들,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김씨는 "재개발업자마다 보상 기준이 다르면 어쩌란 말이냐"며 "결국 '나쁜 사업자' 만난 우리가 재수 없는 셈 치고 모든 걸 꾹 참아야 하느냐"고 따졌다. 결국 개발 과정과 세입자 대책을 규정하는 새로운 법률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어 광화문 일대 한복판에서 용역업체 직원들에게 시달린 이야기가 길게 이어졌다.

"내 나이 올해 71인데,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도 인간의 탈을 쓴 사람들인데 그렇게까지 할까 했는데 정말 상상을 초월해요.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뜁니다. 어떻게 광화문 한복판에서 그런 일이…."

와인을 비롯한 술 전문매장을 운영했던 김모씨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대신 김 총무가 나섰다.

"말도 말아요. 점심시간 때 손님 가장 많은 때 와서 행패 부리고, 손님들에게 싸움 걸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장사 못하게 밤에 몰래 유리창 다 깨고, 2층에 올라가서 바닥 두드리고, 물 뿌리고, 가게 집기 다 들어내고, 별 희한한 쌍욕을 다하고…."

경찰에 신고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용역업체 직원들은 "증거를 대라"며 발뺌을 했다. 고심 끝에 세입자들은 가게에 CCTV까지 설치했다. 결국 용역업체 직원 1명은 감옥으로 향했다. 이런 용역 업체의 횡포는 2006년 4월 26일 KBS <추적 60분> - '폭력을 서비스해드립니다'를 통해 방영이 되기도 했다. (다시보기)

하지만 이미 가게는 용역업체 직원들에게 모두 망가졌고, 건물도 헐렸다. 세입자들은 2007년 7월부터 가게가 있던 자리 앞에 천막을 설치했다. 세입자 23가구 중 22가구가 지금까지 싸우고 있는데, 대단한 단결이다.

"용산참사,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

장 대표는 "단결을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너무 억울하고 사람이 코너로 몰리니까 그렇게 됐다"며 "처음부터 싸움이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 알았다면 아마 시작도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장 대표는 "3년을 이렇게 살았는데, 5년은 못하고 10년은 못하겠느냐"며 "여기까지 몰렸는데 어쩔 수 없다, 외길뿐이다"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들 신문로 세입자들은 '전국철거민연합'보다 다소 온건파로 분류되는 '전국철거민협의회'에 한때 가입했으나 금방 나왔다. 우선 스스로 해결해 보고 싶다는 게 이들의 판단이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과 최근 참사를 당한 용산 철거민을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장 대표는 "용산 철거민들이 오죽했으면 옥상으로 올라갔겠느냐"며 "내가 겪어보니 그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억울한 일 겪으면 별 일을 다 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 총무 역시 "우리도 어차피 그들처럼 목숨 걸고 싸워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며 "우리가 무기로 사용할 건 우리의 목숨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시 김 총무의 눈이 젖었다.

"지난 3년 동안 몸과 마음에 많은 상처를 받았다. 그게 가장 아프다. 여기도 공사 시작되면 목숨 걸고 크게 싸울 수밖에 없다. 용산 참사가… (잠시 침묵) 우리한테도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비참하지만."

광화문 신문로2가 재개발 지역에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하라!'라고 적힌 광고 전단지가 붙어 있다.
 광화문 신문로2가 재개발 지역에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하라!'라고 적힌 광고 전단지가 붙어 있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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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용산참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우린 비참한 풍경을 다시 보게 될지도 모른다. 한 때 광화문 거리에서 꽃다발을 만들고, 골뱅이를 손님에게 대접하고, 와인을 팔던 '광화문 사장님들'이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하게 싸우는 모습을 TV 화면으로 보게 될지도 모른다.

용산참사가 증명하듯, 이성을 잃은 개발과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정부의 밀어붙이기는 평범한 사람을 그렇게 만들 수 있다. 세입자들이 장사했었으나 이젠 헐리고 없는 건물터에는 지금 이런 역설적인 문구의 전단지가 붙어 있었다.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하라!"


태그:#용산참사, #철거민, #신문로, #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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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랭은 고양이를, 저는 개를 업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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