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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국무회의 도중 용산 철거민 참사 소식을 보고 받은 이명박 대통령은 먼저 철저한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도심 한복판에서 철거민들을 대상으로 공권력이 집행되면서 대량의 인명 피해가 났는데도 그가 먼저 한 말은 '진상조사'였다. 대통령은 다음 날에야 "가슴 아픈 일이며,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말한다.

 

사실 이것은 하나마나 한 말이다. 대통령의 말을 반대로 돌려보자. 철거민들의 죽음에 누가 가슴 아파하지 않겠으며, 혹여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도 된다고 말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따라서 "가슴 아프고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대통령의 말은 사건의 주체인 공권력을 휘하에 두고 있는 최고 책임자로서 할 말은 아니다.

 

아무튼 이명박 대통령은 유달리 '진상조사'에 초점을 맞추는 것 같이 보였다. 왜 그랬을까?

 

대통령이 강조한 '진상조사'라는 게 바로 이것이었나

 

대통령의 말 때문인지 청와대는 계속 "진상 파악이 우선이고 책임 소재는 진상 파악 후에 밝히겠다"고 했다. 한 술 더 떠 김은혜 청와대 부대변인은 "과격 시위의 악순환을 끊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개념 없는 말을 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어서 집권 여당 사람들은 너나 없이 진상조사가 우선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 같은 이는 국회 행전안전위원회에서 "도심 테러"라는 말을 내뱉었다. 사람이 어떻게 하면 그리도 몰인정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누가 보아도 희생자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 정도만 책임자 문책이 우선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하지만 그는 원내대표로서 당내 대책회의에도 참석하지 못하는 수모를 감수해야 했다.

 

경찰은 신속히 철거민들의 시신을 병원으로 이송했다. 그러고는 당일 보호자의 동의도 없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부검해 버렸다. 경찰은 시신을 확인하려는 유가족들을 막았다. 이 과정에서 "아빠 보러 가겠다!"고 울부짖던 유가족 2명이 실신했다. 

 

급히 검찰 수사반이 편성되었다. 물론 많은 이들은 별반 기대를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BBK 사건 등 대통령의 숱한 의혹들에 무혐의 판정을 내린 검찰이었기 때문에. 최근에만도 한 인터넷 논객을 무리하게 수사하고 구속한 검찰이었다.

 

검찰이 최근 보여온 모습은 국민들의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 어쩌면 대한민국 검찰에게서 의로움을 찾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보다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청와대는 검찰의 수사 결과를 기다렸던 것 같다. 그러면서 여론의 동향을 예의주시하였으리라고 본다. 사건의 책임자인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 문책을 미적거리는 것도 이와 관련된다. 청와대는 될 수만 있다면 그를 살리고 싶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정권 유지를 위해 더할 나위 없이 요긴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듯이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고향 출신으로 정권이 대놓고 키운 인물이다. 그가 충성파 어청수 청장을 밀어내고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BBK때도 그랬어, 검찰 수사 결과가 발표되면 여론이 달라질지 몰라.'

 

이것이 청와대의 희망사항 아니었을까? 마침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신문들은 색깔론까지 제기하며 전국철거민연합회(전철연)을 몰아세우고 있다.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이 검찰은 수사 결과를 서둘러 발표했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수사본부는 농성장에 있던 용산 4구역 세입자 2명과 전국철거민연합 회원 3명을 대뜸 구속해 버렸다. 또한 그들은 전철연을 마치 테러 집단처럼 몰았다. 구속자 중 한 명인 김아무개씨는 구치소로 가며 울먹였다.

 

"억울한 점 많습니다. 저희들은 테러집단이 아닙니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현실

 

용산 철거민 참사 현장의 농성자 수는 고작 30~40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경찰은 농성자들의 기를 꺾으려 했음인지 무려 1600명이나 되는 병력을 배치했다. 여기에다 다수의 용역 철거꾼까지 동원되었다. 이는 과잉진압이라는 것을 수치상으로 증명해 준다.

 

더 중요한 사실은 철거민들이 농성에 돌입한 지 불과 25시간 만에 강제 진압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것도 용역 철거꾼들이 폐타이어에 불을 질러 유독가스와 악취를 건물에 들여보낸 후 테러 진압 부대인 특공대를 투입했다.

 

과연 이런 방식이 적절했을까? 모든 점거 농성에는 '네고'(negotiation, 협상)가 먼저 있어야 하는 것은 기본 수칙이다. 경찰은 특공대를 건물 계단과 기중기 컨테이너를 통해 입체적으로 투입했다. 이것이 농성자들을 당황시키거나 흥분시켜 사고를 유발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왜 경찰은 무리수를 둔 것이었을까? 그것은 상부의 의지와 과잉 충성이 빚어낸 결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김석기 내정자는 특공대 투입을 승인한 장본인이다. 충성파 청장을 밀어내고 자리에 오른 그가 실적을 쌓고 싶은 마음에 서둘렀다는 의혹을 지우기 힘들다.

 

보도에 따르면 특공대가 진입하고 나서 1차 화재가 있었다고 한다. 망루에는 인화물질이 깔려 있었다는 것을 경찰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경찰은 계속 특공대를 밀어붙이고 컨테이너 기중기를 작동하며 망루를 위협했다. 2차 화재는 폭발과 함께 났고 이로 인해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결국 2차 화재 발생이 인명 피해를 발생시킨 원인임이 분명하다. 검찰은 특공대원들의 진술에 근거해서 농성자가 던진 화염병이 화재의 원인이라고 발표했다. 검찰이 영장에 제시한 구속 사유는 "망루에서 농성하던 철거민 가운데 화염병을 던지는 등 경찰의 진압을 막고, 그 과정에서 화재 원인을 제공해 사상자가 발생하게 한 혐의"라고 한다. 이에 따라 철거민들에게는 화염병처벌법과 특수공무방해치사상죄가 적용되었다.

 

하지만 검찰은 누가, 언제 던진 화염병 때문에 불이 난 것인지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못했다. 이것은 결국 불을 내게 한 직접 원인을 모른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렇게 화재의 정확한 원인을 특정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당연히 화재가 나게 된 전후 과정을 살펴야 한다. 그런데도 검찰은 철거민만을 대상으로 집중적인 수사를 벌이고 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검찰이 철거민의 화염병을 화재 발생 원인으로 간주하는 것은 범죄 수사의 기본을 일탈한 짓이다. 이것은 검찰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쉽고 단순하게 보아서, 살려고 투쟁했던 사람들이 죽을 짓을 했을 리는 없지 않은가?

 

좀 더 시야를 넓혀 보도록 하자. 어떻든 간에 현장에 있던 철거민과 전철연 회원들은 희생자들과 함께 투쟁한 동지들이었다. 화마가 다른 방향으로 덮쳤더라면 구속된 사람들이 타죽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농성자들은 희생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사태의 피해자들이다.

 

피해자가 있다면 가해자가 따로 있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가해자는 누구란 말인가? 사실 이런 비극적 사태에서 가해자를 가린다는 것부터가 인정과 도리에서 벗어나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느 면에서 모든 이가 피해자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

 

최소한 현장에 투입된 경찰은 가해자라고 말하기가 주저된다. 굳이 가해자를 가린다면 과잉진압을 조급하게 지시한 상부의 공권력이 아닐까? 그런데 검찰은 앞뒤 재지 않고 철거민들만을 구속해 버렸으니 이것은 가해자가 되레 피해자에게 책임을 문 얼토당토않은 결과다. 검찰이 제정신이라면 참사를 초래한 경찰의 지휘라인에 책임을 물어야 옳다.

 

약자에 혹독하고 강자에 관대한 검찰

 

뒤늦게 검찰은 진압작전을 현장 지휘한 백동산 용산경찰서장과 현장 지휘에 나섰던 김수정 서울경찰청 차장 등을 조사할 뜻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과잉진압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지휘 계통상 권한이 있는 서울경찰청장이 정식 절차를 밟아 결정한 작전이므로 형사상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검찰은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를 소환하는 것조차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정식 절차를 밟아 결정한 작전이면 사람이 죽어도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는 어디서 나온 것인가? 전형적인 궤변이다.

 

또한 이런 태도는 약자에 혹독하고 강자에 관대한 대한민국 검찰의 기회주의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여론에 밀려 마지못해 조사하면서 그것도 아랫사람만 소환하고 최고책임자를 감히 넘보지 못하는 검찰이라면 정상적인 사법기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김석기가 어디 보통 경찰청장인가? 대통령의 고향 후배이자 대통령의 멘토라고 하는 정권 실세 방통위원장의 고교 후배 아닌가? 검찰 주제에 감히 거기까지 어떻게 손을 본단 말인가. 하기야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고 하던 사람들의 후예 아닌가? 살아생전에 한국 검찰이 단 한 번이라도 권력에 초연하여 약자 편에 서는 모습을 보고 싶다.


태그:#검찰 , #용산참사, #김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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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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