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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헌법학자 스멘트(R. Smend)는 표현의 자유는 "자주적 인간에게 도덕적으로 필요한 생명의 공기"라고 했다. 그렇다. 문제는 표현의 자유다. 누가 미네르바인가라는 진위공방이 아니다. 미네르바가 한 명이면 어떻고, 백 명이면 어떤가. 미국식 표현을 빌자면 "바보야 문제는 표현의 자유야"이다.

 

<신동아> 2월호는 자신이 미네르바라고 주장하는 K씨와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신동아>의 공신력이라는 측면에서, 다른 한편으론 검찰수사의 적정성 측면에서 모순되는 사안이라 또 다른 논란을 예고한다.

 

물론 미네르바의 신체의 자유는 중요하다. 그래서 신체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몇 가지 문제를 다시 제기해 보자.

 

첫째, 과연 불구속재판의 원칙은 지켜지고 있는가. 둘째, '의심의 여지가 있을 때에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로마법 이래의 기본 정신이 우리 현행 사법질서 하에서 지켜지고 있느냐가 쟁점이다. 셋째, 볼테르의 비극 '자이르'(Zaire)에서 비롯된 "죄 없는 사람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것보다 죄 지은 사람을 풀어주는 것이 더 낫다"는 법리도 관철되고 있느냐가 문제다. 넷째, '자백은 증거의 왕'이라는 근대 이전의 법원칙이 유일하게 작동된 사례가 아닌가 하는 의아심이다. 더군다나 우리 헌법 제12조 제7항은 "자백이 그에게 불리한 유일한 증거일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거나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

 

문제는 미네르바 진위공방이 아니다

 

이런 의문은 검찰과 법원이 앞으로 진행될 사법절차를 통해 해소 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신동아> 인터뷰에 대한 추가 수사가 계획되어 있다면 검찰과 법원은 잠정적으로 미네르바에 대한 구속취소나 직권보석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의 핵심은 정부에 대한 익명의 비판적 글쓰기라는 표현의 자유에 대해 인신의 구속으로 대응했다는 점이다. 인스턴트(instant) 정치, 즉응(卽應) 정치, 즉자적 정치의 전형이다.

 

그래서 이번 사태가 미네르바의 진위공방으로 흘러가는 것을 경계한다. 이는 지엽적 논쟁이다. 물론 구속되어 있는 미네르바의 입장에선 억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위논쟁은 결코 본질적 논쟁이 아니다. 이번 사태의 핵심논점은 과연 '생각대로 T'처럼 '생각대로 표현할 자유'가 존재하는지 여부다. 표현의 자유가 제대로만 보장됐다면 미네르바의 구속은 없었다. 앞으로도 표현의 자유를 이렇게 좁게 해석한다면 수천 수만의 미네르바가 양산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정보주권자인 시민에 대한 불신이 내재되어 있다. 시민은 그저 자기판단 없이 각종 매체를 통해 유통되는 글과 말을 그대로 믿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존재라는 엄청난 불신이 내재되어 있다. 그래서 국가가 나서서 이런 위험성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익명비판이 문제라고? 표현의 자유일 뿐이야

 

표현의 자유에는 '표현할 권리'와 함께 '표현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 '실명'으로 표현할 자유도 있고, '익명'으로 표현할 자유도 있다.

 

미 연방대법원은 "표현하지 않을 권리에는, 표현할 때에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지 않을 권리가 포함된다"고 했다. 캘리포니아 주법은 익명으로 전단을 발행하는 것을 금지했다. 그러자 미국 수정헌법 제1조를 침해했다며 위헌소송이 제기됐다. 이때 연방대법원은 "역사상 때때로 박해받던 집단이나 분파들은 익명으로 또는 전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억압적인 관습이나 법률을 비판할 수 있었다"고 선언했다.(1960, Tally v. California) 익명이라는 이유만으로 표현의 자유를 규율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익명으로 하기로 한 결정은 경제적 또는 공식적인 보복에 대한 두려움, 사회적 매장에 대한 염려, 또는 단지 가능한 한 사생활을 보호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유발될 수 있다... 따라서 익명으로 하기로 한 결정은 그 출판물의 내용에 무언가를 생략하거나 첨가하는 것에 관한 결정과 마찬가지로 수정헌법 제1조에 의해 보호되는 언론의 자유의 한 영역이다"라고 했다.

 

익명이건 실명이건 비판이건 칭찬이건 현명한 발언이건 어리석은 발언이건 모두가 표현의 자유의 한 형태라는 데 대해 미 연방대법원은 단 한 차례도 의심의 눈길을 던지지 않았다. 사실 공익이라는 명분으로, 허위사실유포라는 낙인으로, 경제학을 전혀 공부하지 않은 전문대학 출신의 무직자라는 차별과 편견으로 표현의 자유를 매도해 버린 역사적 사례를 찾기는 참으로 어렵다. 근대 인권의 역사에 이런 사례는 없었다.  

 

좀 더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표현의 자유의 역사는 곧 인권의 역사요 근대 시민권의 역사이다.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는 "나는 당신이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당신의 의견을 말할 권리를 위해서는 죽도록 싸울 것이다"라고 했다.

 

이래서 미네르바의 문제는 단순히 미네르바의 문제가 아니다. 한 사람의 인신의 자유에 대한 제한의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미네르바는 우리 모두의 문제다. 표현의 자유 문제는 곧 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태그:#미네르바, #표현의 자유, #허위사실유포, #익명,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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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영남대, 전남대 로스쿨 및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중입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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