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늘(1월 10일) 날씨가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추운데다가 바람까지 쌩쌩 불어주는 날씨가 대박이었다. 안성에서 ‘더아모 15인승’ 승합차를 타고 상경해 서울대공원 주차장에 내리니 추위가 뼛속으로 파고든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듯했다. 추운 겨울에 멋도 모르고 상경하여 서울대공원을 보겠다는 철모르는 안성 촌놈들에게 제대로 된 신고식을 치루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도 우리가 서울대공원 상륙작전을 감행하게 된 사연은 이렇다.

 

엄동설한에 서울대공원에 간 사연

 

그동안 매월 우리 ‘더아모의집’의 친구인 완채(근육병 장애 청소년)와 함께 나들이를 다녔다. 하루 종일 집에만 누워 있는 완채와 완채를 간호하느라 하루 종일 함께 있는 ‘완채 엄마’를 위해서 나들이를 해왔다.

 

그동안 나들이를 간 곳은 주로 바닷가였다. 제부도와 대천해수욕장 등이었다. 완채가 바다를  보고 싶다고 한 이유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다른 곳에 나들이를 갈만한 완채의 몸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완채는 근육 상태가 좋지 않아서 2년 전부터는 휠체어도 탈 수 없게 되었다. 하루 종일 누워서 생활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바닷가로 나들이를 가면 완채를 모래사장에 누여 놓고 구경하게 하고 비장애인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놀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곳, 그러니까 계속 걸으면서 관람하고 구경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래서 궁리 끝에 이동 침대를 마련하기로 한 것이었다. 올해 중 예정되어 있는 완채의 그림전시회(완채가 그린 그림을 전시회하기로 함)때 사용할 이동 침대를 미리 만들기로 한 것이었다. 완채는 근육병이 심화되어서 앉지도 못하기에 휠체어를 탈 수도 없다. 그래서 안성에 있는 청사모(청소년을 사랑하는 모임)의 도움을 받아 이동용 침대를 마련하게 되었다.

 

완채에게 딱 맞는 규격의 침대를 구하느라 힘들었지만, 무엇보다도 침대가 15인승 승합차에 들어가는 것이 관건이었다. 침대를 실고 이동하려면 바퀴가 달린 병원용 침대는 너무 커서 어림도 없었다. 

 

침대회사, 의료기 회사, 의료기 가게 등에 문의를 했지만, 기존 침대 제품으로는 두 가지를 다 만족시키는 것이 없다는 게 결론이었다. 수소문하다가 결국 안성시내의 한 철물점에서 지금의 침대(정확히 말하면 이동식 상품 진열대)를 만나게 된 것이다. 철물점에 가서 승합차에 직접 실어보고 실리게 되면 사려고 했다. 다행히 실렸다. 그래서 침대를 샀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합판이 필요했다. 철물점에서 얻은 합판이 침대와 규격이 맞지 않아서 재단을 해야 할 형국이었다. 이것 또한 아는 분의 손길이 들어갔다. 완채를 잘 알지도 못하는 분이지만, 나와의 친분 때문에라도 기꺼이 완채의 침대 합판을 재단해주었다.

 

그 위에 침대 매트리스를 깔아야 하는 것 또한 일이었다.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규격의 침대매트리스를 이불가게에 부탁했다. 이불가게 아주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덮는 것처럼 아주 정성스레 침대 매트리스를 제작해주셨다. 완채가 힘들어할까봐 덤으로 푹신푹신하고 두꺼운 요까지 만들어 주셨다. 매트리스 가격만 받고 요는 덤으로 끼워 주신 것이다. 특수 제작한 맞춤 매트리스였다.

 

그러나 결국 우여곡절 끝에 마련된 침대를 실험해볼 날(지난달에 우리 ‘더아모의집’ 청소년들과 함께 서울대공원 나들이를 가기로 한 날)을 실행하지 못했었다. 침대도 준비되었고, 함께 놀러갈 청소년들도  준비되었지만, 주인공인 완채가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 달 뒤로 연기된 것이 바로 오늘이다. 이런 이유이니 참으로 뜻 깊은 서울나들이라고 할 수 밖에. 한 사람을 섬기고 나누는 것이 이렇게 많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우쳐주는 대목이었다.

 

강추위를 뚫고 이어진 우리들의 행진

 

이렇게 시작된 서울대공원 나들이. 날씨가 추워서인지 주말인데도 서울 시민들이 그리 많이 나오지 않았다. 덕분에 우리 안성 촌놈들이 마음 놓고 거리를 활보할 수는 있었다. 매서운 칼바람에도 아이들은 그저 신났다. 친구들이랑 함께 하는 것이 그저 신날뿐이었다. 이동 침대에 실린 완채도 신이 났다. 아이들도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서로 서로 알아서 완채의 침대를 밀고 당기고 난리였다. 초등학교 2~3학년 막내둥이 녀석들은 오히려 침대를 재미삼아 밀기까지 했다. 날씨가 차서 손이 시릴 텐데도 어느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고서 말이다.

 

사실 이날 많이 걸었다. 서울대공원 가본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거기에 가면 얼마나 많이 걷게 된다는 것을. 완채의 이동침대를 끌고 우리 일행은 하루 종일 걷다가 쉬다가 한 것 같았다. 세상에 하나뿐인 이동침대. 이웃들의 정성이 듬뿍 담겨 있는 이동침대 덕분이 아니었다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거기다가 ‘더아모의집(시골마을 청소년들)’의 밀고 끌어주는 정성까지 보태졌으니 이보다 더 아름다운 금상첨화가 있을까. 완채의 침대를 끌고 다니니 다른 시민들이 유심히 쳐다보았지만, 오히려 아이들은 무슨 자랑거리인양 더 신나게 침대를 밀고 끌고 하는 것이었다. 

 

추위 탓에 많이 나오지 않은 동물원의 동물들(물개, 호랑이, 사자, 원숭이, 곰 등)과도 인사하면서 즐겁게 행진했다. 이날 제일 따스한 곳은 역시 실내 식물원. 거기서 만난 식물들은 모두 반갑기만 했다. 사실 식물이 반갑다기보다는 몇 시간을 추운 데만 다니다가 따스하다 못해 더운 곳에 들어오니 더 반가웠던 것. 거기다가 실내식물원 통로에서 이루어진 ‘작은 음악회’ 콘서트는 아이들에게 또 다른 추억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모두다 그 콘서트에 푹 빠졌다.

 

이렇게 우리는 완채와 함께 신나는 날을 보냈다. 2009년이 시작하는 달에 우리는 그렇게 생애에 잊지 못할 추억의 그림들을 만들었던 것이다. 엄동설한 추위도 우리의 나눔 행진 앞에선 무릎을 제대로 꿇었던 게다.

 

덧붙이는 글 | '더아모의집'은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모임의 집'이라는 뜻으로 '문명 패러독스'의 저자 송상호가 열어가는 집의 이름이다. 현재 안성 금광면 시골 마을 흙집에서 마을 아이들과 오손도손 재미나게 살아가고 있으며, 2008년 12월에 인물과사상사를 통해 '문명 패러독스'를 출간했다. 홈페이지는 http://cafe.daum.net/duamo 이다.


태그:#더아모의집, #송상호, #완채, #서울대공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