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세계 어디에도 20년 만에 민주주의를 성취한 나라는 없다. 민주주의는 완성과 종료의 지점이 없는 긴 과정이다. 민주주의란 '마라톤'에는 종착점이 없다. 그런데도 민주화를 향한 법률과 제도를 정비한 성과만으로 상당수 한국인들이 '이제 민주주의는 다 되었다'는 식의 가당찮은 착각에 빠져있다."

2007년 6월 민주항쟁 20년 기념 대토론회에서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가 한 말이다. 설마 했다. 그리고 정말 '설마가 사람 잡았다'. '미네르바' 체포소식이 들린 어제(8일), 비로소 '가당찮은 착각'에 빠져 있었다는 걸 실감했다. 한 일본인을 '언론사'에서 끄집어 낸 것도 이 때문이다.

유신체제 비판했다는 이유로 쫓겨난 <마이니치 신문> 기자

마에다
 마에다
ⓒ 조선일보 PDF

관련사진보기

정확히 30년 전이었다. '닭은 닭이라고 하고, 고양이를 고양이라고 한 것' 같은 일본인이 있었다. 그 '죄'로 1979년 오늘(1월 9일), 그는 대한민국에서 나가라는 명령을 받는다. 2009년 '미네르바'처럼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그렇게 쫓겨난 사람은 마이니치 신문의 마에다 기자였다.

2007년 국정원이 내놓은 진실위 보고서를 보면, 1974년 1월 당시 문공부는 일본 신문이 한국 유신체제를 비방하는 내용과 유언비어를 보도하고 있다는 이유를 내세워 "앞으로 이런 사항에 대해서는 긴급조치에 의해 처리할 것임을 명확히 한다"고 발표한다. 박정희 정권의 긴급조치 1호를 외신기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하겠다는 선전포고였다.

그 후 박정희 정권은 말 그대로 '명확히 처리했다'. 1975년 5월 미국 석유 메이저업체가 당시 여당인 공화당에 거액의 커미션을 제공했다는 소식을 보도한 일본 신문들의 국내 배포를 금지했다. 다시 1977년 5월에는 요미우리 신문 편집국장과 김일성의 면담 내용을 문제삼아, 요미우리 신문 서울 지국을 폐쇄하고 서울 특파원을 한국에서 쫓아낸다.

그 다음이 마이니치 신문의 마에다 기자 '차례'였다. 1979년 1월 10일자 <조선일보>가 1면에 당시 상황을 비교적 상세하게 전하고 있는데, 이 기사를 보면 9대 대통령 취임식을 앞두고 마에다 기자가 쓴 기사를 박정희 정권이 문제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혹스러운 것은 읽다보면 '미네르바'가 '오버랩'된다는 점이다. 전문을 그대로 옮긴다.

'미네르바' 체포 소식을 들으며 마에다를 떠올리다

1979.1.10 조선일보
 1979.1.10 조선일보
ⓒ 조선일보 PDF

관련사진보기

법무부는 9일 일본 마이니치 서울특파원 마에다 야스히로(43) 기자에 대해 12일까지 출국하도록 강제퇴거명령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법무부는 마에다 기자가 지난해 12월 26일자 신문에 ▲ 제9대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한국 국내정세를 악의적으로 왜곡 보도함으로써 우방국가 원수 취임식을 모독적으로 보도했고 ▲ 한국의 체제를 부정일변도로 비난했으며 ▲ 극히 일부 인사들의 그릇된 편견이 마치 대다수 한국민의 뜻인 것처럼, 그들의 활동을 선동 지원하는 내용을 게재 보도함으로써 대한민국 국시에 위반하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 출입국 관리법 제12조3호와 동법 제50조3호에 따라 강제 퇴거 명령을 내리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마에다 기자는 76년 3월 15일부터 한국에서 취재활동을 해오는 동안 한국 당국으로부터 6차례에 걸쳐 경고를 받은 바 있다. 법무부는 작년 12월 31일 마에다 기자에게 강제 퇴거 명령을 내렸으나 마에다 기자가 문제가 된 기사 가운데 격렬한 제목이 나온 부분은 자신이 집필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 이의 신청을 냈었다.

그러나 법무부는 마에다 기자가 한국 체류 취재활동 중 우리 정부 정책과 일반 정세에 관해 계속해서 왜곡 보도해왔으며 우리나라의 국시를 부정해왔다는 점을 들어 이의신청을 기각하고, 출국시한은 마에다 기자의 요청대로 12일까지로 연장했다고 당국자는 말했다.

미네르바 체포 순간, 우리는 미네르바가 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8일 오전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첫번째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8일 오전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첫번째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 청와대

관련사진보기


이뿐만이 아니었다. 박정희 정권은 마에다 기자 '케이스'를 빌미로 마이니치 신문의 배포 자체를 금지시켰다. "국헌(國憲)을 문란하게 하거나 공안-풍속 등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간행물이 수입될 때 정부는 그 배포 또는 판매를 중지시킬 수 있다"는 외국간행물 수입배포에 관한 법률이 근거였다.

이처럼 박정희 정권은 외국 기자들의 보도 활동을 사실상 철저히 통제했다.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판단되는 경우는 외신을 삭제하거나 배포까지 금지시키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그때 지칭했던 '국시'나 '국헌'은 사실상 '박정희' 자체였음을 지금 우리는 안다.

그래서 더욱 서글픈 현실이다. 도무지 마에다와 미네르바의 차이를 모르겠다. 아무리 무슨 법을 운운해도 유종일 교수 말처럼 "유신시대처럼 말문을 막기 위해 잡아간 것"으로 보일 뿐이다. 30년이란 시간을 사이에 두고 있는데도, 1979년 마에다와 2009년 미네르바는 달리 보이지 않는다.

6월 항쟁 20년 기념 대토론회에서 이진로 영산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하는 범위와 수준이 언론의 자유를 나타낸다"고 했다. 언론은 자본으로 통제하고, 자본이 통하지 않는 누리꾼은 법으로 통제하려는 'MB 국시'가 가당찮은 수준을 드러냈다. 이제 그 사람이 진짜 미네르바인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사람이 체포된 순간, 우리는 '미네르바'가 됐다.


태그:#미네르바, #마에다, #긴급조치, #박정희, #사이버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