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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주의자들은 1793년 프랑스 대혁명 당시의 '과격파'들처럼 전 지구적인 사회정의를 위해 투쟁하는 것을 임무로 삼아야 한다. 억눌린 분노를 밖으로 표출시키고, 민주적인 집단 저항운동의 불씨를 지피는 것이야말로 이들이 할 일이다.

 

그리하여 세계가 바로 서도록, 다시 말해서 머리는 위를 향하고 다리는 아래를 향하도록 잡아주어야 한다. 시장의 손이라는 보이지 않는 족쇄를 부숴야 한다. 경제는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다. 경제란 그저 한낱 도구에 불과하므로, 인류 공동의 행복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봉사하도록 해야 한다.(장 지글러, <탐욕의 시대>, 15쪽)

 

오늘날 이처럼 거리낌 없이 혁명을 선동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바로 장 지글러(Jean Ziegler)다. 저명한 기아문제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라는 책을 통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그는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오랫동안 일했으며, 지금은 유엔 인권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거리낌 없이 혁명을 선동하는 사람

 

그렇다. 그는 무슨 혁명조직의 활동가도 아니다. 그런 그가 왜 '과격파'들처럼 혁명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그가 목격한 참혹한 현실이 바로 이러한 결론으로 인도했기 때문이다. 이념이 아니라 생생한 현실로부터 그의 진단과 처방이 나온 것이기에 그의 선동은 너무도 힘이 넘친다.

 

나는 노동조합 지도자가 아니며, 인민해방전선을 이끄는 리더도 아니다. 그저 제한적인 영향력을 가진 한 명의 지식인일 뿐이다. 나의 책은 내가 돌아다니며 목격한 세계에 대한 나의 진단을 제시한다.(위의 책, 332쪽)

 

그는 도대체 어떤 현실을 목격한 것일까. 그리고 어떤 현실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싶은 것일까. 바로 기아와 부채로부터 발생하는 지구적 규모의 경제적 살인이다.

 

오늘날 인류가 처한 비참함의 정도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시대에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참담하다. 5세 미만의 어린아이들 중에서 1천만 명 이상이 해마다 영양 결핍이나 각종 전염병, 오염된 식수, 비위생적인 환경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이들 중에서 50퍼센트는 지구에서 가장 가난한 6개국에서 발생한다. 희생자들의 90퍼센트가 남반구 국가들의 42퍼센트에 집중되어 있다. 이 아이들의 생명은 재화의 객관적인 결핍이 아니라, 재화의 공평하지 못한 분배, 다시 말해 인위적인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다.(위의 책, 35쪽)

 

2006년 북반구 선진 산업 국가들이 제3세계 122개국의 개발을 위해 지원한 돈은 580억 달러였다. 같은 해 제3세계 122개국은 부채에 대한 이자와 원금 상환 명목으로 북반구 은행에 포진한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에게 5,010억 달러를 지급했다. 오늘날의 세계 질서 속에서 부채는 그 자체로 구조적 폭력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위의 책, 79쪽)

 

인위적 결핍에서 비롯된 기아와 구조적 폭력인 부채

 

지구상에서 현재 5초마다 10세 미만 어린이 한 명이 기아 또는 영양 결핍으로 인한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2007년 한 해 기아로 사망한 사람의 수는 같은 해 일어난 모든 전쟁의 사망자를 더한 수보다 많은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리고 제3세계 국가들의 감당키 힘든 막대한 부채는 기아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들을 가로막고 있다. 그러나 그는 기아와 부채로 인한 끔찍한 현실을 고발하는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 원인을 파헤친다.

 

부채와 기아, 기아와 부채. 악순환을 거듭하는 이 두 가지의 조합에는 출구가 없어 보인다. 도대체 누가 이와 같은 살인적인 조합을 만들어냈는가? 누가 이와 같은 상황을 그대로 유지하려 하는가? 이와 같은 교착 상태를 이용해서 천문학적인 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인가?(위의 책, 247쪽)

 

그는 이 질문에 단호하게 답한다. 바로 '자본주의가 낳은 봉건주의자들'이 그 원흉이라고. 다시 말해 거대 다국적 기업들이 범인이라는 것이다. 그는 '세계화 지상주의자들'의 첨병인 거대 다국적 기업들의 횡포를 실명을 밝혀가며 놀랍도록 생생하게 고발한다. 네슬레, 몬산토, 노바티스, 다우케미컬, 지멘스, 나이키 등이 대표적인 제물이 되었다.

 

제3세계의 막대한 부채 문제, 그리고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아와 빈곤의 실태를 이 책보다 더 생생하게 고발한 책, 인류의 책임과 연대를 이보다 더 절절하게 호소한 책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기아로 죽은 아이는 살해당한 것과 마찬가지

 

그는 저자후기에서 부채와 기아라는 두 개의 강력한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자고 다시 한 번 직접적이고 강력한 선동을 한다. 그렇다. 이스라엘 군대에 의한 팔레스타인 민간인 학살만 학살이 아니다. 부채와 기아로 인한 전지구 규모의 경제 학살을 우리의 시야에 넣어야 한다.

 

기아는 절대로 어쩔 수 없는 운명이 아니다. 기아로 죽은 어린아이는 살해당한 것과 마찬가지다.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편성된 세계의 경제, 사회 정치적 질서는 살인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부조리 그 자체다. 현재 세계를 지배하는 질서는 살인적일 뿐 아니라 아무런 정당한 필요도 없이 살인을 자행하고 있다. 그 같은 질서는 뿌리 뽑아야 마땅하다. 나는 이 책이 그와 같은 투쟁을 위한 무기가 되기를 소망한다.(위의 책, 342쪽)

 

그런데 그의 이러한 선동은 귓가를 스치는 거리의 확성기 소리처럼 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으로부터의 공명을 불러일으킨다. 그 비밀은 바로 '출생의 우연'이다. 자신이 태어난 곳이 예정이나 필연이 아닌 우연에 불과했다는 것을 한 번만이라도 상기한다면, 기아로 죽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시급히 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어떻게 품지 않을 수 있겠는가.

 

출생의 우연이라는 요소를 제외한다면, 나와 이 고통받는 사람들을 갈라놓을 다른 요소들이란 전혀 없다.(위의 책, 331쪽)

 

그는 기아와 부채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절박함, 정당성, 가능성, 그리고 투쟁의 수단들을 이 책에 담았지만, 그 결과를 무작정 낙관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그는 분명한 확신 하나를 갖고 있다.

 

투쟁의 결과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확실한 것도 있다. 일찍이 파블로 네루다가 말하지 않았던가. '그들은 꽃이란 꽃은 모조리 꺾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결코 봄의 주인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위의 책, 344쪽)

 

국방부가 좀 나서서 널리 읽혔으면

 

감히 이 책을 지구상에서 가장 불온한 새 책이라 말하고 싶다. 그는 지구를 누비며 겪은 직접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지구상의 모든 시장 지상주의자들을 향해 거침없는 일격을 날리고, 일국을 넘어선 전지구 규모의 변혁을 촉구하고 있다. 무엇이 이보다 더 불온할 수 있겠는가.

 

국방부가 이왕이면 이 책도 '불온서적' 목록에 꼭 넣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좀 더 널리 읽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최광은 기자는 사회당 대표입니다. 이 기사는 <프로메테우스>, <울산노동뉴스>에도 보냈습니다.


탐욕의 시대 - 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갈라파고스(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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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기아, #부채, #학살, #세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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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비교정치, 한국정치 등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는 연세대학교 복지국가연구센터에 적을 두고 있다. 에식스 대학(University of Essex, UK)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모두에게 기본소득을>(박종철출판사, 2011) 저자이고,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asic Income Earth Network) 평생회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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