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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바비
 한국인 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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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 '바비(Barbie)'는 전 세계 여자아이들이 한 번쯤 원했던 인형이다. 바비 인형만큼 미국을 넘어서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스타는 손으로 꼽힐 정도다. 바비는 단순한 인형뿐 아니라 인형 옷, 장신구 등 파생상품까지 아우르는 거대 산업이 되었다. 바비가 1년 동안 벌어들이는 수익은 12억 달러가 넘는다.

인형의 세계에서 다양한 경쟁자를 물리치고 아직까지 장수하는 인형은 바비가 유일하다. 2009년은 바비가 이 세상에 나온 지 50살이 되는 해다. 50주년을 기념해서 뉴욕에서 패션 디자이너 50명이 모여 바비에게 영감을 받은 옷으로 패션쇼도 한다. 50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바비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살펴보면 그건 전쟁이나 다름없다.

바비의 본명은 바브라 밀리센트 로버츠이고 위스콘신주 교외 윌로스라는 마을 출신이다. 금발의 바비는 1950년대에 발달하기 시작한 백인 중심 교외의 가치를 담고 있다. 소비 수준이 높아진 중산층 백인을 중심으로 바비는 자신의 왕국을 건설해 왔다.

흑인 바비, 히스패닉 바비로 영역을 넓히더니 나중에는 프랑스 바비, 중국 바비, 중동 바비, 한국 바비까지 진출한다. 기본 백인 골격은 유지한 채 피부색, 머리, 옷만 살짝 바꾸면서 바비다움은 그대로 유지하며 바비 인형의 제국을 건설한다.

종이인형 놀이하던 딸에게 얻은 아이디어

바비의 창작자 루쓰 핸들러(왼쪽)과 그의 남편 엘리엇
 바비의 창작자 루쓰 핸들러(왼쪽)과 그의 남편 엘리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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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의 어머니는 장난감 회사 마텔의 공동 창립자 엘리엇의 부인 '루쓰 핸들러'였다. 그녀는 딸이 종이인형을 가지고 놀면서 어른으로 대하는 걸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 그 당시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인형은 모두 아이 인형이었다. 그녀는 어른 인형이 아이들에게도 통할 수 있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남편에게 이 아이디어를 제안했지만 매몰차게 거절당했다.

루쓰와 엘리엇 부부가 자식들을 데리고 1956년 독일로 가족여행을 떠났을 때, 그곳에서 우연히 어른 모양 인형 빌드 릴리를 만났다. 그게 바비 인형에 결정적인 영감을 주었다. 릴리 인형은 원래 독일신문 빌드 짜이퉁 신문에 연재하던 만화 캐릭터였다. 원래는 성인용으로 인형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아이들에게도 인기를 얻게 되었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루쓰는 릴리 인형을 모델로 해서 비슷한 인형을 만들어서 자신의 딸 '바브라'의 이름을 따서 '바비'라고 지었다. 바비 인형은 1959년 3월 9일 뉴욕에서 열린 미국 장난감 박람회에서 처음으로 세상에 나왔다. 바로 이날이 바비의 공식 생일이다.

바비 인형이 처음으로 미국 시장에 데뷔했을 때, 판매상들은 바비 인형의 가슴이 너무 나와서 싫어했다. 이들은 아이들 인형으로 지나치게 성적인 바비가 적합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런 우려에도 바비 인형은 첫해에 35만개나 팔리는 인기 상품이 되었다. 전쟁 이후 1950년대 미국 경제는 호황기였고 여가산업도 발달하고 있었다. 부유해진 부모들은 베이비붐 세대를 위해서 장난감을 풍족하게 사줄 수 있었다. 바비는 그런 시대 배경 속에서 무럭무럭 커갔다.

패션제국의 공주

우주인, 에어로빅 강사, 비행기 승무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바비들
 우주인, 에어로빅 강사, 비행기 승무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바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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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인형은 전 세계 150개국으로 수출하는 세계적 아이콘이 되었다. 인형보다 더 많이 팔리는 것은 옷과 액세서리다. 다른 패션용품으로 색다르게 변신하는 바비는 소녀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이다.

성인여성체형의 인형은 바비가 처음이 아니다. 로마유적에서 발굴된 150년경에 제작된 상아 인형도 성인 여성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귀족이나 왕족의 아이를 그린 그림에서 성인 여성 인형을 가지고 노는 장면이 있었다. 성인 여성 인형이 비교적 오랜 역사를 지녔다는 것은 이런 역사적 증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9세기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인형 제작이 비교적 활발했다. 이 인형은 주로 패션용품을 광고하는 목적으로 쓰였다. 그후에 등장한 여성잡지가 그 역할을 맡기까지 인형은 현대의 마네킹처럼 패션의 장이었다. 패션의 역사를 기억하기라도 하는 듯 바비 인형이 장난감 박람회에서 처음 소개될 때 그녀의 직업은 10대 모델이었다.

바비는 단순한 인형이 아니라 당대의 최신 유행을 재현하는 패션모델이다. 바비인형은 그레이스 켈리, 마릴린 먼로, 혹은 재클린 케네디를 그대로 흉내 내기도 했고, 베네통, 크리스챤 디오르, 도나 카란, 디오르, 베르사체, 캘빈 클라인 등 브랜드의 옷을 입었다. 아이들은 바비가 입는 옷을 통해서 당대의 패션감각을 익혔다.

바비는 100여 개가 넘는 직업을 가졌다. 비행 승무원, 간호사, 에어로빅 강사, 우주인, 교사, 요리사 등이 바비가 그동안 거쳐간 직업이다. 이런 직업을 가지려면 그에 맞는 패션이 필요했다. 직업에 어울리는 옷과 액세서리를 갖추어야 했다. 바비의 직업은 패션을 통해서 완성된다.

마텔사의 50명의 디자이너와 12명의 헤어드레서 그리고 수십명의 마케팅 직원이 바비의 패션을 관리하고 있다. 이 숫자만 봐도 바비 인형의 패션이 얼마나 큰 산업인가.

장난감 제국에 일어난 전쟁

최초의 바비인형, 자세히 보면 40대 여성의 얼굴이다. 나중에 마텔사는 시장조사를 통해서 외모를 더 순하고 어려보이게 바꾼다.
 최초의 바비인형, 자세히 보면 40대 여성의 얼굴이다. 나중에 마텔사는 시장조사를 통해서 외모를 더 순하고 어려보이게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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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의 인기는 그냥 얻은 것이 아니었다. 여성단체는 바비의 지나치게 마르고 볼륨있는 몸매는 아이들에게 비정상적 모델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음식물섭취장애저널에 따르면 바비를 인간으로 봤을 때 가슴이 38인치이고 허리는 18인치이며 엉덩이는 34인치인 기괴한 몸매의 여자가 된다. 이런 비판여론을 잠재우려고 바비의 허리는 점점 두꺼워졌고 가슴도 줄어들었다.

바비는 서구소비자본주의의 상징이다. 미국의 아이콘 바비는 처음 제작부터 일본에서 시작되었다. 비용을 줄이려고 1967년에 대만으로 공장을 옮겼고 1987년에는 인도네시아와 중국으로 옮겼다.

2007년 마텔사는 장난감에서 납성분 페인트가 발견되어 대대적인 리콜을 실시했다. 값싼 비용을 맞추기 위해서 마텔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동착취공장(Sweat Shop)을 돌렸다.

바비 공장노동자는 일주일 내내 하루에 15시간씩 일해야만 했다. 40달러 바비 인형을 조립한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임금은 고작 19센트였다.

아름다운 몸에 대한 편견 조장이나 제3세계 노동력 착취에 대한 비판 외에도 바비는 여러 다른 인형들과의 경쟁도 이겨내야 했다. 한 예로 하스브로사는 바비와 경쟁하기 위해 '잼'을 1985년에 출시하였다. 그러나 잼은 마텔의 바비에 의해 시장에서 퇴출되었다.

그에 비해 바비와 아주 비슷한 인형이었던 신디는 잼보다 막강한 경쟁자였다. 이웃집 소녀 외모의 신디는1962년 만들어져 1970년대까지 영국과 유럽에서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 이 기간동안 마텔사는 유럽에 바비를 수출하려고 두번이나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다가 1970년대 후반 유럽에 인기를 얻은 미국 텔레비전 시리즈 '댈러스'와 '다이네스티'의 도움으로 미국 인형 바비는 유럽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신디는 마텔사의 경쟁사 하스브로사에 인수되어 그 인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마텔사는 이번에는 법적 장치를 모두 동원해서 신디의 새로운 모델이 바비를 닮았다고 주장하면서 여러나라에서 소송을 벌였다. 법정 투쟁의 결과 상당수 국가에서 신디는 금지되었다. 하스브로사는 신디의 머리를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당시 신디의 매출은 1억 달러 정도였는데 2천만 달러로 급격히 줄었다.

2001년 MGA사에서 도입한 브라츠.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바비에 위협적 존재가 되었다.
 2001년 MGA사에서 도입한 브라츠.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바비에 위협적 존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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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바비가 맞이한 경쟁상대는 MGA의 브라츠(Bratz) 인형이다. 브라츠는 큰 머리, 아몬드 모양의 큰 눈, 도톰한 입술과 마른 몸을 가진 새로운 인형이다.

착하기만 한 바비의 이미지와 달리 브라츠는 섹시하고 자유분방한 도시 이미지로 새로운 세대의 취향과 잘 맞았다. 2001년에 시장에 나온 브라츠는 놀라운 성장세로 패션인형 시장의 40퍼센트를 차지하는 제국을 건설한다.

심지어 영국시장에서는 브라츠가 바비를 앞서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전체 시장의 60퍼센트를 쥐고 있는 바비에게 심각한 위기상황이었다.

바비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마텔사는 브라츠를 디자인한 카터 브라이언트가 마텔사에 재직하던 시절 브라츠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걸었다. 마텔사가 디자이너의 생각까지 소유권을 주장한 것은 너무하다 싶었지만, 판결은 마텔사의 승리였다. 이 때문에 브라츠는 2009년 2월 11일이면 매장에서 사라질 운명이다.

그러나 이처럼 지나치게 공격적인 바비의 저작권 및 상표권 주장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사회적 반발이 일어나고 있기도 하다. 마텔사는 심지어 자선단체에서 바비를 쓰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바비의 팬이었던 사람들이 조직한 반-바비클럽은 바비가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주장한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매년 대안 바비 박람회가 열린다. 시각장애인 바비, 동성애 바비, 다문화 바비 그리고 참전용사 캔이 주인공이다.

바비는 인기있는 패션 인형을 넘어서 전 지구적 현상이 되었다. 바비는 인형을 가지고 놀며 세상을 배우는 아이들에게 옷 입는 법을 가르치고 다양한 직업의 세계로 안내하기도 했다. 백인 바비가 흑인 바비, 동양인 바비, 히스패닉 바비와 함께 어울려 사는 평화로운 궁전으로 초대하기도 했다.

바비는 소비주의, 자본주의의 공주라는 독점적인 지위를 50년간 유지하고 있다. 착하고 친절한 이미지의 바비 뒤에는 고도의 마케팅 전략과 최고의 디자이너와 피도 눈물도 없는 변호사가 버티고 있다.


태그:#바비인형, #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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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협 기자는 미국 포틀랜드 근교에서 아내와 함께 아이를 키우며, 육아와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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