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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에서 돌아온 날 큰일을 당하신 보경 쌤~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찬욱이는 그날 학교에서 보경쌤의 압수수색 장면을 직접 봤다고 해요. 학교에서 담배 피우시던 그분들! 반성하세요."

 

경남 산청 간디학교 학생이 쓴 글이다. 이 학교 동아리 <역사사랑>(회장 최민경)이 지난 해 12월 말 회지 <보경쌤과 함께하는 역사사랑-국가보안법 폐지>를 냈다. '보경쌤'은 이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최보경 교사를 말한다.

 

최 교사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어 현재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관련 기사 보기). 경남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는 지난 해 2월 24일 최 교사의 집과 간디학교 교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여 문서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가져갔다.

 

간디학교 학생들은 압수수색부터 재판 등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기록한 책을 펴냈다. 학생들은 247쪽에 걸쳐 '보경쌤을 위한 촛불문화제를 열다'와 '보경쌤 공판이 열리다' '보경쌤을 위한 음악회가 열리다' '보경쌤을 위한 후원의 밤이 열리다' 등의 제목으로 정리해 놓았다.

 

또한 교사·학부모와 함께 진주에서 세 차례 국가보안법 폐지 촛불집회를 열고, 학교에서 릴레이 단식을 벌이기도 했다.

 

책 속에는 '국가보안법 전문'을 게재해 놓았고, '국가보안법 60년'이라 하여 그동안 일어났던 주요한 사건들을 정리해 놓았다. 또 최 교사와 관련된 경찰의 출석요구서와 학생들의 '공안당국 불법 압수수색과 우리들의 수업권 침해 반대 서명', 기자회견문, 성명서 등을 실어 놓았다. 최보경 교사가 지난 9월 2일 첫 공판 때 낭독한 글과 <오마이뉴스> 등에 나온 기사들이 책 속에 담겨 있다.

 

최민경 회장은 "역사사랑 때문에 눈물도 많이 쏟았지만 그만큼 웃고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말 하는 동아리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억세게 변한 걸지도 모르겠다"면서 "2004년과 같은 '국보법 폐지'를 외치는 것이 씁쓸하다"고 밝혔다. 간디학교 학생들은 2004년 학교 앞 국도에서 국보법 폐지 1인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우리 보경 쌤을 지켜주세요"

 

학생들은 "국보법 철폐, 우리 보경 쌤을 지켜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최보경 교사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사건과 관련해 느낀 점을 실어 놓았다. 1차 공판을 다녀온 안수정(1년) 학생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국가보안법에 걸린 사람은 100이면 100 구속된다는데 걱정이다. 나름의 대안학교에서 진짜 대안 수업을 하시는 보경쌤. 당신이 어디론가 가버리신다면 그것도 당신의 뜻이 아닌 부당한 일이라면 우리는 정말 많이 슬플 거예요. 하지만 희망을 가지세요. 아니 우리가 같이 걸어온 길을 보면 결코 암울하진 않잖아요. 힘을 내세요. 당신에게는 우리가 있습니다. 보경쌤 파이팅!"

 

김나래(2년) 학생은 2차 공판을 다녀와서 "2차 공판은 아주 짧게 끝난 것이라고 하는데 내게는 무척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면서 "남은 내 인생에서 법정에 갈 일이 영원히 없었으면 한다, 그래도 다음번에 또 보경 쌤께 힘이 되기 위해서 가야 한다면 또 가야지"라고 밝혔다.

 

김윤정(1년) 학생은 지난 11월 진주(차 없는 거리)에서 열린 음악회에 참여한 뒤 "진주 공연인 만큼 연습도 더 열심히 많이 했다"면서 "추워서 힘들었지만 보경 쌤은 지금 우리보다 훨씬 힘드실 거라고 생각하면서 음악회를 잘 마쳤다"고 말했다.

 

안현진(1년) 학생은 "국가보안법이라는 법이 21세기의 한국에 아직도 존재해서 사람을 잡아들일 수 있다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김서경(1년) 학생은 "보경쌤이 국보법에 걸린 일은 보경 쌤만의 일이 아니다, 전국에 무수히 많은 역사교사들 중 한 명의 일이 아니다. 너의 일이고 나의 일이고 우리의 일이다"고 말했다.

 

이슬범(1년) 학생은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데, 국가보안법은 아직 그 시대에 약간은 뒤처져 있는 듯 하다"고, 허예림(2년) 학생은 "쌤을 통해 저희는 많은 성장을 거듭합니다, 부디 힘을 잃지 마시고 언제든 힘을 내시는 보경쌤이 되어주세요"라고 밝혔다.

 

"저는 속으로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왜냐면요. 항상 웃으시니까요. 수업할 때 의자가 몇몇 비어 있어도, 법원 재판장 앞에서도, 힘든 상황에서도 항상 웃으시는 모습을 존경합니다. 쌤. 쌓아 올리기는 어렵지만 무너지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에요. 그러니까 저희가 선생님께 실망하지 않도록 항상 당당하고 곧은 모습을 보여주시길 정말 바랄게요" (1년 장익태).

 

"나는 보경쌤의 수업을 들으면서 오히려 양측의 이야기를 듣는 법을 배웠다. 편향된 의식을 '세뇌'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수구들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이면들을 배우면서 나의 중심을 찾아가게 되었다. 힘없는 소수들의 역사 역시 존재한다는 것을 선생님의 수업을 배우면서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의 수업을 사랑한다"(2년 최민경).

 

"난 지난해 보경쌤 수업을 처음 들었어. 보경쌤의 수업은 '역시 우리 학교다' '간디스럽다'는 생각을 들게 만든 수업 중 하나였어. 지금까지 받아왔던 역사 수업 중 최고였어. 중학교 때까지 받던 일방적이고 따분한 수업이 아니었거든. …못된 국가보안법, 폐지되어 마땅한 법에 난, 우린 결코 굴복하지 않을 거야. 이제 그만 좀 하시지?" (2년 김찬욱).

 

"나는 몰랐다. 최보경 선생님이 수사를 받기 전까지는. 국가보안법이라는 것에 대해서 아는 것 하나 없었는데 2월 28일 이후로 알게 되었다. 국가보안법이라는 것이 과연 현실에 필요한 것일까? … 정부는 지금 통일교육을 하는 선생님들을 잡아가두기에 바쁘다. 아예 싹을 자르려고?" (3년 김성은).

 

졸업생 "회지는 역사사랑의 자랑"

 

최보경 교사한테 역사 교육을 받았던 졸업생들도 글을 썼다.

 

"보경쌤에겐 정말 열정이란 단어가 참 잘 어울린다. … 역사사랑을 5년 가까이 해왔던 나로선, 역시나 역사사랑 지도교사로서의 선생님을 제일 많이 봐왔다. …늘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할 수 있게 지켜봐주셨다. 그런 고통의 시간 후에 나왔던 회지는 역사사랑의 자랑이자 선생님의 자랑이었다"(6기 졸업생 김난슬).

 

"최보경 선생님은 당신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입니다. 대면하여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어서 잘은 모릅니다만, 당신네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으로 치자면 여기에 저도 있습니다. 만약에 끝까지 고집부리실 거면, 부디 제 컴퓨터 하드디스크도 압수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직 미혼인지라 자식은 없습니다만, 아쉬운 대로 부모님이 계시는 시간에 방문해 주세요. 물론 주말이어야 하고요. 이왕이면 제가 금강산에 가 있으면 좋겠지만, 사정상 그러지 못하는 점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1기 졸업생 이영석).

 

"올해 졸업했고, 지난 3년간 최보경 선생님의 수업을 들었습니다. … 저는 선생님의 어떤 부분이 국가보안법의 눈으로 봤을 때 문제가 되는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 하지만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은 선생님의 말과 활동에서 이 사회나 선생님의 교육을 받는 아이들에게 어떤 위험한 요소가 될만한 게 없다는 것입니다"(8기 졸업생 유지완).

 

"지난 3년 동안 해마다 보경쌤의 수업을 들었습니다. 해가 거듭될수록 지금까지 박제된 시각으로 접했던 '사람의 일'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마음이 동요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보경쌤은 스스로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자주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알려주셨습니다"(8기 졸업생 정김소리).

 

최보경 교사 "너희들이 나의 스승이다"

 

최보경 교사는 "너희들이 나의 스승이다"는 제목의 지도교사의 글에서 "우선 미안하다는 말부터 해야 하겠구나. 얘들아 미안해!"라고 했다.

 

압수수색 당한 지난해 2월 24일의 상황을 떠올린 그는 "국보법의 실체를 알고 살아왔고, 주변의 많은 양심적인 사람들이 국보법의 칼날에 희생되었기에 언젠가 나에게도 '국보법은 올 거야'라고 예상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벌어질 줄은 몰랐구나"라고 말했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무엇이 정상적인 것인지는 너희들이 판단하렴. 모든 것은 너희들의 몫이다. 선생님이 국보법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을 수도 있을 거야. 그러나 역사의 심판은 냉정하고 무서운 거야. 진실의 역사는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그들이 지금은 한 줌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지만, 그 권력은 유한한 것! 진실은 무한한 것이다. 무엇이 진실인가는 역사가 증명할 거야."

 

최보경 교사는 글 마지막에 "너희들 보며 힘을 얻는다, 희망을 본다, 나의 갈 길은 다시 찾는다. 결코 너희들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노력할게, 고맙다"고 말했다.

 

검찰은 최보경 교사가 지도교사로 있는 간디학교 동아리 '역사사랑'이 1999년부터 2007년까지 펴낸 회지도 이적표현물로 보고 있다. 최 교사에 대한 4차 공판은 오는 22일 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역사사랑> 편집부 학생들은 책 마지막에 다음과 같이 한마디씩 해놓았다.

 

"얘들아! 들어봐 들어봐, 우리 회지가 글쎄, 국가보안법에 걸렸다지 뭐야! 이럴 수가! 뭐? 신입생, 너네랑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노노~ 아니지, 이번 회지가 국보법에 걸린다면 어쩔 거야? 흑흑. 우리, 터놓고 얘기 좀 해보자꾸나! … 그래 그래, 모두의 말이 다 맞다. 하지만 우린 다시 회지를 만들고 있구나~ 우리의 고생과 노력이야말로 국가보안법보다 더더더 중요한 거야! 우리 앞으로 더 열심히 만들자 얘들아! 이번 회지도, 다음 회지도 멋있게! 역사사랑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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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국가보안법, #간디학교, #최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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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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