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내년 5월 개원을 앞두고 있는 가톨릭중앙의료원(이하 중앙의료원) 산하 서울성모병원이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초청하기 위해 분주하다는 소식이다. 서울성모병원은 국내 단일병원으로는 최대인 지상 22층, 지하 6층, 1200병상 규모로 지어질 예정인데, 중앙의료원은 이를 감안해 내년 4월 말로 예정된 개원식에 교황을 참석시켜 국민적 관심을 모으려고 하고 있다.

 

중앙의료원측은 서울성모병원이 가톨릭 내에서는 세계최대병원인데다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공식 승인을 받아 병원공사를 시작했고 교황이 아직 한국을 방문한 적이 없어 초청할 근거가 된다고 보고 있다. 그렇지만 의료원의 기대와 달리 교황이 한국에 올지는 불분명하다. 병원개원 외에는 교회적으로 마땅한 특별한 사안이 없고 중국이나 일본, 필리핀 등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을 제치고 한국만을 위해 온다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이러한 의료원 측의 움직임에 대해 가톨릭 내 진보진영에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천정연) 권오광 대표는 전화통화에서 "교황을 초청하기 전에 의료원 산하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면서 "의료원은 올 2월 천주교주교회의 산하 정의평화위원회가 천주교회 내 병원을 포함한 각종 기관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촉구한 공식문서마저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권 대표는 강남성모병원은 그동안 정규직이 담당해온 간호보조업무를 2004년부터 계약직 노동자들에게 맡기고 이들을 2006년에 파견직으로 전환시킨 후 지난 9월 30일 파견근로계약 2년이 만료된 노동자 28명을 계약해지했다고 밝혔다. 현재 강남성모병원은 11월 7일 서울중앙법원이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직접 고용의 의무가 있다고 할 여지가 많다"는 판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직접 고용 불가'를 내세우며 대화조차 거부하고 오히려 용역들을 동원해 해고자 농성장을 수차에 걸쳐 강제철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18개 노동사회단체로 구성된 '강남성모병원비정규직지원대책위원회'(강남성모 지대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등이 각각 성명과 병원방문을 통해 병원 측이 대화에 나서 노동자들의 요구를 수용하라고 요구했지만 성모병원측은 "정부가 정한 법을 따랐을 뿐"이라며 병원은 고용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해고노동자와 병원 간에 갈등이 계속되자 성탄절을 하루 앞둔 지난 24일 오후 성모병원 중앙병동 앞마당에서는 천정연 주최로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노동자와 함께하는 성탄 미사'가 열렸고 농성 100일째인 25일에는 서울 명동성당 앞에서 강남성모 지대위 주최로 천주교 신자들과 시민들을 대상으로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을 호소하는 기자회견과 선전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명동성당 앞 집회 참석자들은 "교회가 법대로 한다고 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법을 따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면서 "사람을 죽이는 법이라면 가톨릭의 이름으로 사람을 살리는 법으로 바꾸어야지 그 법의 앞잡이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며 병원이 비정규직 법을 앞세우는 것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라는 교회 전통과 도덕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한국 가톨릭이 성탄절에 소수자인 비정규직을 내치고 있는 동안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지난 22일 고위 성직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성적 소수자인 동성애자들을 비판하는 발언을 해 물의를 빚었다. 교황은 남녀의 역할은 사회에 의해 결정된다는 성별이론을 비판하면서 가톨릭교회는 인간이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을 막고 일종의 인간 생태학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교황의 발언은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60여 개국이 동성애 처벌 철폐를 요구하는 유엔 결의안이 추진된 것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지만 교황이 직접 나서면서 동성애자들과 인권단체들의 반발은 더욱 커졌다. 영국의 기독교 동성애 운동단체(LGCM)를 이끌고 있는 샤론 퍼거슨 목사는 "(교황의 발언은) 무책임하고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고 공격했고 이탈리아 게이운동가인 아우렐리오 멘쿠조 역시 "교황의 발언은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오히려 자연에 거슬린다." 는 입장을 표명했다.  논란이 확대되자 교황청 대변인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는 교황의 발언은 동성애자를 직접 비난하기 위한 발언이 아니라고 해명했으나 비난의 목소리는 더 커지고 있다.  

 

양준석 '평화를 여는 가톨릭청년회' 전 대표는 "교황의 발언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라면서 "베네딕토 16세는 현대교황 중 가장 수구적인 인물이며 종교적 자유·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존중을 강조한 '2차 바티칸공의회'를 거꾸로 돌리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로 남미의 해방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 신부를 파문하는데 앞장선 중세의 '종교재판소장' 같은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베네딕토 16세는 2004년 7월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교회와 세계에서 남성과 여성의 협력에 관하여'라는 교황청의 문건을 작성한 바 있고 2006년 9월 고국인 독일을 방문해서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가 가져온 것은 칼을 앞세워 믿음을 전파하는 식으로 사악하고 비인간적인 것들뿐"이라고 말해 무슬림의 반발을 샀다. 2007년 5월에는 "가톨릭교회는 중남미 원주민들에게 자신을 강요하지 않았으며, 당시 인디언 부족들이 기독교를 조용히 갈망했기 때문에 유럽 선교사들을 환영했다"고 말해 원주민 지도자들의 반발을 사는 등 '오럴해저드'를 서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가톨릭 중앙의료원측이 비정규직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공식적으로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초청한다면 한국가톨릭은 국내외적인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의료원이나 교황 모두 사랑과 관용을 외치지만 결국 둘 다 소수자를 차별하고 냉대하는 '모럴해저드'와 '오럴해저드'의 만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앙의료원이 진정으로 교황을 초청하고 싶다면 먼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이다. 중앙의료원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덧붙이는 글 | 백찬홍 기자는 정의 평화를 위한 기독인 연대 운영위원, 제3시대 그리스도 연구소 상임연구위원으로 일했으며 지금은 유영모, 함석헌 선생을 기리는 재단법인 씨알 운영위원이다


태그:#서울성모병원,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유영모.함석헌 선생을 기리는 씨알재단에서 홍보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씨알정신을 선양하고 시민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