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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다. 채움만을 위해 달려온 생각을 버리고 비움에 다가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고 그 비움이 가져다주는 충만으로 자신을 채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용서이고 이해이고 자비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나를 얽어매고 있는 구속과 생각들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것. 삶의 예속물이 아니라 삶의 주체로 거듭난다. 진정한 자유인에 이르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운 마무리다." -'아름다운 마무리'에서

 

아메리카 인디언 퐁카 족은 12월을 '무소유의 달'이라고 했다. 현대인이 달의 명칭을 숫자로 표기한데 반해 그들은 자연의 변화에 따름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달의 명칭을 글로 표현했다. 퐁카 족이 말한 '무소유'는 법정 스님이 말하고 있는 '비움'이다. 그리고 온갖 채움으로 자신을 얽어맨 것들로부터의 자유이고 용서이고 이해이다.

 

12월의 끄트머리에 와있다. 12월은 마무리하는 달이고, 지난 시간을 반성하는 달이면서 새로운 각오를 하는 달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 해의 마지막 달에 읽는 책도 지나치게 가볍거나 무거운 책보단 그윽한 국화향 같은 책을 읽으며 자신을 돌아보고 내면을 살찌우는 책이 제격이 아닌가 싶다.

 

그럼 그런 책이 있냐고? 있다. 법정 스님의 <아름다운 마무리>다. 이 책은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생활하면서 느꼈던 단상과 개인의 병고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듦에 따른 소박한 깨달음이 들어있다. 또 자연을 아무렇게나 대하고자 하는 현실을 일깨우는 글도 담겨있다.

 

"우리 국토는 오랜 역사 속에서 조상 대대로 이어 내려온 우리의 몸이고 살이고 뼈이다. 이 땅에 대운하를 만들겠는 생각 자체가 우리 국토에 대한 무례이고 모독임을 알아야 한다. 물류와 관광을 위해서라고 하는데 몇 푼어치 경제 논리에 의해 이 신성한 땅을 유린하려는 것은 대단히 무모하고 망령된 생각이다."  - '한만도 대운하는 안 된다'에서

 

법정 스님의 55편 글 중에서 유일하게 노여움이 묻어나고 글이다. 그는 있으면서 없이 살고 있다. 노구에도 스스로 의식주를 해결한다. 스스로 흙을 일구고 빨래를 하고 밥을 짓는다. 작은 공터라도 그에게 소중한 생명터로 인식된다. 이런 인식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사람들만이 사는 곳이 아니라 수많은 생명체들이 서로 주고받으면서 어울려 사는 생명의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헌데 요즘엔 대운하라는 말은 쏙 빼고 4대강 정비 사업이라는 눈가림으로, 늘어나는 실업자를 구제한다는 명목으로 국토를 파헤치려고 하고 있다. 이 소식을 들은 스님은 지금 오두막에 앉아서 무슨 생각을 할까. 아마 흙과 더불어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떠올리며 깊은 한숨의 눈을 감고 있지는 않을까.

 

다른 이야길 해보자. 책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 법정 스님의 글을 읽다보면 꽃과 새, 채소와 나무, 그리고 책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그는 스스로 인간과 같은 동물보다 꽃이나 나무, 새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살아있는 나무와 꽃들에게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식물들은 결코 정성들인 공을 저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산속 경험을 통해 얻은 깨달음이리라.

 

또 하나, 그는 종종 고전의 중요성을 말한다. 고전 속에 삶의 진리가 들어있음을 이야기하며 좋은 책을 읽음을 통해 삶의 내면을 살찌우고 편협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책을 읽으면 눈이 열리고 귀가 트이며 보편적인 지식과 교양을 익히면서 인간이 성장하고 형성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스님은 늘 책을 가까이 하고 즐겨한다. 그럼 법정 스님이 즐겨 읽은 책 중 감명 받았다는 책은 뭘까. 리영희의 <대화>이다.

 

<대화>는 저자 이영희 선생의 인생 회고록이다. 대화 형식으로 된 이 책은 지난 야만적인 세월 속에서 싸워왔던 한 지식인의 올곧은 삶과 사상이 담겨 있다. 법정이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도 바로 리영희의 그런 삶과 사상 때문이라고 한다.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그런데 세상은 시끄럽다. 마음을 정리하고 반성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때에 많은 이들이 거리로 나서고 있다. 그래도 많은 이들은 새해를 기다리고 있다. 새해엔 겨울이 아닌 봄의 생명과 희망이 오길 기다리고 있다. 한 해의 마지막 길목, 법정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읽으며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새해를 맞이하는 것도 괜찮을 듯싶다.

덧붙이는 글 | <아름다운 마무리> 법정 / 문학의 숲 / 11,500원


아름다운 마무리

법정(法頂) 지음, 문학의숲(2008)


태그:#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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