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쌀쌀한 겨울 기온이 온몸을 얼어붙게 하는 날이 연일 계속입니다. 지난 휴일에는 한 해의 액운을 쫒고 다가오는 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동짓날이었습니다. 팥죽 한 그릇 먹자고 며칠째 고향에 계신 어머니는 전화를 하셨습니다.

 

휴일 아침, 눈 대신 비가 내렸습니다. 비가 온 뒤엔 더 추워질 것 같습니다. 찬 기온을 느끼며 서둘러 고향으로 향했습니다. 작은언니와 형부도 마침 팥죽을 먹으러 온다는 연락이 있었습니다. 해마다 어머니는 직접 팥죽을 끓였지만, 3년 전부터 어머니는 동짓날 팥죽을 끓이지 않으셨습니다. 절이 집 가까이 있어 그곳에서 먹은 것으로 연말 연례행사처럼 여겨온 동짓날은 그렇게 점차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작년에도 겨우 어머니 덕분에 팥죽 한 그릇을 먹을 수 있었고, 올해는 어머니와 함께 절에서 동지기도와 더불어 팥죽을 먹게 되었으니 기분은 좋았습니다. 한 그릇이라도 먹게 하려고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전화를 했던 것 같습니다. 아침도 그른 채 절에 갔습니다. 낯익은 동네 어르신들이 오셔서 법당 안에 자리하고 계셨지요. 동지기도는 두 시간 가량을 하고서 마쳤습니다.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모여 죽 한 그릇을 맛있게 먹고 집으로 왔습니다.

 

따뜻한 아랫목에서 몸을 녹였습니다. 한참을 언니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고 있으려니 문득 어머니는 서랍에서 무얼 꺼냈습니다. 나름대로 빨간 포장지에다 무언가를 싸서 서툰 글씨체로 이름까지 적어둔 꾸러미가 나왔습니다. 언니와 저는 의아해 어머니를 바라봤습니다. 그런 딸들의 모습을 보고 웃으시며 하나씩 건네주셨습니다.

 

크리스마스 날, 외손자들에게 전해주라며 선물을 준비한 모양입니다. 포장지 안에 두 개씩 들어 있는 선물이었습니다. 삐뚤삐뚤한 글씨체가 참으로 낯익었습니다. 순간,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그냥 지나쳐도 괜찮을 텐데, 어머니는 일부러 장날 읍내에 나가 준비를 해 놓았던 것입니다.

 

꾸러미를 건네면서 어머니는 꼭 크리스마스 날 아침에 머리맡에 두라고 하셨습니다. 산타할아버지가 주신 선물이라고 말입니다. 아이들이 다 자라서 산타할아버지의 존재를 알고 있을 텐데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겠노라며 선물을 챙겼습니다. 돌아가면 행여나 외손자들이 볼까봐 조심조심 하라는 당부를 어머니는 잊지 않으셨습니다.

 

맛있는 팥죽 한 그릇으로 내년의 액운도 떨쳐버리고, 잘 익은 동치미 한 통을 얻어 어머니와 아쉬운 이별을 했습니다. 차에 올라타기 전까지도 어머니는 자꾸 선물이 보이지 않도록 잘 보관했다가 꼭, 크리스마스 날 아침에 머리맡에 둬야 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그 따뜻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질 수 있도록 그 역할을 잘 해야 할 텐데.

 

돌아오는 길, 저의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아직도 순수한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저의 마음은 자꾸만 무거워 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 저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아마도 어머니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랑합니다!


태그:#크리스마스, #선물, #어머니, #마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