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가족의 직업과 직위, 월수입, 학비조달자 등 개인 능력과 관련없는 사항까지 기업하도록 되어있는 국내 한 기업의 입사지원서
 가족의 직업과 직위, 월수입, 학비조달자 등 개인 능력과 관련없는 사항까지 기업하도록 되어있는 국내 한 기업의 입사지원서
ⓒ 인터넷 갈무리

관련사진보기


"가뜩이나 취업하기 어려운데… 쓰라면 써야지 어쩌겠어요."

올 2월 지방 소재 4년제 대학을 졸업 후 취업을 준비 중인 이정희(26·가명)씨. 이씨는 취업시즌을 맞아 입사지원서를 작성할 때면 한숨이 먼저 앞선다. 다수의 기업들이 입사지원서에 가족 신상 내용을 기입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씨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중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하셨지만 그동안 부끄럽게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며 "하지만 입사지원서를 쓰며 혹시 이로 인해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씨는 올여름 한 기업체 면접에서 면접관이 부모님의 학력을 거론하며 개인적인 사항을 꼬치꼬치 캐물어 난감했던 경험이 있다. "서류 전형에서 탈락하면 혹시 부모님 학력 때문은 아닐까란 생각에 거짓으로 기재한 경우도 있었다"고 말하며 이씨는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처럼 입사지원서에 업무 능력과 상관없는 내용을 기재하는데 고민하는 취업 준비생들의 수가 적지 않다. 지난 7월 인터넷 취업 정보 사이트 '커리어'의 설문조사(1131명)에 따르면 구직자의 75%(848명)가 "입사지원서에 업무 능력과 관계없는 과도한 개인정보 기재를 요구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기업체가 요구하는 개인정보의 구체적인 사항으로는 가족관련정보(직업·직위 등 48%)와 재산정보(45.8%)가 주를 이뤘으며 거주형태(24.6%)와 인맥 사항(4.9%)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이러한 기업체의 과도한 개인정보 기재 요구에 대해 대부분의 구직자들은 "민감한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기업에 부정적인 인상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업무능력과 관련 없는 개인적인 정보기재를 요구받을 때 받는 회사 이미지는 '크게 영향을 미친다(부정적인 인상)' 20.0%,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침(호감도 반감)' 54.9%이었고, '큰 관련이 없다'는 사람은 25.1%에 그쳤다.

이에 대해 취업준비생 김정현(27)씨는 "입사지원서를 작성하다보면 대학 등록금 조달자까지 적으라는 곳이 있는데 과연 이러한 내용이 회사에 입사해 일하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혹시 입사 후 사고를 치지 않을까란 염려에 미리 보증을 세우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어 상당히 불쾌했다"고 말했다.

최정화(25)씨는 "입사지원서를 쓰다 가족과 관련돼 언급하기 껄끄러운 내용을 허위로 기재해본 적이 있다"며 "친구들과 얘기해보면 거짓으로 쓰거나 (기재를 하지 않아도 지원서 작성이 가능한 경우) 아예 기재를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답했다.

하지만 구직자들의 고민과는 달리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은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 기업체의 인사담당자는 "입사지원서에 가족관련 사항을 기입하도록 하는 것은 입사 후 사원관리 카드로 활용하기 위한 것으로 입사 시 평가 요소로 작용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또한 "기업체들이 가족 신상 내용 등의 개인정보를 기재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이전부터 물어온 항목들이어서 그대로 사용하고 있을 뿐”이라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한림대학교 취업지원센터 이석각 주임은 "회사에서 과도한 정보를 요구하면 구직자들은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거부할 수 없는 입장"이라며 "이러한 개인정보는 유출 시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꼭 필요한 정보만 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올 11월에는 LG전자 입사지원자들의 자기소개서가 유출된 사건(2006년)과 관련해 해당 피해자들에게 30만원씩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기도 했다.

국가인원위원회 윤설아 사무관은 "지난 2003년 위원회 공고로 가족사항이나 학력 등 개인 업무 능력과 상관없는 내용들을 입사지원서에 기재하지 않도록 조치한 기업체가 늘어났지만 아직도 상당수의 기업체가 이러한 정보를 요구하고 있다"며 "이는 채용 시 차별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이나 일본처럼 반드시 필요한 정보만 기입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업체 입장에서는 관행에 따라 대수롭지 않게 기입하도록 요구하는 가족 신상 내용이 구직자들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말로 가족 관련 정보나 학력 등의 내용이 단지 참고사항에 불과하다면 그렇지 않아도 취업난으로 힘든 구직자들을 위해 없애 달라"는 한 취업준비생의 바람이 기업체 인사 담당자들에게 전해지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제3회 전국 대학생 기자상 공모전 응모기사입니다.



태그:#입사지원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