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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가 위기라고 한다. 매체 이용자는 줄고 덩달아 매출은 떨어진다. 영향력도 예전 같지 않다. 그렇다면 잡지는 퇴물? 그렇지 않다.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잡지에 웃고 울고 감동 '먹는다'. 너무나 빠르고 얄팍한 시대. 잡지는 오히려 빛난다. 대한민국 잡지여 영원하라! [편집자말]
지난 18일 <좋은 생각> 최기영 편집장을 만나, 16년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18일 <좋은 생각> 최기영 편집장을 만나, 16년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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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요. 죄송한데요. 사무실 안은 들어가실 수가 없어요. 회사 방침이 그래서…."
"신비주의를 고수하시는군요."
"그렇진 않지만(웃음)."

잡지 <좋은 생각> 사무실 담은 의외로 높았다. '지금껏 사무실을 한 번도 외부에 공개한 적 없다', '지금 마감 중이라서', '업무에 방해되기 때문에' 등 여러 이유를 대면서 최기영(33) 편집장은 양해를 구했다. '돌격 앞으로'를 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고 해서 눈물을 머금고 후퇴한다. 대신 정말 맛보기로 사무실을 살짝 구경했다. 사진 촬영은 금지.

<좋은 생각>, 불황에 강한 '군납 대표' 잡지

최 편집장은 연신 미안해하면서도 인터뷰도 어렵게 허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건물 밖에도 <좋은 생각>이란 간판은 없었다. 일부러 알고 찾아가지 않으면 이곳이 그곳인지 알 수 없다. 음지에서 일하며 '좋은 생각'을 만들어내는 특수비밀기구?

아무튼 건물 1층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예상대로(?) 내 16인치 접이식 자전거에 흥미를 보인다. 문득 든 생각. 낯선 사람을 만날 때 애완견을 데리고 가거나 애완자전거를 데리고 가면 쉽게 말문이 트이지 않을까. 음, 이런 생각을 한 내가 대견하다.

제일 궁금한 것은 불황에 대처하는 법이다. 판매부수를 물었다. 궁금하지 않다는 투로. 그래야 말할 것 같아서. 살짝 웃는다. 눙치는 분위기. 그건 비밀이란다. 실패다. 에둘러서 질문을 마구잡이로 던졌다. 살짝 정보를 흘린다.

부수가 제일 많았던 때가 2000년. IMF 구제금융 위기 이후 꾸준히 성장했단다. 정점이 그때였다. 이후 조금씩 떨어지다 요즘 다시 상승곡선이란다. 불황에 강한 잡지다. "좋겠다"고 했더니 최 편집장은 오히려 조심스럽단다. 요즘 같은 불황에 "괜찮다"고 말하는 게 오히려 실례가 될 수 있어서다.

주변 사람들한테 수집한 질문 가운데 하나를 던졌다.

"'좋은 생각'이 군인들한테 특히 인기가 있다면서요? 일명 '군납 대표 잡지'라던데. 주로 어떤 경로로 팔리는지요."

정기구독이 가장 많다. 그 다음은 서점과 편의점, 마트 등을 통해 팔린다. 유통 경로가 다양하다. 군대엔 과월호를 보낸단다. 군인들에게 '좋은 생각'을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 이미 시기가 지난 과월호를 쓸 수도 있어서다. "재활용"이라고 했더니, '하하' 웃는다.

평범한 사람들이 우리 잡지 보물... 치유하는 기적 보여

최 편집장은 1999년 <좋은 생각>에 입사했다. 올해 7월 편집장이 됐다.
 최 편집장은 1999년 <좋은 생각>에 입사했다. 올해 7월 편집장이 됐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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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림없이 대답을 준비하고 있었을 모범 질문 하나를 던졌다. 한국 대표 잡지 가운데 하나인데, 항상 판매부수 최정상을 지키는 비법은 무엇인지.

"잡지엔 유명한 필진과 평범한 사람들 글이 대략 4대6 또는 3대7 정도 실린다고 봐요. 평범한 사람들 글이 아무래도 우리 잡지 정체성이죠. 그분들이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는데, 그게 자기 치유 작용을 일으켜요. 읽은 분들이 울고 웃으면서 자기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런 분들이 끈끈하게 저희 잡지를 떠받치는 거죠."

한 달 평균 기고글은 900여통. 2000년 무렵엔 1000통 정도 왔었다. 크게 떨어진 건 아니다. 6명 편집부 기자들이 900통을 나눠서 읽는다. 사람당 평균 150통이다. 그중 30~40편가량이 잡지에 실린다. 경쟁률이 22.5~30대1가량 된다. 힘들지 않느냐 물었더니, 예전에 비하면 훨씬 편하다고 말한다.

최 편집장이 입사한 때는 1999년. 인터넷을 쓰지 않던 그때는 모두 편지로 받았다. 편지봉투 뜯느라 야근하던 시절이었다. 특집이 있을 때는 하루 편지가 200~300통 쏟아졌다. 그 고된 일을 하면서 붙인 취미가 우표 수집이었다. 너무나 신나하는 최 편집장에게 동료들은 우표를 몰아주었다.

채택기준을 물었다. 크게 세 가지란다. 눈물이 있든지, 웃음이 있든지, 특별한 사연이 있든지다. 큰 줄기는 '감동'이다. 아무래도 가족 이야기가 채택될 때가 많다.

어떤 글들이 좋은지 물었더니, 조심스럽게 처음 쓰는 분들 중에 많다고 털어놓는다. 사연이 신선한데다 억지스러움이 없기 때문이라고.

A4 한 장도 안 되는 글쓰기... 비결은 무엇일까

<좋은 생각>은 종종 독자들에게 선물을 보낸다. 소박한 것들이다. 양말이나 시계가 대표적이다.
 <좋은 생각>은 종종 독자들에게 선물을 보낸다. 소박한 것들이다. 양말이나 시계가 대표적이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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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생각>을 읽으면서 감탄하는 것 중 하나가 분량이다. 잡지에 실리는 글들은 대부분 A4 한 장이 안 된다. 짧은 것은 A4 반 장 정도다. 그 안에 줄거리, 메시지 등 필요한 내용은 다 들어가 있다. 인터넷이 일반화된 요즘 짧은 글쓰기는 점차 보기 힘들다. 비결을 물었다.

"독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거죠. 뭘 궁금해 할까. 이 문제에 관해 기자들한테 짧게 글 쓰는 비결을 물어보았어요. 여러 가지였죠. 한 기자는 단락마다 줄인데요. 3줄로 풀어쓸 수 있는 걸 1줄로 줄이는 거죠. 어떤 기자는 머릿속에서 웬만큼 정리한 다음 쓰기 시작한데요. 어떤 기자는 중요한 부분, 인상적인 부분, 감정에 호소할 수 있는 문장 등을 전부 나열한 다음 제일 안 좋은 것부터 잘라낸답니다. 반복 훈련하면 쉬워져요. 그래도 아쉬움 느껴요. 수식어 가지를 다 쳐내면 때론 건조한 글이 되니까요. 직업병도 앓아요. 수식어 많이 들어간 문장을 읽으면 짜증이 나고, '하고 있는'은 '하는'으로 교정을 보면서 읽곤 하죠. 독자들은 짧은 글을 읽으면서 익숙해지시더라구요. 물론 우리가 '팍팍' 자르기도 하죠.(웃음)"

기억에 남는 사연 하나를 물었다. 올해 전화를 건 한 아주머니 이야기를 꺼낸다. 잡지엔 한 여성 사연이 실렸다. 너무나 가난했던 어린 시절 친척집에 맡겨졌다. 그곳에서 친척 오빠들한테 나쁜 일도 겪으며 고생을 했지만 지금은 자기를 이겨냈다는 내용이었다. 아주머니는 글 주인공이 자기 동생이라고 밝혔다. 이어 "친한 가족한테도 말 못한 것을 잡지가 받아줘서 너무 고맙다"고 감사해 했다. 전화를 받은 최 편집장은 스스로 반성했단다. 밥벌이라고 생각하면서 무뎌져가던 자기를 다시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고.

또 하나는 매달 손으로 꾹꾹 편지지에 눌러쓴 글을 보낸 독자다. 글의 내용이 <좋은 생각> 성격과 맞지 않아 한 번도 싣지 못했다. 그 글을 볼 때마다 너무 안타깝다고.

"<나쁜 생각> 자매지로 만들까 농담해요"

최 편집장은 올해 부임하면서 16년 동안 이어온 표지를 바꿨다. 자연 사진을 연출한 자연 사진으로 바꿨다. 왼쪽이 이전 사진, 오른쪽이 최근 바뀐 사진이다.
 최 편집장은 올해 부임하면서 16년 동안 이어온 표지를 바꿨다. 자연 사진을 연출한 자연 사진으로 바꿨다. 왼쪽이 이전 사진, 오른쪽이 최근 바뀐 사진이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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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크 날 때는 없을까. 물론 있단다. 글을 절대 못 고치겠다고 하는 분들이 있다고. 글을 마감 막바지에 넣은 분이 글을 손대려거든 그냥 빼라고 할 때는 피가 빠짝빠짝 마른다고. 1년에 한두 번 그런 사고가 터진다. 그런 분들을 위해서 이른바 보험을 든다. 언제 넣어도 괜찮은 글을 몇 개 준비해 놓는다. 펑크가 날 경우 그런 글들을 대신 밀어 넣는다.

요즘 무엇이 힘든지 물었다. 소재 고갈이란다. 16년째 하다 보니, 쓸 만한 것은 이미 다 쓴 상태라고. 고민 끝에 최 편집장이 내린 결론은 '옛날로 돌아가자'. 똑같은 주제를 던지더라도 사람들은 지금 시대에 맞게 전혀 다르게 표현할 거라는 믿음이 들어서다. 예상은 맞았다. 다른 글이 쏟아졌다.

이쯤에서 꼭 물어보고 싶은 질문 하나를 던진다. <좋은 생각>에서 일하지만, '나쁜 생각'에 대한 유혹이 없느냐고. 독자 관심을 끌기 위해 그런 종류의 기사를 넣고 싶은 생각 없느냐고. '하하' 웃는다.

"왜 없겠어요. 우리도 사람인데. 편집부 기자들끼리 농담해요. 우리 '나쁜 생각'이란 잡지 한 번 만들어볼까? 모두 좋다 그래요. 그래도 우리가 제일 잘하는 것을 해야죠. 정치, 사회 등 시사는 여러 매체가 너무 많이 다루잖아요. 시끄러운 소식은 굳이 우리가 아니어도 많이 다루니까. 굳이 만들려면 <나쁜 생각>이란 자매지를 만들어야겠죠."

개인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이 회사에 들어가게 됐는지. 최 편집장은 이렇게 말하면 "다른 직원들이 흉볼 것"이라면서 말문을 열었다. 그는 입사 직전 <좋은 생각>을 몰랐단다. 우연히 친구방에 갔다가 본 잡지가 <좋은 생각>이었다. 대학교 4학년 때 편집기자를 뽑는다는 공고를 봤다. 과제는 에세이 한 편 쓰기. 그는 '아버지'를 소재로 골랐다.

아버지는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았다. 문제 많은 아버지이기도 했다. 가족사를 고스란히 글에 녹였다. 최 편집장은 "아버지가 취직시켜 준 것"이라고 말했다. 천상 <좋은 생각>쟁이다.

계획을 물었다. '조용한 변화'를 내세웠다. 1990년대와 달라진 감성을 잡지에 녹여내는 것이 목표다. 과거엔 밥도 못 먹었던 이야기, 3남매가 방세도 못내고 쫓겨나 시멘트 바닥에서 밤을 샌 이야기류가 많았다. 애틋했지만 지금 시대엔 안 맞는다는 평가가 있었다. 기조는 지키돼 변화를 담는 게 목표다.

7월에 임기를 시작한 그는 표지부터 손댔다. 그 전엔 모두 자연사진이었다. 인공과 자연 사진을 합성한 연출사진을 실었다. 이른바 자연의 재구성이다. 처음엔 허술했다. 걱정도 많았다. 편집부 직원들도 확신하지 못했다. 당시 왜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 후회도 많았단다. 5개월이 지난 지금 독자 반응이 좋다며 환하게 웃었다.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잡지로 남고 싶어요. 자기를 치유하기 위해서 쓴 글은 결국 그 글을 읽는 독자도 좋게 바꾸더군요. 그런 변화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게 만드는 것, 그게 꿈이예요. 그렇게 되면 아마 우리 사회 행복지수도 높아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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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지난 18일 <좋은 생각> 사무실 근처에서 인터뷰했습니다.



태그:#좋은생각, #최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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