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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작구 흑석동 효사길 주변에 위치한 한 고급 주택의 모습
 서울 동작구 흑석동 효사길 주변에 위치한 한 고급 주택의 모습
ⓒ 송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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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멀쩡한 건물마저 마구잡이로 부수려 하나."

서울 동작구 흑석동 주민들이 뉴타운 지정을 취소해 달라며 행정심판을 청구한 까닭은 한마디로 이렇다. 뉴타운 지정 반대 주민모임의 대표 격인 노수완(77)씨는 "깔끔한 고급 주택가를 왜 개발하려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다"며 혀를 끌끌 찼다. 조용진(79)씨도 "이 쾌적한 지역을 부순다면, 대한민국에 남을 동네가 어디 있나"고 성토했다.

흑석 1·2·7·9 재정비촉진구역 주민들 270여명은 지난 15일 국무총리실 행정심판위원회에 뉴타운 지정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심판을 청구한 바 있다. 주민들의 뉴타운 지정 취소 청구는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다.   

16일 오후 흑석뉴타운 예정지역에서 만난 '뉴타운 반대' 주민들은 흑석동 중에서도 최고급 주택가인 효사길 주변(7구역)에 거주하고 있었다. 한강의 전경이 그대로 내려다보이는 이곳엔 널따란 고급주택 100여채가 밀집해 있다. 시가 10억 원을 호가하는 종합부동산세 납부 대상 주택들도 즐비하다.

"여긴 명품 주택가... 뉴타운 낄 자리 아니다"        

뉴타운 지정 반대를 위한 행정심판을 청구한 흑석동 주민들이 지역을 거닐며 "여기는 보존해야 할 곳"이라고 말하고 있다.
 뉴타운 지정 반대를 위한 행정심판을 청구한 흑석동 주민들이 지역을 거닐며 "여기는 보존해야 할 곳"이라고 말하고 있다.
ⓒ 송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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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없는 세입자들과 영세한 지주들이나 뉴타운에 반대하고 외곽으로 밀려나는 현실을 개탄하는 줄 알았는데, 고급 주택가 주민들이 가장 먼저 '뉴타운 취소'를 공식 청구하다니,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일까?  

이번 행정심판 청구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던 흑석 7재정비촉진구역 주민 노수완씨와 조용진씨를 만나 2시간여 동안 대화를 나눴다. 이들은 자신들이 거주하는 효사길 주변의 고급 주택가를 한 바퀴 빙 둘러보게 한 뒤, "여기는 존치관리지역으로 지정돼야 할 명품 주택가이지, 뉴타운이 낄 자리가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이들은 "고급 주거지역 외에 낙후한 흑석동 지역은 당연히 뉴타운 개발을 실시해 환경개선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다음은 두 주민 대표자와 나눈 일문일답 요약이다. 

뉴타운 지정 반대 행정소송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흑석동 주민 조용진(79)씨
 뉴타운 지정 반대 행정소송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흑석동 주민 조용진(79)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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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정심판은 어떻게 생각해낸 방법인가?
조용진 "지난 10월 안양시 안양5·9동 주민들이 경기도지사·안양시장·대한주택공사 사장을 상대로 낸 안양 냉천지구와 새마을지구 주거환경개선사업정비구역 지정처분에 대한 취소청구소송에서 원고가 승소했다. 우리도 거기 상황과 비슷하다. 멀쩡한 집 헐어서 뉴타운 만든다는 거 아닌가. 안양 사례를 보고 힘을 얻고, 행정심판 준비를 시작하게 됐다." 

- 행정심판을 청구한 까닭은?
조용진 "구청에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지난 몇 달간 알게 됐다. 좀 더 적극적인 방법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노수완 "개발여건도 전혀 맞지 않는다. 우리 조사에 의하면 노후도·접도율·호수밀도·과소필지 모두 여건 미달이다. 정비구역이 되려면 노후도는 60% 이상이어야 하는데, 1·7·9구역 노후도는 각각 43.2%, 53.1%, 47.5%로 미달이다."

"넓은 우리 지역 포섭해 건설투기업자 이익 올리려는 행위"

- 구역내 주민들과 타 구역 주민들은 어떤 방식으로 조직해 행정심판을 냈나?
조용진 "이대로는 너무 억울하다 싶어 뉴타운 지정을 반대하는 지구별로 모임을 열었다. 1·2·7·9구역 등이다. 타 구역에도 우리와 같이 지은 지 얼마 안된 환경 좋은 건물을 허무는 것에 대한 불만이 있고 상가밀집지역의 건물주들이 반대하고 있다."  

- 행정심판에 대한 주민들 반응은 어떠한가.
노수완 "심판 청구에 참여한 인원만 270명 정도다. 반대한 주민들이 다 참여한 것은 아니며, 실제로 뉴타운 취소를 원하는 주민들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계속 홍보중이다."

- 흑석뉴타운에 각 지역이 추가로 편입된 것은 언제인가.
노수완 "지난 1월 재정비특별회계 공람·공고가 이뤄졌고, 지난 9월 주거환경개선사업정비구역 지정요건을 충족한다는 이유로 기존 뉴타운 지구에 추가로 편입됐다."

뉴타운 지정 반대 행정심판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흑석동 주민 노수완(77)씨
 뉴타운 지정 반대 행정심판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흑석동 주민 노수완(77)씨
ⓒ 송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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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람 후 행정심판을 내기 전까지 계속해서 반대 활동을 해왔나.
노수완 "그렇다. 뉴타운 지정 사실을 안 순간부터 청와대·서울시장·구청·구의회 등에다 반대 공문 및 탄원서를 수차례 제출했다. 행정기관은 죄다 구청에다 일을 미루고, 구청은 차후에 협의하겠다는 공문만 보내올 뿐이었다."

- 왜 고급 주택가에다 자연경관지역인 7구역이 뉴타운 개발 지구로 지정된 것 같나
조용진 "이 곳은 건물들이 큼직해 땅도 넓게 차지하고, 경관지구다 보니 공시지가도 싸다. 건설업자로서는 이 지역을 포함해야 타산이 맞으니까 앞뒤 안 보고 덤벼든 것 아닌가."

노수완 "1차 지구는 면적이 2만7000여㎡, 그리고 1차에 2차 지정구역을 더하면 7만2000㎡가 된다. 4만5000여㎡를 2차에 포함시킨 것이 아닌가. 즉 이 구역이 넓으니 개발 지역에 포함시켜, 건설사와 투기꾼들에게 이익을 주겠다는 행태로 보인다."

"공시지가 보상 기준은 엉터리"

- 뉴타운 개발을 이토록 결사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조용진 "이 동네 돌아보지 않았나. 이렇게 전망 좋고 쾌적한 동네가 대한민국에 또 어디 있겠나. 이건 보존해야 할 동네지, 파헤칠 곳이 아니다. 부술만한 건물이 하나라도 있었나? 또 여기는 경관지역으로 지정돼 있어서 4층 이상의 건물을 못 짓는다. 부수고 4층 건물 짓는다? 왜 뉴타운을 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

- 만약 뉴타운 개발이 실시된다면, 보상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노수완 "보상 문제도 보자. 뉴타운 개발하고, 여기에 다시 들어오려면 적어도 2억~3억원의 추가부담금을 내야 한다. 이곳 23평 정도의 빌라 실거래가가 4억~4억5천만 원이다. 하지만 공시지가로 관리처분 하면 평당 600만~700만원 정도해 1억5천만 원 안팎이다. 경관지역이라 공시지가가 낮게 책정된다. 3억원은 그냥 손해 보는 것이다."

조용진 "10억원 이상 가는 고급 주택은 어떤가. 여기는 전망이 좋아 집을 내놓는 사람이 없다.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이다. 그런데 공시지가로 하면 3억5천만원 정도밖에 안 된다. 7억원 손해보고, 추가부담금 또 내고 뉴타운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이게 말이 되나." 
 
- 뉴타운 개발 사업 전반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
노수완 "뉴타운 취지가 환경이 나쁘고, 낙후한 지역을 개발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목적에 맞는 지역이라면 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처럼 환경 좋고, 잘 정비된 지역은 제외해야 한다. 개인이 스스로 정비하도록 놔두면 된다."

- 낙후된 지역의 서민들 내모는 '주민 교체' 사업이라는 말도 있는데.
노수완 "원주민 재정착률이 10%대에 그친다는 말을 들었다.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 같은 고급주택 사람들이 더 손해 보는 게 지금 흑석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뉴타운이다. 우리 지역 재정착률은 10% 아래로 떨어질 것이다. 공시지가가 말해주지 않나. 추가 분담금 외에 집값도 절반으로 깎인다. 타 지역은 이러진 않지 않나."     

"뉴타운 2차 지구에서 우리 지역은 빠져야"

 뉴타운 지정 반대 행정심판 청구를 한 흑석동 주민 노수완(77)씨가 "멀쩡한 주택을 왜 부수냐"며 앞쪽의 주택을 가리키고 있다.
 뉴타운 지정 반대 행정심판 청구를 한 흑석동 주민 노수완(77)씨가 "멀쩡한 주택을 왜 부수냐"며 앞쪽의 주택을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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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구역에는 고소득자들이 많은 것 같다
조용진 "대부분이 이곳에 오랫동안 산 사람들이다. 나이들도 많다. 젊었을 때 기반 잡아서 살고 있는 것인데, 고소득자라고 보기는 어렵다."

- 행정심판 결과는 어떻게 될 것 같나
노수완 "제출해놓은 단계 정도니, 아직은 모르겠다. 제발 정책결정자들이 여기를 와보고 결정했으면 좋겠다. 여기를 헐어버린다면 청와대도 헐고 다시 지어야 한다. 효사길 여기는 서울의 명소다. 고급 주택지로 만들어야 할 지역이다."

- 향후 활동 계획은?
조용진 "행정심판 이후 행정소송에 들어갈 것이다. 사무실은 아직 없지만 계속해서 꾸준히 주민들끼리 모여 활동할 것이다. 뉴타운 지정이 철회될 때까지 끝까지 갈 것이다."

- 궁극적으로 어떤 결과를 원하나
노수완 "뉴타운 2차 지구에서 7구역은 빠지고, 존치관리지역으로 지정되게끔 해야 한다."


태그:#흑석뉴타운, #행정심판, #흑석동, #고급 주택가, #뉴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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