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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와 <국민일보>는 지난 12일 사설을 통해 학생들에게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 선택권을 줬다는 이유로 파면된 한 교사가 자신의 6학년 자녀에게는 시험을 보게 했다며 "파렴치한 짓", "이율배반"이라고 몰아붙였다.

 

이에 대해 <오마이뉴스>는 같은 날 오후 "'파렴치 교사' 보도의 배후는 서울시교육청"이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두 신문의 보도는 지난 10일 서울시교육청 관계자가 점심식사 자리에서 일부 출입기자들에게 정상용 교사 자녀의 신상정보를 제공한 결과라고 보도한 바 있다.

 

이 같은 보도를 접한 정 교사의 딸이 <오마이뉴스>에 자신의 속마음을 담은 편지를 지난 14일 보내왔다.

 

정양은 이 편지에서 "아빠가 아빠 반 아이들에게는 편지를 나눠주고 제가 시험을 봐서 일이 커진 듯하다"면서 "파면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신문에 난 걸로 봐서 이 일이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고 자책했다.

 

이어 정양은 "아빠가 일제고사를 볼지 안 볼지 물었을 때 우리 선생님이 시험 내용을 알려주시지 않았고 우리 반에서 나 혼자 안 본다면 부담이 되어 시험을 보게 되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제가 시험을 봤고 몇 달 후 이런 일이 터져서 참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히다"고 심경을 털어놨다.

 

편지 뒷부분에서 정양은 "너무나 답답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어도 재미있지 않다"면서 "제가 시험을 봤는지를 사람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남의 개인정보를 함부로 퍼뜨린 사람들 때문에 기분이 참 나빠진다"고 적었다.

 

최근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파면 의결된 정 교사는 이 편지에 대해 "딸이 하도 답답해하고 슬퍼하기에 그렇다면 네 마음을 담아 글을 써보라고 했다"고 편지를 쓰게 된 사연을 전했다.

 

다음은 정양이 <오마이뉴스>에 보낸 편지 전문이다.

 

며칠 전 신문에 있는 한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빠의 생일날이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엄마가 신문을 보면서 혼잣말을 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전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엄마가 읽고 있던 신문을 저에게 내밀었습니다. 중간대목을 읽던 중 저는 흠칫 놀랐습니다. 기사내용이 아빠와 내가 했던 일과 맞아떨어졌습니다. 저는 '같은 또래에 자녀에게는 시험을 보게 했다'라는 대목을 손으로 짚으며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나야....?"

 

엄마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봐서 이 일이 보통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저번에 제가 시험을 본 일과 관련해서 아빠가 파면을 당한다고 합니다. 또 아빠가 아빠 반 아이들에게는 편지를 나눠주고 제가 시험을 봐서 일이 커진 듯합니다. 파면이랑 해임이 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신문에 난 걸로 봐서 이 일이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습니다. 저는 우선 시험을 보기 전 아빠가 했던 말을 되살려 봤습니다.

 

그러니까 시험보기 일주일쯤 전이었을 겁니다. 저녁을 먹고 숙제를 하려는데 아빠가 일제고사 시험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시험을 볼지 안 볼지 물었습니다. 나는 우선 우리 선생님이 시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려주지 않았고 만약 시험을 안 볼 경우 집에서 혼자 있어야 하는데 그럴 수도 없으며, 우리 반에서 나 혼자 안 본다면 부담이 되어 결정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시험을 보고 중, 고등학교 때 시험을 볼지 안 볼지 결정하겠다고 생각하고는 이번에는 시험을 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전 시험을 봤고 몇 달 후 이런 일이 터졌습니다. 참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힙니다. 아직도 꿈을 꾸는 것 같습니다. 이것 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학교에 갔습니다. 선생님께 파면이 뭔지 여쭈어 봤습니다.

 

"다 잘 될 거야. 금방 끝날 테니 열심히 해."

 

그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너무나 답답해서 거의 모든 일에 무뎌진 듯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어도 재미있지 않고 슬픈 이야기를 들어도 슬프지 않습니다. 이 일이 얼른 끝나기를 바랄 뿐입니다.

 

제가 시험을 봤는지 안 봤는지를 사람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아무리 그래도 남의 개인정보를 함부로 퍼트린 사람들 때문에 기분이 참 나빠집니다.

 

저에게 이번 일이 충격이 꽤 컸나 봅니다. 주변에서 일제고사 이야기만 들리면 갑자기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다 잘 되겠지요. 그렇게 잘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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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일제고사 거부, #파면, #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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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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