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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등 아래 내려온 글, '남북통일 속 성취' 라고 써 있다.
 연등 아래 내려온 글, '남북통일 속 성취' 라고 써 있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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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엄마를 따라 절에 간 기억이 있다. 딱히 불교신자라고도 할 수 없는 엄마는 아마도 당신이 복을 바라고 비는 대상이 부처님이고 살아오면서 조금씩 접한 불교 분위기가 낯설지 않아 이따금씩 절에 가신 것 같다.

예닐곱 살 어린 나는 파르라니 밀어버린 스님 머리를 보는 것이 왠지 거북하고 불편했다. 그래서 스님 얼굴을 바로 볼 수 없었다. 엄마가 스님에게 보살님이라고 하면서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조아리다시피 하면, 그 엄숙하고 어려운 분위기에 나는 잔뜩 주눅이 들었다. 학교에서 교과서로 배우는 불교와 내가 인식하는 불교는 따로따로였다.

지난 10일(수) 오전 10시. 민들레의료생협 자원활동가 교육으로 정토회 방문이 예정돼 있었다. '맑은 마음, 좋은 벗, 깨끗한 땅'이라는 세 가지 모토를 갖고 활동하는 정토회에 대해서는 얼마 전, 한살림 가을축제 때, 지렁이를 분양받아 오면서 알게 되었다.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며 음식물쓰레기 제로운동을 펼치고, 굶주리는 북한동포를 돕는 일에도 고민하고 앞장서는 정토회가 어떤 곳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우리는 정토회에서 자원활동을 하는 봉사자들이 어떤 자세로 어떻게 법회를 꾸려나가는지를 보고자 했다. 또 봉사하는 사람들끼리의 단단한 관계와 꾸준함을 지속하는 힘을 배우고자 하였다.   

게시판의 글에서 '나비'는 나누고 비운다는 뜻이다.
 게시판의 글에서 '나비'는 나누고 비운다는 뜻이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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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들을 만나기 전, 법당에서는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무엇이든 물어라'가 화면을 통해 방송돼고 있었다. 스님은 ;일상 속에서 늘 궁금했던 의문을 평안하게 물어보라'고 했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하게 질문하며 기꺼이 듣기를 원하는 것이 '경청'이라고 하였다.

'내가 이런 것을 물어보면 다른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을까'하는 것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겪고 있는 문제다. 잠시 머뭇거리던 사람들이 용기를 내어 물었다. 초등학생 아이를 둔 엄마가 일어났다.

"이가 쓴 일기장을 봤는데 엄마를 원망하는 글이 있었어요. '우리 엄마는 잔소리가 너무 많아서 집에 들어오기 싫을 때도 있다'라고 써 있기도 하고, 엄마가 밉다는 말이 많았어요. 그래서 저는 지금 그게 고민이 돼요."

법륜스님이 말했다.

"남의 일기를 안 보면 됩니다."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다음엔 20대의 앳된 여성이 일어나 물었다.

"저는 직장에 다닌 지 얼마 안 됐는데요, 직장 생활이 너무 힘들고 괴롭습니다. 직장에 가기 전 아침에도 울고 가서도 울고 그럽니다. 남들은 내가 대기업에 다니고 이 어려운 시기에 좋은 데 취직했다고 얼마나 좋으냐고 합니다. 내가 직장에 다니는 어려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몰라요. 가족이나 선배들은 조금 익숙해지면 적응도 하고 괜찮아질 것이라고 하지만 나는 왜 그렇게 힘든지 모르겠습니다."

이 여성은 얘기하면서 울먹이기도 했다. 스님은 '옥상에서 떨어져 죽는 사람의 마음이 이와 같다'고 하면서 '남들이 볼 때는 전혀 모른다'고 하였다.

"남들이 볼 때는 다 좋다고 하는데 그건 나와 상관없습니다. 그만두면 됩니다. 직장에 갈 때마다 울고, 가서도 울 하등의 가치가 없습니다. 그런데 왜 그만 못 둡니까? 그 괴로운 직장을 그만두지 못하는 내 마음을 살펴봐야 합니다. 돈을 벌려면 청소일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지금 이 괴로운 직장과 비교하면 아무래도 모양새가 별로 안 좋지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여기 그대로 있는 것이 청소하는 것보다 낫겠다 싶으면 그냥 다녀야겠지요. 그 대가를 감수해야 합니다. 자기 마음속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 뿌리가 욕심일 때가 많습니다."

스님은 자기 인생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니 당당하라고 했다. '내가 하는 말이 가볍게 얘기하는 것 같지만 새겨서' 들으란다. 아무렇게나 이해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이 사람 저사람 말을 다 귀담아 들어도 선택은 내가 해야 하는 것'이고 '자기에 대한 긍정이 없으면 원망이나 남의 탓이 많다'고.

즉문즉설에 묻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남편의 바람기 때문에 괴로운 사람, 몸이 아파서 수술을 앞두고 불안에 떠는 사람, 결혼을 하고 싶은데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어떻게 해야 옳은지 묻는 사람 등. 복잡한 물음에 스님의 '설'은 쉽고 명쾌하게 다가왔다.

"하수는 '까르마'에 휩쓸린 사람입니다. 지금 주어진 삶을 소중하게 여기며 같이 사는 행복과 혼자 사는 자유를 누리세요. 내가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는 믿음에 실천하는 것, 이것이 창조입니다. 언제든 삶을 열어놓고 살아가십시오."

만남.
 만남.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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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게 모여 앉아 서로 궁금한 것들을 묻고 답해요.
 둥글게 모여 앉아 서로 궁금한 것들을 묻고 답해요.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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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공양시간에는 납작하고 둥근 접시에 자기가 먹을 양만큼 덜어 음식물을 남김없이 먹었다. 설거지는 쌀뜨물을 받아 아크릴 수세미로 닦고 헹궈 마른행주질을 하면 마무리 되었다. 음식물 쓰레기로 나오는 과일껍질은 정토회 옥상의 지렁이가 담당한다.

법당 안에는 '민들레'와  정토회 자원활동 봉사자들이 빙 둘러 모였다. 총무를 맡고 있는 정경주(법명: 법정심)씨가 정토회 자원봉사자들의 여러 활동을 소개했다.

대전 정토회는 한달에 한두 번 오는 사람들까지 포함해서 전체 40여명이 법회를 운영한다고 한다. 100% 자원봉사로 이루어진 법모임이다. 목탁이나 스크린을 담당하거나 스위치를 올리고 빔을 내리는 일 등, 아주 작은 역할까지 각자 맡은 일에 소임을 다하는 것이다.

정영미(환경) : "'전법'으로 법을 전하는 일을 한다. 봉사라는 생각보다 나의 발전이라고 여긴다. 가끔 부딪치는 문제는 내가 성장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박범숙(환경과 복지) : "일주일에 한 번, 연말, 그리고 특별한 행사 때 북한동포돕기 거리모금을 맡고 있다. 정토회에 와서 일하며 봉사라는 것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법문이 좋아서 자꾸 오게 된다."

김애영(회계보조) : "컴퓨터 공부를 하려니 머리에서 쥐가 난다. 우리 아이가 '엄마는 왜 그렇게 사냐'고 한다. 엄마 나이면 운동하면서 친구들과 모임하고 다닐 때라고 하는데 나는 운동에 흥미가 없다. 사람한테 상처받는 걸 두려워했는데 마음공부로 즐겁게 산다."

이금복(통일) : "개인으로 새터민들을 만나고 있다. 처음에 이 일이 재미있어서 했다. 일과 수행이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이 해이해질 때마다 '법문'으로 치료받고 마음을 다진다."

내가 좋아서 했는데도 분별심이 들 때도 있다고 하는 정토회 환경담당 자원활동 봉사자. "김포장지의 방습제도 따로 버려 주세요!"
 내가 좋아서 했는데도 분별심이 들 때도 있다고 하는 정토회 환경담당 자원활동 봉사자. "김포장지의 방습제도 따로 버려 주세요!"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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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교와 환경운동으로 시작했던 정토회는 사람들에게 단순하고 조금 느리게 살기를 권한다. 우리가 사는 자연은 투쟁하고 정복해야 될 대상이 아닌 것이다. 음식물 쓰레기 제로 운동을 펴는 것도 그런 뜻을 실천하는 일이다.

총무 정경주씨는 봉사자들이 그냥 봉사만 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그 밑바닥에는 수행이 뒷받침 되어 있고 일이 크든 작든 항상 회의를 한다. 봉사자들 간 소통이 되게 하고 하루 한 시간은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사람을 적재적소에 맞추는 일이 봉사를 꾸준히 오래도록 하게 한다는 것이다. 정토회와 '민들레' 자원활동 봉사자들은 궁금한 것을 서로에게 묻고 답했다.

따뜻한 차를 맡은 차보살님.
 따뜻한 차를 맡은 차보살님.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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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음식이 내게 오기까지 많은 손길들을 생각하며 고마운 마음으로 먹습니다.
 이 음식이 내게 오기까지 많은 손길들을 생각하며 고마운 마음으로 먹습니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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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의 민혜란씨는 '봉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안하는 사람들을 다른 시선으로 봐줘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석연희씨는 '민들레'에 잔소리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하면서 그래도 안 하는 사람보다 낫다는 자부심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내게 있는 것을 나누는 것은 별 문제가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정토회 자원활동을 보면서 어깨가 무겁다"고 말했다.

민들레 한의원의 간호사는 "직장이기 때문에 자원활동은 못하지만 그 마음을 환자들과 나누겠다"고 말했다. 거리검진팀을 맡아 활동하는 심경이씨도 "봉사하는 일이 '내가 배우고 발전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면 발걸음이 쉽다는 걸 배우고 간다"고 말했다.

정토회의 단순하고 쉬운 법문을 시청하면서 나는 꼭 틀어쥔 내 닫힌 마음을 보았다. 자원활동 교육으로 왔지만, 마음을 열어놓으니 종교차원을 넘어 진심으로 깨닫고 존경하는 마음도 생겨났다. 그러고 보니 민들레의료생협과 정토회가 지향하는,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고 위로해주는 일이 많이 닮았다는 것도 새삼 눈에 들어온다.

덧붙이는 글 | sbs u포터에 송고
대전 정토회: (042) 253-8990



태그:#민들레의료생협, #정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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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가면을 줘보게, 그럼 진실을 말하게 될 테니까. 오스카와일드<거짓의 쇠락>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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